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 발전,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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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1년 04월 350호
문명이라고 불리우는 현대의 물신을 지탱하는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일까. 핵 (또는 원자력) 그리고 석유이다. 기계를 돌리고, 자동차를 굴러가게 하며 비행기를 띄워준다. 어둠을 밝히고, 찬 공기를 덥히고 더운 공기를 식혀준다. 옷과 신발로 육체를 감싸도록 해준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유지하게 하는 핵과 석유가 어느 날 사라진다면, 인류는 200여 년 전 산업혁명의 뒷 시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칭송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기에 한 가지 보탤 것이 있다. 핵과 석유를 가공하여 우리 생활에 유용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과학기술이다. 핵과학, 석유공학이 없다면 핵과 석유는 그저 물질일 뿐이다. 땅과 바다 속 깊이 묻혀 존재감조차 미미할 것이다.
그런데 두 물질이 지금 인류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방사능 오염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인물질이다. 여기까지라면 덜 부담스러운 고민거리일 터이다. 우리 주변에서 치워버리면 되니까. 그랬다가는 폭삭 주저앉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내치지도 못하고 품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핵과 석유를 밀쳐낸 자리를 메울 대체재가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진퇴양난의 처지에서는 지금의 것이 관행적으로 행세하기 마련이다. 이 두 물질이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고,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치워버릴 수도 없다. 핵과 석유의 위험성은 수십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핵과 석유는 당당한 지배자이며, 이후로도 최소 100년 동안은 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같다’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이후로 몇 년 동안 핵과 석유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질 논쟁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투쟁에 의해 결론지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핵과 석유는 과학과 상식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쟁점이 그렇듯이, 두 물질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정치와 돈의 문제이다.
3. 11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 여파로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이 사고는 핵안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반핵운동이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안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반대운동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핵 찬성론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방폐장은 경주지역으로 변경됐고,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부안 투쟁을 계기로 핵 발전에 의한 전력생산 의존도가 낮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늘어났다. 방폐장 문제는 지역 갈등, 지역 내 갈등의 원인이 되어 이곳 저곳을 떠돌고 있을 뿐이다.
대안은 없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없다’. 오히려 핵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핵 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는 36개다. 미국이 103기로 가장 많다. 우리나라는 20기로 전력생산의 40%를 담당한다. 50%로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중국과 몇 나라는 후쿠시마 사고로 깜짝 놀란 모습이다. 보도에 따르면,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3월 16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하는 절차를 잠정 보류했다고 신화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만 해도 환경오염 문제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 충족 등을 이유로 원전 건설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왔다. 13개 원전이 가동 중인 중국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20년까지 현재의 1%에서 5%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34곳을 추가 건설할 예정이었다.(주간경향, 핵발전 안전성 ‘경고의 종’ 울렸다, 2011. 3. 29)
우리나라 정부는 안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염려지심 때문인지 의연한 모습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핵 발전시설의 안전을 의심할만한 근거는 없다. 핵 발전을 시작한지 30년이 되도록 큰 사고로 기록될만한 일도 터지지 않았다. 6.5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하고, 핵 연료봉을 적정온도로 유지하는 냉각시스템도 일본의 것과는 다른 것이므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에 안심이 된다. 그러나 핵 신뢰도가 너무 크고 굳건하니 오히려 불안감이 밀려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본인도 우리처럼 안심했다. 자부심도 가졌을 것이다. 잦은 지진을 견뎌내는, 지진으로 많은 것을 잃으면서, 그래서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이뤄냈으니 박수를 받아 마땅한 자부심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일본을 부러워하며, 그러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뒤따라가고 있다.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욕망을 에너지로 삼아 뒤쫓고 있다. 일본과 핵 의존도가 가장 높은 프랑스를 따돌리고 아랍에미레이트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겠다는 것이 그 명백한 사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후쿠시마 같은 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을 것이며, 없어야 한다. 그래야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 수 있다. 만약 핵 발전소가 있는 전남 영광, 부산 고리, 경주 월성, 울진 중 한곳에서 큰 사고가 터지면 그 피해가 너무 크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고로 후쿠시마 핵 발전소 반경 30km 이내의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권고령을 내렸다. 우리나라에 사고가 터져 후쿠시마와 같은 대피령이 내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 대혼란, 대재앙이 될 것이다. 부산 고리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난다면 부산시민 거의 전부가 피난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핵 발전소에서는 사고가 터져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데 사고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이 크다고 해서 비껴가는 문제가 아니다. 엄밀한 과학의 영역이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핵 발전소 안전진단에 들어갔다. 3개월 여 동안 꼼꼼히 살핀다고 한다. 다행이다. 40여 시민․환경단체가 모여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피해자 지원 및 핵발전정책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시민공동행동)이 3월 16일 결성되어 반핵운동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 또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핵 발전의 장점과 함께 위험성도 알아야 하고, 시민의 감시를 통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하고 나아가 핵을 대체하는 기술개발로 정책의 방향을 트는 순기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공동행동은 세 가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내 핵 발전소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안전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정부의 핵 발전소 확대 정책의 중단, 수명을 연장해 운영하고 있는 고리 1호기의 가동 중단과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 계획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에 비판적인 움직임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인다.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무서워한다. 정부가 시민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운영 원리로 삼는 국가에서는 당연하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시민행동에 색깔을 덧씌워 치워버리려 한다. 핵 발전정책에 있어서도 외면하거나 억압하려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존립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민행동이 주장하는 세 가지를 진지하게 함께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