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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처만물시자불處處萬物是慈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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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서상택┃현대증권 대구동부지역 2011년 05월 351호
낯선 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월간 《해인》5월호에 수필 형식의 원고를 요청하였다. 얼마 전 아내로부터 해인지에서 연락이 갈 지 모르니 알고 있으라는 귀띔은 있었으나 현실로 닥친 것이다. 원래 천학비재淺學菲才하고 특히 글 쓰는 재주는 더더욱 미천한지라 주저하는 순간, “이것도 인연”이라는 말씀에 차마 거절치 못하고 “예” 하고 말했다. 주제는 “내 곁에 오신 부처님”이라고 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있어 불교와 부처님 세계는 늘 어머님의 몫이었다. 너무나 독실한 신자이셨던 어머니께서는 늘 다니시던 사찰과 집에서 가족의 명복을 빌고, 부처님의 가피를 가져다 주시는, 내 영혼 속의 부처님이셨다. 내게 있어 부처님은 어머님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 그냥 어머님과 같은 내 영혼의 뿌리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부처님 가르침의 또 다른 단초端初를 심어준 계기가 나타났다. 당시 해인사에 주석하고 계시다 1981년 6대 종정으로 취임하신 성철 스님의 취임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부처님 세계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함을 심어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내 부처님 세계는 다시 어머님의 몫으로 돌아갔고, 나는 평범한 법대생의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 후 어떤 인연으로 1989년 증권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법대생의 정신세계에서는 치열하게만 느껴지던 증권시장의 종사자로 신입사원의 생활을 거치던 중 우연히 최인호 작가의 연재소설 “길 없는 길”을 통해 경허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주식시장이 끝나고 영업활동을 마친 후 퇴근시간이면 서점에서 이런 저런 불교 서적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주식시장은 입사 당시 1,000포인트가 넘었으나 줄곧 하락하면서 늘 시장에 쫓기는 일상을 보내던 중, 1993년 성철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더욱 더 스님께서 남기신 법문집들과 법문 테이프 등을 통해 어머님으로부터의 불교세계에서 차츰 독립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늘 일상에 쫓기는 직업 속에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성철스님 법문 중에 나오는 마삼근을 화두로 잡고, 방법도 모르면서 참선한답시고 앉아 보기도 하고 경허집, 한암집 등 글로만 부처님을 만나려 안달하고 용만 쓰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선지식을 찾아가 배움을 청할 용기도 없고 인연도 만나지 못한 채…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고 현 직장으로 옮기는 등의 굴곡 속에 많은 인연들의 도움으로 2001년 영주 지점장으로 발령 받았다. 낯선 객지의 초임 지점장으로서 느끼는 막중한 책임감과 힘든 주식시장의 시황으로 일상을 보내며 심적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2002년 봄 늦은 주말 무작정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무여 스님을 찾아가 뵙기를 청하자 흔쾌히 응해주셨다. 여차한 인연으로 증권맨으로 여기까지 와서 내면의 돌파구를 찾고자 스님을 찾아온 사연, 방법도 모르고 마삼근 화두를 틈틈이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자상하게 화두 드는 법과 호흡법 등을 가르쳐주셨고 차 한잔에, “금강경해설집” 한 권을 주시면서, 화두는 이뭣고로 바꿔보라 권하시면서, 하루 10분씩이라도 열심히 해보라 하셨다. 지금도 그때 스님의 자비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해 여름 주말 어느 날 그렇게 가고 싶어 했으면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봉화 춘양의 각화사를 찾아가 대웅전 참배 후, “일반인 출입금지”의 팻말도 무시한 채 성큼 선방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하안거 결제 중이던 스님들께서 앉아 계셨고, 주지스님이신 탄공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와서 법당 마당에서 스님 나오시길 기다렸다. 방선 후 나오신 스님께서 어디서 왔느냐 물으신 후, 저녁 공양 후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시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다. 스님의 방에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액자가 걸려있었는데 배웅하는 자리에서 스님께서 “절 집은 늘 주인처럼 왔다 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돌아오면서 느낀 묘한 희열감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으랴.

그 해 가을 15개월 가행정진加行精進 동안거 결제 몇 일전, 스님께 어느 책에서 본 얘기를 말씀 드렸더니 스님께서 대뜸 “처사는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 다 먹고 소화시키고 난 똥 먹는 격”이라는 한 방망이를 던지셨다.

아! 아! 아!
왜 성철 스님께서 수좌오계에서 “책 읽지 말라”고 하셨던가 라는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동안거 중, 주말에 틈만 나면 각화사로 올라가 스님께 참구했고, 그때 스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흔히들 증권회사의 전광 시세판을 그 나라 경제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 속에는 수많은 기업과 시장참여자, 종사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할 것이다. 20 수년간 증권맨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부처님은 나의 생과 함께 늘 다른 모습으로 계셨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때론 어머님의 모습으로, 스님, 가족, 내 동료, 고객, 친구, 지인들의 모습으로 상주하시면서 “처처만물시자불處處萬物是慈佛, 현재현실시극락現在現實是極樂”임을 가르쳐주고 계신다는 것을!

오늘도 10여 년의 습관대로 아침, 저녁 삼배를 올린다. “일체 중생이 모두 행복하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발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