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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처럼 사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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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1년 06월 352호

한창 초록이다. 벌써 싱그러운 초록은 녹음 짙은 푸름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이 초록으로 변한 곳에서도 누런색을 띠는 것이 있다. 대나무는 가을이다. 항상 푸르다는 대나무는 이 시절에 누렇게 변해간다. 비온 뒤 죽순이라고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 대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있다. 옛 어른들은 이때를 죽추竹秋라고 했다.
보리가 들판을 황금으로 물결치게 할 때, 숲속 늙은 대나무는 높은 하늘을 황금 잎새로 물결치게 한다. 늙은 대나무의 빈속을 흐르는 바람은 낮은 하늘 젊은 나무에게 늙은 나무의 빈 마음을 전한다. 누렇게 떨어지는 잎새는 올망졸망 피어나는 새순에게 순한 그늘을 덮어준다. 죽추의 숲은 늙은 나무가 젊고 어린 나무들에 주는 전승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대나무는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온 힘을 다해 생명력을 발산하는 계절에, 자신의 생명을 내 놓는 길을 택한다. 그래서 대나무 숲은 세상의 초록이 죽은 하얀 겨울에도 푸르게 살아있다.
담양 대나무 숲에서 생명이 다 빠져가고 있는 대나무의 누런 색깔과 초라한 몰골을 보았을 때, 독야청청한 대나무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나의 대나무가 ‘대나무’라는 것의 푸름을 지켜내기 위해 하는 희생과 사랑을 보자, 하나의 대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숲속 모든 대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자연 안에서 초자연적인 무엇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숙이 고모’는 여름 속의 가을 대나무 같은 사람이다. 영숙이 고모는 고모뻘 되는 먼 친척이다. 어린 시절 나는 아주머니가 대나무처럼 푸름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린 소견에 속이 빈 누런 빛과 초라한 몰골이 아주머니라고 생각해서 무시한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어른이나 아이나 “영숙이 고모”라고 아주머니의 이름을 대놓고 불렀다. 우리 ‘정씨네’ 일가는 생김새에 따라 ‘길쭉이파’ 와 ‘납짝이파’로 나뉜다. ‘길쭉이’는 자기네가 ‘정가네\'의 주도적 세력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납작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은 내 밑에 동생만 빼고 다 길쭉하게 생겼다. ‘영숙이 고모’는 ‘납짝이파’에 속했다. 그런데 ‘납작이’들이 한번은 꼭 ‘허당’짓을 하는데, 거기에 정가네 고집이 더해져, 스스로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곤 했다. 그래서 냉철한 ‘길쭉이’에게 결정적으로 무시를 당했다. 납작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연애에 있어서 허당 짓을 했고 (그 또래의 집안 아주머니들이 중매로 결혼을 할 때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는 이야기가 우리 집안에 전해지고 있다), 결혼까지 고집 세게 갔다.
영숙이 고모는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땐, 우리 집에 자주 왔다. 하지만 명절날 같은 일가가 모이는 날에는 절대 오지 않았다. 평일 날 아무 연락도 없이 왔다. 내 기억에 몇 년 간은 올 때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늘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곤 아주머니도 남편이 있구나 싶었다. 영숙이 고모는 남편이 없는 사람 같았다. 나는 커서도 아주머니의 남편을 본 적도 없고, 집안 어른들 어느 누구도 아주머니의 남편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아주머니와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출근한 다음의 제법 이른 아침에 와서 부모님이 퇴근하기 바로 직전 저녁까지 하루 종일 있었다. 할머니는 집안일에 바쁘고, 나와 동생들은 학교에 다녀오고 숙제를 하는 동안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먹고, 놀고, 자곤 했다. 할머니는 영숙이 고모를 안쓰러워했다. 영숙이 고모도 할머니를 친정엄마쯤으로 생각하기로 한 것 같았다.

내가 아주머니의 누런 빛을 본 날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좀 이상했던 것은 아주머니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인지 나보다 두 살 많은 남자 아이만 빼고 4명의 여자 아이들이 다 왔다. 큰 딸에게 “너네 학교 개교기념일이니?”하고 물었지만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아침상을 대한 아이들을 보았을 때, 나와 동생들은 너무 놀라서 잘 먹지를 못했다. 그 아이들이 본래 식성이 좋기도 했지만 그날은 마치 며칠을 굶은 사람들 같았다. 우리는 대충 먹고 학교에 갔다. 그날 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숙제도 하고 놀면서 노을이 질 무렵 집에 돌아왔다. 두 동생들은 아직 밖에 있었다.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마침 할머니가 차려준 좀 이른 저녁상을 받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집이 영천이라는 먼 곳이어서 서둘러 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늘 이른 저녁을 하고 우리 부모가 돌아오기 전에 갔었다. 그 때 대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의 큰아들이 들어왔다. “아니. 네가 왠일이니?”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조금은 과장된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오빠는 아무 말도 없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아주머니 (영숙이 고모는 우리 할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이게 웬일이래. 제가 아침에 여기 온다고 말했더니 애가 왔네요. 어머! 웬일이래.”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영숙이 고모는 연기가 서툰 배우였다. 게다가 아주머니의 네 딸들은 조금도 아주머니를 돕지 않았다. 그네들에게 오빠가 지금쯤 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오빠 왔어’하는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이네 밥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짠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아주머니가 진짜 싫어졌다. 할머니는 부리나케 그 오빠 몫의 밥상을 새로 차려 주었다. 할머니는 그 오빠가 영숙이 고모의 삶의 끈이라고 귀하게 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도 아주머니가 연극을 한 것은 싫었는지 아주머니네가 간 뒤, 어린 친구였던 나에게 불편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짠 거지?” “응.”

아주머니는 왜 그날 연극을 한 것일까? 영민한 오빠까지 부추겨서.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아주머니는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우스꽝스런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싸구려 옷을 입어도 옷이 아주머니에게서 살아나게 하는 힘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은 아주머니의 자존심이었다. 사실 그랬다. 커서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공짜밥을 먹지 않았다. 엄마는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말해주지 않아도 영숙이 고모가 다녀간 사실을 알았단다. 평소 사람손이 닿지 않았던 집안 곳곳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단다. 덜렁이 할머니는 아주머니가 우렁각시처럼 청소를 해 놓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여하튼 연극이 있었던 이후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명동에서 미제물건을 파는 노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에서 장사를 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영숙이 고모가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이다.
당시 아주머니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모든 것을 놓아야하는 시기에 잠시나마 매우 흔들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이상한 연극을 했던 것이고, 어린 나는 아주머니의 한 번의 내적인 동요를 ‘영숙이 고모’라는 사람으로 재단해 버린 것이다.
불쌍한 고모, 고모도 한 때는 그림 속의 여인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고모는 똑똑했고, 아름다웠다. 한 때 고모의 집안도 고모가 그 꿈을 꿀 수 있는 여건을 주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라졌다. 고모는 불법으로 PX 물건을 해 오고, 명동 한복판에서 뭇사람과 흥정을 하고, 단속이 나오면 재빠르게 튀어야 하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고모는 아이들의 푸른 꿈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비루한 현실을 살기로 작정을 했고, 그렇게 살았다.
강인한 어머니를 가진 아이들은 잘 자랐다. 그들은 예전에 고모가 가졌던 꿈을 꾸는 젊은 나무들이 되었다.

영숙이 고모는 이 젊은 나무들의 하늘 위에 뜨는, 늙은 대나무의 황금 잎새와도 같은 별이다. 늙은 대나무처럼 사는 별은 생명을 위해 생명을 희생한 삶만이 별이 될 수 있다는 전승을 알려준다. 밤하늘의 하나의 별을 볼 때, 세상 모든 별들이 나를 향해 빛나고 있는 것은 늙은 나무의 빈 마음이 옳다는 표시이다.
하나의 별이 모든 별을 위해 생명을 주고, 모든 별이 하나의 별을 위해 생명을 주는 하늘이 가을 대나무와도 같은 영숙이 고모가 닿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