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골목 경사길을 숨차게 헉헉대며 오르던 순간이었다. 고삿길 경사진 골목길, 어쩌면 흙땅이었을 이곳은 자동차가 지나가기 좋게 포장을 했다. 그러나 육중한 버스며, 트럭, 자동차, 사람들의 오고감을 견디지 못한 아스팔트는 마른논 쩍쩍 갈라지듯 균열이 나버렸다. 그런데, 그런데 그 빈틈!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그 균열의 사이로 쌓인 흙 위에 어디에서 날아온 들풀 씨앗이 내려앉아 누군가의 발길에도 꾹꾹 밟혀줄 잡초를 그 얇은 틈사이로 틔워낸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기적 같은데 들풀은 꽃망울이 맺혔다. 그것도 아주 순결한 노란색 꽃망울을 말이다.
꽃을 만나기 좋은 계절이다. 아주 잠깐이라서 더 반갑고 기특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꽃은 왜 피는 걸까? 꽃을 피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식물학적인 분석역사 속에서 굳이 2011년 오늘을 살아가는 나! 이건 감히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깨알 같고 터럭 같아서 다소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나이지만 아등바등 세상과 마주하고 살고 있고, 내 이름이 존재하는 내가 대견하고 그저 감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해인지에서 내게 준 주제로 인해 나는 나를 돌이켜보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다시 세워볼 값진 기회를 가진 것이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얼굴에 무표정을 짓고 초점 없는 눈길로 타인과 마주한다. 관계가 없는 나와 나들. 때로는 나를 타인보다
더 낯설게 느끼거나 못한 것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꽃이라고 피고 싶어서 필까? 아스팔트 균열의 틈 사이로 들풀씨앗이 왜 앉을까? 그걸 고민하고 앉지는 않는다.
나를 나로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존재할 수있게 해준 분이 있기에 나는 있다. 물론 선택의 순간도있었을 것이다. 그 선택된 순간이 고맙고 그 선택을 감을 굳이 하자면, 꽃봉오리 속 암술은 수분이 되길 기다리다 어느 곤충의 몸에 묻어온 튼실한 꽃가루를 받아들여 씨앗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번식이다. 결국 꽃은 씨앗을 만들기 위한 희생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꽃의 역
할은 다일 텐데 그 처연한 순간에 저리도 아름다운 빛깔과 모양새를 가지는 것이다. 누가 꽃더러 저만큼 아름다우라고 했을까? 가장 힘겹게 그것도 정말 찰나 같은 순간을 살다가는 꽃에게 찬란한 빛을 품게 해준 분에 대해겸허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저 유월넝쿨장미였으면 어쩔 뻔했을까? 내가 저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에 난 들꽃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나는 그보다 더 아름다웠을까? 때로는 순박하고, 또 때로는 화려한 꽃봉오리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실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구이기 전에 내가 ‘누구’로 살기 위해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방종하면서 그렇게 바빴기 때문이다. 물론오늘도 나는 원고와 구성안, 방송섭외 등으로 바쁘게 내몫으로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늘 바쁘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것은 조금은 사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감사한, 참으로 자존감 강한 인사다. 그러나,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수억만년의 지구의 역사, 수천년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굳이 2011년 오늘을 살아가는 나! 이건 감히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깨알 같고 터럭 같아서 다소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나이지만 아등바등 세상과 마주하고 살고 있고, 내 이름이 존재하는 내가 대견
하고 그저 감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해인지에서 내게 준 주제로 인해 나는 나를 돌이켜보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다시 세워볼 값진 기회를 가진 것이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얼굴에 무표정을 짓고 초점 없는 눈길로 타인과 마주한다. 관계가 없는 나와 나들. 때로는 나를 타인보다
더 낯설게 느끼거나 못한 것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꽃이라고 피고 싶어서 필까? 아스팔트 균열의 틈 사이로 들풀씨앗이 왜 앉을까? 그걸 고민하고 앉지는 않는다.
나를 나로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존재할 수있게 해준 분이 있기에 나는 있다. 물론 선택의 순간도있었을 것이다. 그 선택된 순간이 고맙고 그 선택을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으로 나는‘누구’임을 자각한다. 때로는 철없고 물정 모르는 아이의 말로 칭얼대고, 원망하고, 반목했지만, 그것대로 다 받아주시던 분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나의 존재에 대한 자각도 없이그저 바람에 흐르는 홀씨처럼 덧없을 것이다. 그분에게깊은 감사를 드린다.
불가에서는‘나’란 횃불을 돌릴 때 나타나는 원과 같은 허상이라고 한다.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닌 나의 마음이란다.
허상인 나를 버리고 참된 나를 찾는 여정. 그것은 어쩌면 저 들풀과 넝쿨장미와 같은 사심없는,‘무심’에 있지 않을까.
유월이 온다. 바람이 분다.
‘지금 여기’의 치열함 속에 내가 살고 있고, 살아 있
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