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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밟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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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법진┃ 해인사승가대학 2학년 2011년 04월 350호
출가한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몸은 완전히 커버렸고, 세상도 변했는데 지금 걷는 이 길과 내 정신만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을 놓고 출가한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아서, 무엇이 그렇게 좋았기에 우리를 버렸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산문 앞을 밟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인생무상이라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고 했다. 전생에 어지간히도 복을 많이 지었는지 나는 젊은 나이부터 부처님의 품안에 몸을 비비고 있음에도, 열심히 수행정진하기는 커녕 7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철없는 정신으로 길을 걷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조계종 승려로서 내가 첫 걸음을 뗀 곳을 떠났다가 다시 밟으며 낙산사로 향했다. 아주 잠깐 동안의 행자생활이었지만 수행이나 공부보다는 혼나고 야단맞은 기억만 더 또렷한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새벽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고 일어나 하품을 쩍쩍하며 걸어가던 것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온다. 출가의 목적도, 의의도 없고.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만 중얼중얼 따라하던 천수경은 어느새 입에 붙어버렸다.
하루에 천배씩 하던 대법당은 벌써 불사가 끝나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내가 있을 때 한창 화재로 인한 북원불사를 하던 시절에 비하면 꽤 달라진 모습이었다.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그렇게 절을 많이 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하니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걸까. 왠지 법당 안이 남의 집보다도 더 어색한 느낌에 삼배만 올리고 별다른 인사 없이 법당을 나섰다.
몇 개월 되지 않은 행자생활을 했음에도 낙산사의 보살님, 처사님들은 대부분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내게 초발심자경문을 가르쳐 주셨던 스님께 삼배를 올리니 스님께서는 잘하고 있다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이 왜 행자시절때는 그렇게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는지 참 모를 일이다.
방사를 받고 내려가던 길.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조그만 뭔가가 꾸물거리며 내 발치로 다가왔다. 낙산사에서 키우는 토끼였다. 낙산사에는 경내에 토끼 몇 마리를 풀어놓고 키우는데 이 녀석들이 어찌나 영악한지 먹이를 주면 오지 않고 바닥에 두면 먹고 도망가며 사람이 만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먹이도 없는데 내게 달려오는 놈이 신기해서 들어 올려 자세히 봤더니 행자 때 먹이를 주며 키우던 새끼 토끼였다. 어느새 살이 오를 대로 오르고 묵직해진 놈이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지 않고 날 알아본 것 같아 너무 기특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토끼랑 놀고 방사로 들어가서 씻고 누우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느낌. 스스로의 느낌, 생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편한 것만을 좋아하고 그러기 위해서 남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마구 행동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애 같은 행동과 생각은 그대로인데 지나온 길을 다시 밟는 나는 어느새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돼버렸다.
갑작스레 걱정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오기로 시작한 이 길이었지만 이제는 찾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이 길로 새롭게 뛰어들었는데 이런 풀린 생각으로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데 정말로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왔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품고 나는 눈을 감았다. 방의 창 너머로 보이는 해수관음상이 오늘따라 너무 밝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