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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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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종현 / 해인지 편집장 2011년 05월 351호
해인사 강원에는 “관음대장”이란 소임이 있다. 관음전은 승가대학 1, 2학년이 함께 쓰는 큰방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관음전의 대장인 “관음대장” 소임은 달리 규율부장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일도 많아서 스님들의 개인 · 단체생활 점검, 모든 운력(문풍지, 모기장, 파초운력 등)등을 지휘하기 때문에 2학년에서 가장 깐깐한 스님을 소임자로 앉힌다.

1995년 여름 관음대장소임은 가장 엄하기로 소문난 스님이 소임을 맡았다. 아랫반 스님들은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생활했으며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건조대(빨래 너는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스님들의 속옷들이 널려있는 건조대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친 것이다. 비를 어느 정도 맞은 속옷들을 건조대 소임자가 한꺼번에 걷어서 지대방에 갖다 두었다.

오후가 되어 관음대장스님께서 속옷 찾아가라는 공지가 떴고 몇몇 스님들은 자기 속옷을 찾아갔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많은 수의 속옷이 주인을 잃은 체 그대로 지대방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속옷은 흰색에 100% 면 소재로 사각반바지와 반팔 티 100여벌을 한꺼번에 먹물 들여 스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 것이었다.
그러니 속옷이 누구 것인지 표시도 안 나고 또 빗물에 젖어서 그런지 많은 수의 스님들이 찾아 가지 않았다. 관음대장스님이 노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저녁이 되어 관음대장스님의 소집으로 1학년 전체가 불려왔고 관음전에 무릎 꿇고 한시간여동안 꾸중을 들어야 했다. 개인물품을 소홀히 한 것이며 시줏물을 아끼지 않은 것이며….
관음대장스님의 일장 연설을 들은 후 남겨졌던 속옷은 내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싹 찾아가 버렸다.

이후 새로운 풍속이 생겼다. 속옷 상, 하의에 개인이름을 시꺼먼 매직으로 일일이 써넣은 것이다. 그런 후 건조대에는 남겨지거나 버려진 속옷은 없었다.

요즘은 그때와 많은 변화가 있다. 속옷도 화려하고 개성에 맞는 기능성 옷들을 입기 때문에 예전 같은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정말 하얀 면 속옷을 먹물 들여 단체로 나누어 주었던 그때의 추억이 새롭다. 요즘 가격 비싼 속옷들을 입어보아도 그 먹물들인 면속옷의 포근함과 부드러운 착용감은 따라오질 못하는 것 같다. 먹물들인 속옷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먹물 들이는 풍경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