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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일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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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1년 05월 351호
겨우내 풀어내지 못한 숨을 뱉어내는지 가로수마다 초록 이파리들이 쏙쏙 돋는 봄 오후, 성남의 황송노인종합복지관에선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할머니들이 무료 진료를 받으려고 찾아와 오종종 모여앉아 있었다. 지난달에 개관식을 했는데 벌써 하루에 700여 명 정도가 이용을 하고 있다니 시간이 갈수록 복지관이 촘촘히 개나리꽃 핀 양달 같겠구나 싶다.
성남에는 현재 216개의 복지시설이 있는데, 조계종에서 수탁을 받은 곳은 이 복지관 한 곳 뿐이다. 그러기까지는 일운 스님이 세운 뜻의 힘이 컸다.
“난 출가할 때, 내 자신이 미력하나마 남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마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스님은 10년 전 분당에 ‘지장선원’이라는 포교당을 마련했다. 스님은 복지관의 자그마한 관장실을 둘러보며 ‘지장선원’의 법당이 이 방의 세 배만하단다. 처음엔 간판도 없고 불상도 없이 화엄경을 모셔놓은 그야말로 손바닥 만한 포교당이었단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삼존불을 모신 것뿐, 그때의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단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율사, 학사, 선사, 법사도 못 돼요. 잘 하지는 못 해도 부처님 경전을 독송할 수 있는 여력은 있으니 그것으로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부자 신도만이 아닌 가난한 신도라도 곁에서 나와 함께 신행할 수 있고 염불할 수 있다면 함께 모여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그 이후로도 스님은 불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욕심을 냈다면 큰 절을 지어서 살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포교당은 종단에 등록을 하고 절의 규모를 키우는 대신 회향하기 위해서 지금의 복지관을 선택했다. 그래서 작은 포교당을 유지하고 남은 경비를 현재 복지관의 전입금과 기부금으로 기탁했고 계속해서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작은 포교당이라서, 벼룩이 코끼리를 지고 가는 형국이지만 이 벼룩은 분명히 코끼리를 잘 끌고 갈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스님을 보며 신념과 신심이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뤄내기 때문이다. 스님은 부처님께 철저히 공양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신념이 있기에 무얼 시작할 때면 꼭 기도를 하고 시작한다. 그렇게 뜻한 바를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이뤄가는 것이 바로 벼룩과도 같은 스님의 힘이다.
“고찰 주지도 한번 못 해보고 큰 절을 갖지도 못 했지만, 난 그것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아요. 내게 인연이 있다면 비록 조그만 포교당이지만 복지관 하나는 운영해 나갈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내게 복업이 있다면 또 다른 지원금이 복지관을 운영해 나갈 수 있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전북 고창의 한 산골짜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출가를 하겠다고 절을 찾았지만 공부를 다 마치고 오라는 어른 스님의 말씀으로 공부를 다 마치고나서야 출가할 수 있었다. 어떤 큰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연이 있었던 것도 뜻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전생사에 끌리듯 출가했다.
“중학교 때 절 근처에 소풍을 갔는데 한 스님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받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머리를 감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 때 머리를 깎으셨던 것 같아. 구멍이 숭숭 뚫린 술렁술렁한 속옷을 입고 머리를 감는 그 모습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그 모습이 날 흥분하게 했지요.”
길에서 스님만 봐도 좋았단다. 그렇게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고민도 없이 출가를 결심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쓰러지셨다.
“나는 중노릇을 참 잘해야 해요. 내가 한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하면서까지 중이 되었으니….”
그래서 스님은 때때로 당신의 민머리를 만지며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산사에서 보았던 눈부시던 한 스님의 머리감던 모습도 떠올린다.
스님은 해인승가대학을 마치고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복지’에 큰 관심이 있었다거나 복지 서비스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 스스로의 희생으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오래고 깊은 뜻이 현재의 포교당과 복지관에까지 가닿은 게 아닐까.
“혹시 인과가 있다면 내가 어르신들께 밥 한 그릇 드림으로써 먼 훗날 나도 노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복지관을 드나드는 노인들을 보면서 노후에 대한 생각이 많으실 것만 같은데 스님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단다.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한다. 포교당 초창기에 과로로 쓰러졌던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스스로의 육신도 마음도 제도하지 못 하면서 과연 누구를 제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편안하고 행복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님은 건강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열심히 기도해서 업장이 녹는다면 나쁜 인과도 다 녹지 않을까요. 그래서 난 노후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노후는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내가 지금 열심히 산다면 노후는 아름다운 승려생활로 마감되지 않을까 싶어요.”
스님은 복지관에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스님이 하는 최상의 일은 승복을 입고 염주를 든 채 복지관을 하루에 두세 번씩 둘러보는 것이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내 이름을 듣는 자는 삼도의 고통이 면해지고 나의 모습을 보는 자는 해탈을 얻는다 했지요. 내가 여법하게 승복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도 부처님, 불교, 자비를 생각하고 밥 한 그릇도 시주로 먹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내게 하고 싶어요.”
복지관에 오는 이들의 80% 이상이 타 종교인이란다. 그래서 때론 스님을 보고 인사도 안 하고 ‘스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도 마뜩찮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스님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슬에 옷 젖듯이 언젠가는 복지관에 오면서부터 스님을 생각하고 삼보를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만으로 스님은 만족일 것이란다.
스님은 본래부터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서 차 마시며 얘기 나누는 것이 그리도 좋을 수 없단다. 힘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에너지가 더 생겨나는 느낌이란다. 되레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섭고 고독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스님은 복지관에 딱 맞는 성품이 아닌가 싶은데, 그래서 포교당 체질이기도 하다며 웃으신다.
“포교당이든 복지관이든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찾아오지요. 그러면 저는 부처님이 하신 방법을 표본 삼아 상담을 해줍니다. 진짜 심리학은 불교라고 볼 수 있어요. 불교 경전은 모든 심리학의 교제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스님은 고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서양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경전은 어떠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담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능엄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마음은 어디 있느냐?’ 했지요. 부처님은 정말 위대한 심리 상담가입니다.”
스님은 사람마다에게 맞는 이야기가 필요한 법이란 말씀을 강조하신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더 알려고 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단다.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위주로 살고 있는 모습이란다. 복지관이야말로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곳이라며 스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너에게 귀인이 되고 너는 나에게 귀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나에게만 귀인이 오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귀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복지관이야말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기에 스님은 직원을 채용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러고 나니 스님만큼이나 복지의 꽃을 피울 뜨거운 귀인들이 모였다며 스님은 기뻐하신다. 스님은 그 모든 이들에게 귀인이 되고자 노력한단다.
스님의 원력은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해인사에서 어린이 법회를 하던 시절부터 중진이 되면 조그마한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교육 사업을 펼쳐가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터다. 이제는 그 꿈을 펼칠 시기가 오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스님은 주변이 허락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교육 사업을 꼭 할 것이란다. 누군가는 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릴 욕심은 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일운 스님이다.
“난 정치적인 야망도 없고 수도승도 못 되고 학승도 못 되니, 그냥 숨어서 조용히 일하는 교육자의 삶을 살고 싶어요.”
스님은 어디서 누군가 부르기만 하면 바로 달려가신다.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있는 스님이다. 봄바람처럼 누군가의 부름에 훌쩍 담장을 넘었다가 누군가 슬픔 앞에선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농담을 슬쩍 건네며 너른 들판을 달려 어딘가로 불어 가신다. 대체 또 어디로 가셨나 뒤돌아보니 어느새 복지관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 가만가만 정담을 나누시는 중이다. 복지관 가득 봄꽃이 활짝도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