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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과 탈속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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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1년 04월 350호
어부가 지닌 다양하고 복잡한 상징 때문인지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그림 속 등장인물 중 신선 다음으로 많은 인물이 바로 어부이다. 앞서 우리는 마원의 <한강독조도>의 어부와 조선시대 화원인 이명욱의 <어초문답도>의 어부를 만났다. 이들 그림 속 어부의 계보를 이야기 해보자면 태공망식 어부와 <어부사〉 계통의 어부의 양대 산맥으로 나눌 수 있겠다. 태공망은 위수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으니 세상과 세월을 낚던 어부이고, 어부사의 어부는 세상을 등지고 초월한 어부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이런 구분을 분명히 인식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강에 배를 띄우고 낚시대를 드리운 어촌풍경의 <독조도(獨釣圖;홀로 낚시질을 하다)>와 어부 자체에 집중한 <어부도漁父圖>형식의 그림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원래 어촌 풍경은 어촌에서 그려졌을 것이다. 중국에서 보자면 높은 산이 많은 화북華北지역 보다는 강남지역 즉 양자강 이남 주로 오흥吳興지방에서 많이 그려졌다. 시작이야 어떻든지간에 어촌의 풍광이라는 것은 산수화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성이나 극적인 묘사 없이 매우 한적하고 담담하면서도 평화롭다. 태공망의 낚시질로 시작한 <독조도> 계통의 그림들은 이후 평담(平淡; 평화롭고 담담함)이라는 옷을 입고 어촌풍경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 계통에서 유명한 화가가 바로 오진(吳鎭; 1280~1354)이다. 그는 원대 말기에 활동했던 작가로 후일 조맹부 대신 원말사대가로 꼽히게 된 화가이다. 대나무와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특히 그의 산수화는 산수라기보다는 어촌풍경에 가까운 어부도 계통의 그림들이었다. 조은朝隱과 같은 엉성한 논리를 내세웠던 원대의 은자隱者들과 달리 진정으로 세속을 등지고 있었던 오진의 <어부도>들은 어부가 지닌 은유적 의미에 매우 근접해 있는 작품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어부도>는 어부가 지닌 세속을 떠난 은자의 은유를 그림 속 여러 장치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는 그림이다. 화면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비스듬한 고깃배의 뱃전에는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밀짚모자를 쓴 모습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배의 기둥에는 눈에 잘 띄게 걸어놓은 표주박, 분명 거기에는 은자들의 필수품인 술이 담겨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가 배를 띄운 그 강물은 시선을 상류 쪽 작은 시냇물 자락으로 이끌고 있는데, 원래 그 강물의 수원지는 아득하게 보이는 첩첩 산중으로 연결된 시냇물로 첩첩 산중은 그 어부의 신분인 은자의 은일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어부는 아마도 그 산중에서 냇물을 따라 내려와 등지고 있던 속세와 그 경계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며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높은 봉우리로 연결된 산들은 신선들이 산다는 선경仙境 즉 이상향을 상징하고, 산중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이상향과 세속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세상으로 나갈 일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강가로 채 닿지 않았지만 이쪽으로 향해있는 뱃머리와 짐짓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은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어부가 가지고 있는 세속에 대한 강한 부정은 오히려 강한 긍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