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심장을 간질인다. 4월이다. 청춘!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는 빛나는 기운이 개운사 법당에 가득하다. 개운사와 고려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고려대 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자 마련된 자리, 서울 성북구 개운산 자락에 젊은 그들이 찾아들었다. 장학회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올 봄, 희망의 마음으로 새 씨를 뿌리는 개운사주지 범해 스님의 원력과 맑은 미소가 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간이다.이해와 의견충돌이 상생의 의지로
지난 2009년 개운사와 고려대학교는 신축기숙사문제를 두고 사찰수행환경훼손이 쟁점이 되어 갈등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두 주체가 미래의 인재를 위한 장학 사업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뤄내기로 합의했다. 그것은 개운사 주지 범해 스님의 제안으로 <금전적 보상대신 공동장학회 설립을 위해 매년 개운사에서 1천만 원, 고려대에서 4천만 원을 출연하고 전국 각 사찰에서 추천한 고려대입학생 및 재학생을 대상으로 장학회운영위원회를 통해 매년 108명을 선발, 장학금과 신축기숙사 입주권을 주기로>한 것이다. 장학증서 수여식이 있기 한 시간 전에 범해 스님을 뵙자 청했더니 스님께서는 흔쾌히 찻자리를 마련해주셨다.
-종단의 관심사 또는 걱정꺼리 가운데 하나가 젊은 불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번 불자장학생들에 대한 스님의 애정과 기대가 크실 것 같습니다.
“사실 애정과 기대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고 할까요? 1990년대 울산 포교당을 운영할 때만 해도 어린이, 청소년, 대불련이 활발한 활동을 했었는데 2000년 들어 가보니 불교학생회는 없어지고 청, 장년 불자들은 손꼽을 정도였죠. 그런데 고대신축기숙사 현장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을 해보니 끝까지 반대하는 것도 종교인으로 이기적일 수 있는데다 기숙사가 학생들의 생활공간이니 이게 의식주의 문제잖아요. 그렇다고 금적적인 보상을 받는 것은 수행자로서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데다 마침 그즈음이 타종교에서 대학교내에 기도공간을 만들어 기부한 후 전도활동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우리 개운사는 학교와 이웃하고 있으니 대학생포교에 좋은 조건이었죠. 기숙사입주권과 공동장학회설립문제는 그렇게 이루어 진겁니다.”
개운사도량과 지척인 고려대학교 신축기숙사를 바라보니 고개가 갸웃해진다. 대개 서양식건축물이 반듯하기 마련인데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가요? 스님께 여쭈니
“우리 불교에서는 일을 그르치면 108참회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문화재인 마애불이 모셔져 있는 방향 쪽을 참회의 상징으로 설계 변경을 하고 1년에 108명의 불자자녀를 기숙사에 입주시키자구요.”
조곤조곤 일러주시는 스님의 말씀은 요약되어 있었지만 승가대학과 개운사대중스님들이 고려대학교와의 투쟁 아닌 투쟁을 하셨을 그 시간들이 읽혀진다.
-우선 1학기에 54명의 장학생이 선정되었죠.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모집하는 동안 특별한 사연은 없었는지요?
“아, 처음에는 장학생 모집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었죠. 학교 측에서 고려대 재학생 불자가 그리 많겠느냐는 얘기도 있었구요. 그런데 마감 전에 전국에서 지원학생이 너무 많아 기뻤습니다. 2학기에 만날 54명이 기대되네요. 특별한 사연이라기보다는 신축기숙사비용이 좀 부담된다는 친구들은 좀 저렴한 구기숙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탄력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살면서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시켜 본 부모는 안다. 신학기 기숙사배정에 탈락하고 골목골목 누비며 하숙집구하는 어려움을. 어디 그뿐이런가? 행여 딸아이라면 늦은 밤 귀가와 보안상태 허술한 하숙방이 염려되어 매일 통화를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음을. 금년에 불자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 영어교육학과 2학년 서지연양의 어머니는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감사합니다’를 거듭한다.
“아이가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있대요. 불자로 살 수 있음에 늘 행복했는데 이런 혜택을 받고 보니 불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들이 지금 중학생인데 누나처럼 고려대학교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불법인연 지어갈 민들레 홀씨들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만난 서지연양, 훌륭한 시설의 기숙사생활이 너무 좋단다.
“1학년 때 혼자 하숙방에서는 공부 외에 컴퓨터 하는 시간조절이 살짝 어렵기도 했었는데 이제 룸메이트가 있으니 서로 공부경쟁도 하게 되고 타인을 위한 배려도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대구 사시는 부모님이 안심하세요. 여름방학 때는 부모님이 찾으시는 문경 대승사의 고등학생들을 위한 1박2일 멘토프로그램을 예정하고 있어요.”
방학동안 멘토노릇을 하며 민들레 홀씨처럼 전국으로 퍼져 날아갈 108명의 개운사고려대불자장학생들이 봄처럼 싱그럽다.
발원문을 낭독한 생명과학전공 05학번 박종민군은 고대불교학생회임원으로 인천이 집이라 역시 기숙사생활을 한다.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새기고 있는 종민군의 말.
“사업하시는 아버지와 온가족이 팔공산 갓바위를 자주 찾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49재 기간 동안 14번을 절에 가는 동안 법문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죠. 그리고 학생회관에 고대불교학생회원을 위한 법당이 마련되어 있어서 신입회원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절 오빠, 절 누나가 고대 불교학생회 컨셉입니다.”
개운사 주지 범해 스님 소망하신 대학생포교 원력은 불자장학생들의 고대불교학생회 입회와 함께 첫걸음을 내 디딘 것이리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금강경 독송하시는 어머니의 기도 인연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발로 불교학생회를 찾아 부처님 가르침 따르고 있다는 간호학과 2학년 이가린양은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만큼이나 번뇌도 자글자글 들끓었던 모양이다.
“대학생이 되면 아주 크고 대단한 걸 배우고 인간관계도 넓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는 않았어요. 집 떠난 서울생활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죠. 매주 동아리방 법회 참석하면서 안정되었고 학교생활도 순조로워졌어요.”
아마도 부처님 계신 그 자리가 힘들고 지칠 수도 있는 서울살이를 순하게 평화롭게 만들어줄 필터역할을 해 주리라. 장학증서를 받아들고 시종일관 웃고 있는 산업경영공학도 김영만군은 감사인사로 말문을 연다.
“좋은 인연 만들어 주신 개운사 주지스님 감사합니다. 저는 법당 추녀 끝의 풍경소리를 좋아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설악산 신흥사와 양양 낙산사를 기억하는데요. 마음가는대로 편안하게 이끌어줄 선배가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불교학생회 후배님들 환영합니다.”
이 좋은 인연이 세세생생 이어졌으면
개운사와 고려대학교의 공동장학회는 향후 30년 동안 지속되며 연장할 수도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첫해인 금년의 장학생들이 30년 후면 거의 50대이고 그들의 자녀가 대학생이 될 만한 연배가 될 것이다. 장학증서가 전달되는 법당 한 켠에 앉아 이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가슴이 저릿해진다. 인연이 지중해 불자장학생이 된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인 필자의 바람이라면 저 아들들의 아들이, 딸들의 딸이 고려대에 입학하고 불자장학생 되어 이 좋은 인연이 세세생생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두를 꿈꾸게 하는 봄~
살아 갈 날이 많은 청춘에게도 살아온 날이 많은 중장년에게도 봄은 희망적이다.
4월, 무엇이든 꿈꾸어 볼 봄날에 정희성시인의 시 한 구절을 봄바람에 날린다.
“조오흘(좋을) 때다
사진; 진성스님
취재에 협조해준 범해스님, 이가린,박종민,김영만,서지연학생과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