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동북지역, 즉 ‘토호쿠’ 에서 대지진과 해일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외 언론에서 많이 보도했지만, 다른건 몰라도 대재앙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이 이번 사태를 더 크게 확대시키지 않았다.
지진으로 인한 일명 ‘사재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기사화됐다. 물론 인간의 공포심때문에 동경에서까지 기본 생필품과 휘발유가 많이 동난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혼란스럽거나 난리 북새통이 난건 절대 아니다. 기사에서 나타난 ‘열풍’이나 ‘혼란’ 등의 단어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신문언론의 전통일지는 몰라도, 현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례로 ‘사재기’의 경우, 인구가 우리의 두배가 넘기때문에 물건이 더 빠른 속도로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계산할 때는 차분히 줄을 섰다.
동북지방은 시골이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식 대형 마켓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으며, 이 대형 수퍼마켓들 앞에는 아침부터 수십명의 주민들이 수십미터씩 줄을 서 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치자. 그 다음이 놀랍다. 수퍼마켓 직원들은 줄을 선 주민들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내지 않았다. 5분 간격으로 10명씩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문이 열렸다고 뛰는 사람은 없다.
마켓이 작은 마켓이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크기는 1층 식품관만 있는 이마트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줄 선 수십명 주민 모두를 입장시키지 않았다. 먼저 들어간 주민들에 대한 배려이자 카운터에서의 혼돈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 안도 거의 조용하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없다.
이번 지진해일로 인해 휘발유를 구하기가 아주 힘들어졌다. 한 마을에 주유소 한 곳이라도 열면 다행이었다. 당연히 차가 있는 모든 주민들이 주유소앞에 몰려든다. 그러나 자동차 수십대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모두 길 옆으로 주욱 차로 줄을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여기서 또 한번 놀란 사실이 있다. 주유소가 문을 닫은 저녁에도 차들은 계속 수백 미터씩 줄을 서고 있었는 데, 자세히 보니 차 안에 사람은 없었다. 바로 주민들이 다음날을 위해 차를 세워놓고 집에 간 것이었다! 이는 기름이 모자란 상태에서 다시 집에 갔다가 주유소에 와 줄을 서는 불편을 덜기 위해 이미 서있던 줄에 차를 놓고 간 것이리라.
식료품이나 가정용 등유를 사기위해 줄을 설때도 모두 차분히 줄을 섰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난민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소위 ‘피난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식사시간이 되면 이재민들은 모두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모두 한꺼번에 줄을 서지 않았다.
식사가 대접되고 있는 체육관 문 앞에는 한번에 10명씩밖에 줄을 서지 않았다. 안내원이 소리지른다. “10명만 나오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난민들은 10명씩 줄을 서고, 체육관 안에서도 10명밖에 받지 않았다. 그런 방식이 일을 더 수월하게 만든다면, 빠른 시기에 내 차례가 올 것이고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또한 피난민 대부분이 노인들이었기 때문에 줄을 오래서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쓰레기 수거는? 피난소 내 각 구역에는 분리수거 봉지나 박스가 구비돼 있었으며, 각 봉투 위에는 ‘플라스틱’’일반 쓰레기’’종이’ 등 표시가 적혀있었다. 그 와중에도 일본인들은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는 것이다. 피난소의 다국언어 매뉴얼에는 “재활용 수거에 협조해주십시요”라고 한국어 등 6개국어로 적혀있었다.
그런 시민의식은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는 초등교육 위에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사회의 균형이 깨지고, 그러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재난을 이겨내는 힘은 진정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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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피해를 입은 이웃 일본의 빠른 복구와 쾌유를 기원합니다.
隣の日本の地震と津波のお見舞いを申し上げますと共に復興の一日も早からん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海印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