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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화합을 일깨워주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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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임수경┃해인지 기자 2011년 05월 351호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불이며 오른쪽은 비(妃)님의 비로자나불이십니다.
중화 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칠하여 이루었습니다.
誓願大角干主燈身賜彌右座妃主燈身○ 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成

2005년 여름,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법보전, 국보 제52호) 비로자나불 복장 내에서 발견된 묵서명의 내용이다. 불상을 조성할 때는 불상의 내부 빈 공간에 그 시대의 유물과 발원문 등을 채워 넣고(복장) 금칠을(개금) 한 후 법당에 모시는 예식을 거친다. 당시 법보전 비로자나불의 개금 불사를 위해 복장 유물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이 묵서명이 발견된 것이다.
이 묵서명이 의미하는 바는 세 가지인데 첫째, 이 불상의 조성 시기다. 중화 3년은 신라 제49대 헌강왕 8년, 서기 883년이다. 1,2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야 비로소 묵서명이 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불상을 다룸에 있어서 복장 내부를 들여다본다든가 심지어 만지는 것조차도 불경스럽게 여기던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숱한 전란과 화재, 파란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목조 불상이 오늘에까지 현존하게 된 인연은 실로 놀라운 일이며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둘째, 묵서명이 발견된 불상 외에 또 다른 불상이 함께 조성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해인사에서는 대적광전(큰 법당)에 모시고 있던 비로자나불이 똑같은 크기와 형태로 조성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두 불상이 같은 시기에 조성된 내력에 대해서는 과학적,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현재 해인사에서는 이 두 불상을 대비로전에 함께 모셔두고 있다.
셋째, 대각간과 비를 함께 불상으로 조성한 간절한 서원의 의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불상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8~9세기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지권인이란 왼손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오른손으로 감싸 쥐는 형상으로 오른손은 불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낸다. 즉 중생과 부처가,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깊은 뜻을 나타내는데 남북 분단 및 남남 갈등의 현재적 상황에서는 평화통일과 국민 대화합의 의미를 지니는 부처님이라 할 수 있겠다.
천 년을 훨씬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윤회가 있었을까. 두 분의 비로자나불은 여러 생에 걸친 간절한 서원으로 윤회의 길에서 또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진실은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역사는 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의 열쇠는 확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정하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9세기의 비밀은 상생과 화합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해인사에서는 두 불상에 대한 대국민 친견법회를 예정하고 있었고 그 무렵 나는 아이의 49재를 지내기 위해 해인사에 머물고 있었다. 금을 입히기 전의 불상은 일곱 번의 옻칠을 하여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나는 주지 스님께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대통령을 모셔와 보여드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드렸다.
그 때부터 일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직 대통령의 일정이 그렇게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앞두고 연일 빡빡한 일정을 수행 중이었다. 청와대 관계자와의 여러 차례의 부정적인 문답이 오고가는 와중에 겨우 한 시간 정도의 일정을 뺄 수 있었던 것은 경남 사천에서 열린 초음속 고등훈련기 출고 기념식 때문이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사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대통령 일행의 헬기는 해인사를 거쳐 서울로 이동하는 것으로 급하게 변경되었다.
산새소리, 바람소리만 가득하던 고즈넉한 산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합천경찰서의 거의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 대통령 경호를 위해 입산했고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내려와 통행제한 및 세밀한 점검을 시작했다. 사찰 구내에 2미터 간격으로 정렬하고 있는 경찰들에게는 법복을 입혔다. 마침내 대통령이 탄 헬기가 해발 7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스님 전용 축구장에 내렸다. 대통령 내외분은 검은 옻칠을 한 두 분 부처님을 친견한 자리에서 감탄을 연발하셨다. 그렇게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1,200년 역사를 간직한 목조 불상은 21세기의 대통령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재미있는 말씀과 더불어 비로전 건립에 대한 약속을 하고 가셨다.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중의 하나가 주택 정책인데 이 두 분이 그동안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계셨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 분들의 주택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대통령 방문 이후 불상은 본격적으로 공개되었다. ‘신라 천 년 국내 최고最古 목조 불상 해인사 비로자나불 친견대법회’가 200일간 지속되어 연인원 50만 명 이상이 해인사를 찾았다. 새로 조성된 복장물에는 사리함, 후령통, 연기문, 각종 경전, 다라니 및 대통령 내외분의 국태민안 발원문까지 범종교적, 범국민적 정성을 가득 모았다.
연기문에는 종정 스님을 비롯하여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이하 소임자 스님들의 명단, 그리고 대통령 내외분의 이름이 들어갔다. 나는 친견법회 기간 내내 대외 홍보, 기획, 시주 접수 등의 소임을 맡아 스님이 아닌 재가자로는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내 이름도 연기문에 새겨졌다. 연기문을 포함한 복장물은 수백 년 후에나 공개되게 된다. 천 년의 비밀을 풀어놓고 우리 곁에 오신 비로자나불은 다시 천 년 후의 만남을 기다리며 그렇게 금빛 광명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대통령의 약속대로 마침내 대비로전이 건립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낙성법회 때 다시금 해인사를 찾으셨다. 그리고 대비로전에는 대통령 내외분의 서원이 담긴 연등이 달렸다.
나는 해인사를 갈 때면 대비로전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두 분 비로자나 부처님의 간절한 서원과 특별한 인연, 내 마음 속의 부처님, 내 마음 속의 대통령님, 그리고 내 아이. 세상 떠난 모든 분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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