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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 있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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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1년 04월 350호
“신은 진실을 알지만 빨리 말하지 않는다.”(L. N. 톨스토이)


근 열흘간 대지진에 희생된 많은 죽음을 전해 듣고 있다. 벌써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만 명도 넘는 사람들의 만 가지도 넘는 죽음이 일본 열도에는 널려져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 그날은 센다이시로 이사를 온 희망의 날이었지만, 그날이 다 가기도 전에 그는 ‘살고 싶다’라는 마지막의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 누구는 바로 뒤에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시민의 차를 인도하다가, 눈 깜박할 사이에 종이처럼 찢겨진 빨간 차와 함께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간신히 살아나온 한 남자는 아내와 아이를 잡았던 손을 펼쳐 보이며 어느 곳에서 그들을 놓쳤는지를 어디에서 그들을 찾을 수는 있는 것인지를 괴로워했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대재앙에 가까운 재난 속에서 죽었다.

금방 끝나는 죽음의 시간도 죽음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찢겨나가는 폭력 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상상할 수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의 한 가운데서 그들은 얼마나 비통스러웠을까?
나는 쓰나미와 대지진에 희생된 그들을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의 죽음이 내 동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면 하고 빈다. 그들이 살았을 때 삶에 순응해서 행복했듯이 그들이 죽음에 순응해서 행복했기를 빌고 또 빈다. 그들이 살았을 때 사랑하는 이들 속에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죽었을 때에도 사랑치 않았던 사람들과 조차도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기를 빌고 또 빈다. 그래서 그들이 재앙과 재난의 죽음 속에서라도 고요와 평화를 가지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나는 지난겨울 고독한 죽음의 한가운데서도 평온과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모순의 기도를 죽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드리고 싶다.

겨울의 어느 날 밤, 나는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의 입구를 지키는 수위 할아버지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나 “눈도 쉬어가는 변산반도에서 쉬어 갈 거예요”했다.
꿈을 꾸자마자 깨어났다. “뭐야?” 싶었다. 그는 아주 친절하고 책임감이 넘치는 수위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의 사명어린 직무 수행은 간혹 가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쓴소리를 하게했고, 그의 넘치는 친절은 종종 오지랖이 넓은 것으로 비춰졌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경비면 족하다 싶어서 그 할아버지하고는 아무쪼록 냉냉한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으면 간식 같은 것으로 갚는 그런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내 꿈에 나타나서 어린 소년이 소풍을 가는 듯한 설렘으로 변산반도에 간다고 자랑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눈 내리는 변산반도’는 내 마음 속에서 너울 치는 차마 가보지못하고 남겨놓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 20년 전 봄 무렵 변산반도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눈 내리는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은 책에서 읽은, 보지 못한 그리움이었다. 추억과 기대가 만나는 곳에서 상상하게 된 ‘눈 내리는 변산반도’는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실제로 눈 내리는 날 변산반도에 간다면 분명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괜히 왔다’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것은 책으로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은 영화로 만들었을 때 절대 보지 않는 내 작은 원칙과 같았다.
꿈이 마음에 안 들었다. 좋은 꿈도 아니고, 나쁜 꿈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잠을 잤다.

아침이 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70년 만의 폭설이라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관리실에서 각 가정으로 방송을 했다.
“ooo동 경비ooo씨가 어젯밤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은 …(중략)… 조의를 표하고 싶으신 분은 아파트 관리실로 문의하십시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꿈에서 그를 본 시각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시각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방송으로 그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사실 나에게는 한 인간이 죽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왜 내 꿈에서 와서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어야 했는가가 문제였다. 죽은 영혼을 불러낼 재주는 없으니 현실에서 이리저리 맞춰 보아야했다. 마루를 물걸레질 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약간의 조의금을 챙겨들고 관리실로 부리나케 갔다.

거기에서 나는 그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수위 할아버지는 혼자 사시는 분이었다. 그가 무슨 사연으로 ‘독거노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혼자 살았고, 그래서 혼자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죽어 있는 그를 동료 수위 아저씨가 발견을 했단다. 늦어도 새벽 6시에는 교대를 해야 하는데 수위 할아버지가 나오지 않았단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았단다. 동료 아저씨가 혹시나 해서 수위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 갔던 것이었다. 관리실 사람들에게 수위 할아버지는 임종을 지키는 이도 없이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었다. 삶도 부박하더니 죽음도 박복하다고 다들 안타까워했다. 나는 거기다 대고 전날 밤 꿈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리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온통 눈으로 쌓여 있었다. 내 발자국이 또렷하게 찍히자마자 눈이 덮어버렸다. 이제 수위 할아버지가 걷는 눈길은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흉내 내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찾아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그가 내 꿈으로 들어왔고, 그는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에게 주었다. 그가 나를 선택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과연 내가 그의 마지막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나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은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준 꿈은 단 한번 꾸고 말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준 기묘한 수수께끼를 내 인생에 받아들일 때, 나는 그와 나의 꿈에서 마지막이자 처음인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죽음이라는 곳이 얼마나 기쁜 곳인지를 알려 주었다. 기쁜 죽음 후에 갈 곳이 어디인가를 알려 주었다. 결국 그는 죽음도 좌절시키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살아서 보여준 넘친다 싶은 친절과 일에 대한 열정은 아마도 죽음도 극복하는 삶에 대한 깊은 동경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나는 그가 진실한 삶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가 별이 되었다면,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떠 있는 별이 되었을 것 같다.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빛은 아직 우리의 하늘 위에서 빛나지 않는다. 그 빛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별빛은 지구가 사라진 후 우리의 하늘이 푸르렀던 자리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무덤 속의 수의가 요람 위 배내옷으로 변하는 모순의 시간을 인내하는 자만이 그 별빛아래 서 있을 수 있다.

P .S. ‘눈 내리는 변산반도’로 간 수위 할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는 오늘 저녁, 서울과 중부 지방에는 봄눈이 내리고 있다. 아파트 입구 산수유의 노란 꽃망울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고통의 죽음을 맞이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얀 눈길을 밟고 꽃피는 마을에 가기를,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