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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마성┃동국대학교 겸임교수 2011년 05월 351호
불교의 미래는 승가교육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국의 불교지도자들은 승가교육이야말로 불교도의 사명임을 인식하고, 승가교육의 질적 향상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의 종무행정은 승가교육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것이 주된 업무로 되어 있다. 승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교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불교의 승가교육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승가교육의 내용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조계종 교육원에서 추진한 승가교육개혁의 윤곽이 드러나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승가교육개혁이 성공하여 한국불교 발전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처음 승가교육개혁안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승가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개혁이 필요한 상태였다. 큰 틀에서 보면 승가교육개혁의 방향과 취지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약간의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점차 개선해 나가면 될 것이다.
원래 학교교육은 현장보다 앞선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그것을 현장에 돌아가 곧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현장보다 못한 낙후된 지식이나 기술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면 학교교육의 의미는 없다. 이른바 용도 폐기된 죽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학교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세속의 학문이나 교육은 보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불교의 승가교육은 이와는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 붓다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라는 진리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불교국가의 승가교육은 크게 전통식 교육과 현대식 교육 둘로 구분되었다. 전자의 전통식 교육은 사원에서 도제를 양성하는 불교 고유의 전통 방식이다. 후자의 현대식 교육은 제도화된 교육기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위 취득의 방식이다.
현대의 불교학은 후자의 학교교육에서 태동한 것이다. 그러나 전통식 교육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불교적인 승가전통의 교육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과 같은 특수 분야는 아직도 학교교육에서 도제식 교육법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불교에서는 이 두 가지 교육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요한 것은 교육의 방식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과 질이다. 훌륭한 승려를 양성할 수만 있다면 교육의 방식은 문제될 것이 없다. 지금까지 강원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더라면 승가교육개혁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현대의 불교학은 매우 복잡하게 세분화되었다. 이를테면 초기불교, 부파불교, 중관학, 유식학, 화엄학, 천태학, 밀교, 응용불교 등이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는 불교학의 전공분야를 불교교학, 불교사학, 응용불교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학의 분과는 서양의 학문방법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세분화된 불교학으로는 오히려 불교의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최근에는 학문의 경계까지 허무는 지식의 대통합, 즉 ‘통섭(統攝, consilience)’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일경일론一經一論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좁은 식견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불교의 경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불교에 처음 입문하면 우선 방대한 불교문헌에 압도당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경전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전부터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강원에서 접할 수 있는 문헌들은 대부분 대승경전이나 선어록들이다. 이러한 문헌들을 통해서는 불교의 핵심 사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기경전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방대한 불교문헌 가운데 붓다 당시의 불교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전하고 있는 것은 팔리 삼장과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경이라고 해서 초기불교의 진면목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전승 과정에서 각 부파에 의해 취사선택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록 현존하는 아함경 속에 부파의 특성이 혼입되었다 할지라도 아함경을 통해 원래의 불교 모습을 그려 볼 수밖에 없다. 아함경에는 그래도 인간붓다의 진솔한 면모를 엿볼 수 있고, 붓다의 가르침 원형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함경에서 불교의 본래 모습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전에 담겨져 있는 깊은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만 믿고 열심히 독경하고 있다. 집중하여 경전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잡념이 사라져 신앙심이 돈독해진다. 그러나 경전성립사나 그 경전에 담겨 있는 사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승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그 경전의 핵심 사상과 가치를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다.
경전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를테면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도 있고 출가자를 위한 수행법을 설한 것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강원에서는 학인들이 그러한 경전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자신의 수준이나 관심 분야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교과를 이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커리큘럼으로 짜여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다양한 불서읽기, 즉 독서를 통한 자기 계발법이다.
이러한 학습법은 남이 전해주는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이 열린 자세로 진리를 탐구하겠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학문적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만일 재가불자가 불교 교리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나는 강원에서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고 변명할 것인가. 또한 앞으로는 어학語學이나 원전어原典語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보다 깊은 불교학문을 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학이나 원전어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은 어학의 실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학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학문의 폭이 달라진다. 어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그만큼 학문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끝으로 학인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처음처럼 발심한 그 마음으로 정진하라는 것이다. 게으름과 나태야말로 수행자에게 최대의 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스님들이 행자시절과 강원에서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되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치열하게 정진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원의 교육을 마치고 각자 자기가 소속된 사찰이나 포교 현장으로 돌아가면 일상에 젖어 처음 발심했을 때의 초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잡사雜事에 얽혀 점차 출가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하는 학인이 되기를 당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