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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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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박찬국┃서울대 철학과 교수 2011년 05월 351호
부처라는 이름은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친숙한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몇 년 동안 ‘대한도덕회’라는 이름의 종교단체에 다닌 적이 있다. 그 종교단체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종합한 종교였지만 부처를 위대한 스승이자 성인으로 모시고 있었다. 이 종교단체에서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이 부처를 끊임없이 칭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덧 나에게도 부처는 내가 본받아야 할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내 마음 깊숙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초등학생이 부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어지는 불교에 대한 설법을 나는 어른들 틈에 앉아서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었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부처는 옛날에 그렇게 위대한 분이 있었다는 정도로 막연하게 다가왔었다.
그러던 부처에게 내가 절실하게 다가가고자 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삶에 대한 지독한 허무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그 온갖 노고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삶으로 갑자기 그 모습을 내 앞에 드러내었다. 이 때부터 나의 삶 자체가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살아야할 의미는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화하면서 나는 그 물음의 중압감에 항상 가슴이 답답했었다. 가장 발랄한 생명력으로 빛나야 할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처절하기만 했다.
이 때 나는 불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하여 불교에 대한 책들을 진지하게 읽었지만 부처의 가르침은 그것을 주위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이해하려고 했던 고등학생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부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절실했지만 부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철학을 전공하면 인생문제를 풀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기대어 휘청거리는 삶을 가까스로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8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그 당시 대학 풍조에 따라서 마르크시즘에 빠져 버렸다. 삶의 의미에 목말라 하던 나는 마르크시즘을 나의 삶의 의미로 삼게 되면서 마르크스주의 광신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2년 후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환멸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랑과 형제애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른 바 위대한 혁명가가 되기 위한 경쟁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무시가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시기와 질시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실망하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사회와 인간의 변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하나의 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시즘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고서 나는 다시 생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한 채 허무주의에 빠져 버렸다. 다시 내 인생은 공허해지고 처참해졌다.
그렇게 허무감 속에서 지내면서 속절없이 30의 나이로 접어들게 된 어느 날 나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온통 세상이 밝아지고 나 자신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래 나를 짓눌러 왔던 허망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답답하면서도 공허했던 가슴은 시원해졌고 밝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의미를 향한 나의 방황이 끝난 것이다.
이 때 나는 나의 체험이 부처가 말하는 깨달음에 유사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불교 관련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부처의 가르침이야말로 삶의 실상을 가장 드러내고 있고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장 잘 알려주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한 후부터 지금까지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 체험 이후부터 나는 부처의 가르침을 항상 내 가까이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의 나의 철학적 과제를 서양철학과 불교철학을 비교하고 종합하면서 서양철학과 불교철학 양자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 작년 12월에 발간된 졸저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 - 인간관을 중심으로》와 함께 나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첫걸음을 디뎠다고 생각한다.
부처는 나에게는 처음에는 막연하게 존경했던 스승으로 그 다음에는 내가 절실하게 가르침을 구했지만 이해를 넘어서 있던 스승으로 다가오셨지만, 지금은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나를 지도하는 친근하고 온화한 스승으로 와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