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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당의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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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1년 06월 352호

현재의 보안당普眼堂 편액에 관하여 성종 22년(1491) 조위(曺偉, 1454-1503)가 쓴 해인사중수기海印寺重修記에 가운데 장경판전과 관계되는 내용을 보면, “인수仁粹대비와 인혜仁惠대비 두 분이… 정희왕후의 뜻을 두고 이루지 못한 것을 애달프게 여기어 학조 대사로 하여금 불사를 감독케 하고, 도료장塗料匠 박중석등을 보내어 관당 30칸으로 고쳐짓고, 성종 19년(1488)에 ‘보안당’이라 편액하고, 문을 세워 보안문普眼門이라 편액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성종 당시 이루어진 해인사 불사는 희랑 대사가 중창한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중창 불사였고, 지금의 해인사 가람배치의 틀은 이때에 이루어졌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성종 19년에 정면 15칸, 측면 2칸인 30칸 규모의 건물인 수다라장脩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이 건축되었다는 사실은 1943년 법보전 지붕의 기와를 교체할 때 ‘홍치원년(弘治元年.1488)’이라고 양각陽刻된 암막새가 나옴으로써 증명되었다. 그러나 해인사는 숙종 21년(1695)부터 고종 8년(1871)에 이르는 176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여서 성종때 지은 보안당과 보안문이 소실되어 새로이 만들었다. 현재의 보안당 편액은 만파의준萬波誼俊 스님의 글씨이며, 스님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해인사 해탈문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 있다. 만파 스님은 조선 후기에 해인사에서 수행하셨던 스님으로, 1963년 해인사에서 김설제가 간행한 해인사지(법보원 발행)에 의하면 “추사 김정희가 만파 스님의 글씨가 자기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 사진에는 장경각藏經閣이라는 편액이 보안문 앞에 있었는데, 5년 전에 철거하여 지금은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아마 ‘각’이라는 의미가 ‘궁’이나 ‘전’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라 그러한 것 같다. 그 편액의 글씨는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8)의 작품이었다. 김성근은 1862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성균관대사성, 전라도관찰사, 규장각직제학, 홍문관제학, 이조판서, 예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냈다. 또한 그는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대한제국 수립 후에는 법부대신, 탁지부대신 등을 지냈다. 해사는 특히 청렴 결백한 성품과 함께 당대 명필로 이름이 높았는데 필법이 매우 유려하고 웅건했고 대자大字에 능했다. 또한 송宋 미남궁체米南宮體의 글씨를 즐겨 썼다. 불법에 심취해 포교당을 직접 세울 만큼 불교를 가까이 했던 해사는 전국 여러 사찰을 순례하면서 글씨를 남겼다. 서울 개운사 대각루 ‘분다리향’, 남양주 불암사 ‘불암사’, 고양 흥국사 ‘흥국사’, 해남 대흥사 ‘두륜산대흥사’, ‘백설당’, ‘응진당’, 영암 도갑사 ‘세진당’, 순천 송광사 ‘해청당’, 부산 범어사 ‘금정산범어사’, ‘선찰대본산’, 고성 옥천사 ‘칠성각’, ‘옥천각’, 진주 의곡사 ‘대웅전’, 합천 해인사 ‘장경각’, 대구 동화사 ‘영산전’, 울진 불영사 ‘극락전’ 편액 등이 대표적인 그의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