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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 꽃 공양하는 법계성 김윤선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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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템플 - 최현태 2011년 06월 352호

보아서 예쁜 것이 있는가 하면 들어서 고운 소리가 있다. 꽃 지고 잎 피어 녹음 짙어가는 유월에 꽃 서리, 꽃 보살, 꽃 공양, 꽃 대궐, 꽃 잔치…하고 가만히 되뇌어 본다. 꽃으로 시작되어 끝나는 자리에 그 말들이 송이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듯하다. 강산이 3번 바뀌고도 6년이 남는 36년, 그 기나긴 세월동안 해인사 대적광전 부처님께 꽃을 바쳐온 여인, 법계성 김윤선 불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드라마만 빨리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도 순식간이구나 싶다. 이제 꽃과 함께 한 그녀의 해인사 부처님을 향한 사랑~ 그 드라마를 펼쳐보려 한다.
꽃 같은 시절에 시작한 꽃 공양
친가와 시댁이 모두 불연이 깊은 터라 20대에 백련암 성철 스님 인연이 지어졌다. 피해갈 수 없는 3천배가 기다리고 있었고 1배1배 더해갈 때마다 모질게도 힘이 들어 ‘3천배만 마치면 내 이 길로 교회를 가리라’ 다짐했는데 꽃 같은 새댁이 울며불며 절하는 것을 지켜본 노 보살님들이 기특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3천배에 5분이면 친견이 끝나는 성철 큰스님께서도 한참을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백련암 오지 말고 큰 절 해인사에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요즘이야 동네마다 꽃집이 있지만 1975년 모든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꽃집도 흔치 않았다. 초하루, 보름이면 대구 동산병원 앞 꽃집에 가서 꽃다발 2개를 겨우 만들어 대적광전 부처님 앞에 올리며 ‘부처님, 제가 형편이 좋아지는 대로 거룩하게 꽃 공양 올리겠습니다’라고 약속 드렸다. 이것이 36년 꽃 공양의 시작이다. 사이다병 2개를 구해다 불단 양쪽에 놓고 꽃을 꽂았는데 이제 처음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해인사대적광전은 법당이 커서 꽃을 꽂는 작업이 웬만한 절의 행사꽃꽂이일 것 같은데 재능이나 솜씨도 한 몫을 하겠지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는 꽃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그저 신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도 법당 꽃에 이끌려 타 종교인이 해인사신도가 되었다는 고백을 여성지에서 읽었을 때는 한겨울의 시렸던 발끝도, 온갖 일들로 마음 졸였던 기억도 봄눈 녹듯 사라지데요. 때로는 밤에 꽂기도 하는데 부처님 앞에 3배하고 제가 꽂은 꽃을 바라보는 순간의 환희심은요, 아이고~~말로 다 못합니다.”
왜 아니 그럴까. 밤 깊어 아무도 없는 그 큰 법당의 적요함과 순정한 시간을 마주하면 향기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거룩함은 비할 곳 없으리.
-3년6개월도 아니고 36년을 초하루와 보름 꽃 공양을 올리는 동안 분별심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던가요?
“말도 마이소, 몸살 나게 싫은데 부처님과의 약속을 깰 수도 없고 해서 3배도 건너뛰고 꽃만 올리고 뛰쳐나온 것이 1년 6개월쯤 계속되었죠. 이제 그만 꽂아야지 하는데 그날 밤 꿈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오셨어요. 자세한 꿈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게으름 핀 적이 없고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죽을 때까지 해야지요.”
법계성 김윤선 불자의 삶이 뜨겁게 타 오를 때나 형편없이 식을 때도 무엇이든 다 받아주고 곁을 지켜주는 이는 다름 아닌 해인사부처님이시다.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한 눈빛으로 그이를 가만히 바라보실 것이다.

원력으로 이룬 개금불사 그리고…
어쩌다 해인사를 찾는 불자들은 대적광전 부처님께 인사 여쭙고 금방 돌아 나와 법보전으로 가는 것이 일번적인 참배코스지만 그이는 큰 법당에 머무는 시간이 여느 해인사스님들보다 많았다.
“대적광전 일곱 분의 부처님을 올려다보면 그때마다 옷을 여법하게 입혀드리고 싶었고 어찌나 마음이 간절했던지 개금불사 제가 하겠다고 스님들을 졸랐어요. 처음엔 말도 못 꺼내게 하셨지만 마침 그 때 후원건립불사가 중단되었던 시기라 이 참 저 참 인연이 성숙되어 모연을 시작했지요. 개금 바로 직전 대적광전에서 부처님 한분 한분께 인사 올린 그 큰 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개금불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5년 산내암자 큰스님이 그이를 불러 법보전 부처님 새 옷 좀 입혀드리자고 어렵사리 운을 떼셨고 그이는 손을 내저었다.
“큰 돈 장만하기가 쉽지 않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 영 편치가 않데요. 그때 손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죠. 얼른 빼다 팔아 불사금을 스님께 갖다 드렸고 개금불사가 진행되는 동안 부처님 복장에서 서기883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국내최고最古의 쌍둥이목불임이 밝혀지는 경사가 있었죠. 결국 대적광전 계시던 부처님도 함께 두 분 비로자나불이 함께 새 옷을 입으시고 지금은 대비로전에 모셔져있지요.”
돌아보면 희유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해인가 꽃을 꽂고 있는데 흙덩이가 법당으로 떨어지기에 깜짝 놀라 스님께 고하고 살펴보니 법당기둥에 변고가 있어 그 또한 여법하게 처리가 되었다.
“별일이 다 있었어예. 큰 법당에 꽃을 다 올리면 공양 짓는 후원에 한 두 송이 꽃을 꽂곤 했는데 오래 전 원주스님이 당분간 꽃 갖다 놓지 말라 하시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꽃을 꽂으니 행자님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는군요. 참 희한한 일이죠. 그래도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네요.”

나를 살게 하신 해인사 부처님
사람의 행동은 말보다 정직하다 했다. 꽃을 싣고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늘 뭔가 소망하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 가까이서 작업을 하다보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꽃에만 집중하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꽃 공양도, 하고 있는 사업도 바라는 바 없이 그냥 한다. 다가오는 인연을 어쩔 수 없어 시작한 버스운송사업도 그이에겐 공부다. 해인사 큰 스님께 여쭈니 인간 방생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에 덜컥 시작은 했지만 굽이굽이 헤쳐 나오느라 꽃도 못 올릴 지경이 되니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 어려운 시절 이겨내고 이토록 나를 살게 하고 지금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음은 오직 해인사 부처님입니다. 한 때 영험 있다는 도량을 찾아 기도를 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했지만 역시나 제 자리는 해인사에요.”
꽃으로 지은 아름다운 인연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한 호흡 가다듬고 하는 말이다
“꼽아보니 그동안 해인사 주지스님이 열 세분 바뀌셨네요. 그 인연도 보통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새댁을 해인사로 이끌어 주신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고 영결식장을 꽃으로 장엄하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정사진을 꽃으로 장식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는데 참으로 긴장되고 떨리고 또 영광된 자리였지요.”

한 송이 한 송이 절절한 향심으로
해인사 부처님에 대한 그이의 향심은 절절하다. 하안거가 시작되는 지난 4월 보름에는 공부 들어가시는 스님들의 성성한 기운을 꽃으로 표현해 불단에 올렸다. 해제 때는 또 어떻게 꽂을까를 궁리하는 마음 또한 기쁘니 그 자리가 꽃자리다.
인터뷰말미에 그이는 필자 손을 꼭 잡고 법화경 사경을 권하는데 얼마나 울림이 큰지 은근히 마음이 일어난다. 감동은 꾸밈이나 화장기가 아니라 솔직한 고백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오는 음력 5월 초하루 해인사 부처님도 뵙고 밥계성 불자가 올린 꽃도 볼 겸해서 나들이를 한 번 나서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