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햇살이 묵은 마음의 살림살이에까지 깊숙이 들어앉는 3월의 어느 오후, 종회 초선 의원이다 보니 하루하루가 바쁜 청원 스님이 절 마당에 서 계신다. 좀 느지막이 와서 일찍 가버릴 봄처럼 조금은 서두르시는 모습이다. 많이 바쁘신지 여쭈니 스님은 말씀하신다.
“저만 바쁜가요. 스님들이 다 그렇지요. 강원에선 강주로서만 온 힘을 쏟아야 하는데, 종회의원을 하면서는 조금이라도 소홀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어요.”
영동의 영국사 주지로 있으면서 서울을 오가며 일을 하다 보니, 2년 여간 강주로 있던 수덕사 강원에선 일을 놓고 나왔다는 말씀이다. 스님 개인사로만 치자면 산사에 머물며 책장 넘기며 살고 싶지만 현재는 종회의원으로써의 삶을 살아야 하니 그것에 매진해야 할 때라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님은 종회에서도 교육분과위원회에 있으니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겠다 싶다. 학인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교육에 있어 무엇이 시급하게 개정해야 할 것이고 무엇을 긴 안목으로 보고 개정해 나가야 할 지 잘 아실 테니 그것을 바로잡은 후에 다시 강원으로 돌아간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강원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여러 스님들도 대중도 교직자도 공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운영 체계에 있어서나 교과목 개편에 있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고한 확신이 없는 상태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현재 교육원에서는 교과 과정에 있어 원전에서 탈피해서 현대적인 학문 쪽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전승, 계승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물론 한문 경전도 번역된 것이지만 난 현재로썬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라고 생각해요. 한글 경전은 한문 경전이 다시 번역된 것이니 2차 번역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들이 오역됐어요.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한글로 바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봅니다.”
교육원에서 교과 과정을 한글화하자고 방향을 제시하기 이전에 제대로 한글화된 경전을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과정이 한글로 개편됨으로써 좋은 부분도 있지만 염려되는 부분도 있어요. 우리는 한문 문화권이라서 한문 경전을 원전이다시피 읽어왔는데, 전승이나 계승 차원에서 한문 경전을 읽지 않으면 맥이 끊어지는 느낌이죠. 지금 우리가 한문 경전을 등한시 할 경우엔 불교의 근본정신에 있어 나중에 혼란을 겪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입니다.”
스님은 교육은 백년대계인 만큼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스님들이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유학을 보내 원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님들의 공부나 경전의 한글화 작업이 한 순간에 되는 게 아니니 만큼 긴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해나가야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 나가야 해요. 지금 젊은 스님들이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으니 좋은 결실이 맺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하는 스님들의 수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한 스님이 여러 가지 소임을 맡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청원 스님은 선방 스님들이 해제 철엔 소임을 맡아서 할 것을 제도화하고 개인 토굴에 머물고 있는 스님들에게는 소임을 주어 인력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거 때는 스님들이 열심히 정진을 하지만 해제하면 밖에서 자유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해요. 선방에 있을 땐 해당 사찰에서 모든 것을 지원해 주니, 그걸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해제 철엔 본사나 종단을 위해서 그 스님들이 법회나 봉사를 하는 것이 제도화 되었으면 합니다.”
승가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울력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스님들의 그러한 활동은 종단을 위해서도 좋지만 스님들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고 정진하려는 발심도 더 견고해지고 신심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스님들의 그런 활동이 바로 포교라는 점이다.
“현재 출가자 수가 감소해서 종단 전체의 심각한 문제인데, 들어오는 스님의 수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스님들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 토굴에서 개인적으로 사는 스님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스님들도 제도권 속으로 끌어들여서 역할을 줘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종단은 종단대로 일손이 부족하고 개인적으로 사는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종단에 불만이 많다. 수계만 하고 방치해놓은 종단의 문제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스님들의 적성을 잘 파악해서 포교나 복지 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스님들은 종단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종단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종단에서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면 분야가 여러 가지로 다양해졌다. 그런 만큼 스님들의 전공을 잘 살려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사미계를 받고 강원을 졸업하고 나면 의무적으로 포교당에 가서 법사로 활동하거나 복지관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고, 그 일에 대한 보시를 지급하고 그것을 경력으로 인정해 줘서 스님들의 활동을 더 이끌어 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랬을 때 스님들이 노후에 대한 걱정을 비롯한 불만도 덜어내고 그럼으로써 개인 토굴에 들어앉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이점이 있기에 청원 스님은 빠른 시일 내에 이것이 제도화되기를 바란다. 스님은 그것이 제도화가 되면 출가하는 스님들도 확실한 뜻을 가지고 출가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뚜렷한 방향성과 목적의식을 가진 스님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그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알찬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래서 이젠 종단에서도 개개인의 적성을 파악해서 맞춤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원력으로 하는 포교나 봉사가 아닌, 개인적 인연으로 맺은 상좌가 아닌, 이제는 큰 조직적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단에서 맞춤형 교육을 통해 각각의 분야에 스님들이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종단이 스님들에게 해줘야 할 가장 큰 뒷받침일 것이다. 여러모로 시대가 변한 만큼 많은 부분들이 시대에 맞게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스님이라면 시대의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했을 땐, 시대의 흐름에 맞게 그 사회의 대중들의 요구에 맞게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 변화는, 그들에게 이끌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공부만 하신 스님이라 했는데 여러 방면에 있어 구체적인 사안들과 계획들을 말씀하신다. 그만큼 스님이 하실 일이 참 많겠구나 싶다.
“중학교 마치자마자 출가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많네요. 이러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어요?”
스님은 중학교 시절 어느 여름날 해인사에 놀러갔다가 안개 속에서 스님들이 가사장삼을 하고 안행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단다. 그 모습이 그토록 거룩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스님은 그날 출가의 마음을 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인사로 갔으나 어린 나이라고 받아주질 않아 불국사로 가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해인사에 대한 향수가 짙어 강원은 해인사로 갔다. 스님은 책 보고 경전 보는 것도 공부지만 강원 생활 자체가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적으로는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사상을 정립하고 밖으로는 대중생활을 통해서 스님으로써의 위의威儀를 갖추는 중요한 기간인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수덕사에 강주로 있으면서도 학인스님들이 그런 위의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랐다.
스님은 해인사 강원을 마치고는 중앙승가대학도 다니고 은해사 승가대학원에도 다녔다. 선방에도 몇 철을 살았으나 공부에 대한 미련이 더 많았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옛날 같으면 외부와 차단하고 수행 정진에 몰두하겠지만, 현대 사회에선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기엔 스님들이 해야 할 사명이 참 많아요. 참선 수행하는 목적이 뭐겠어요. 사회에 나가서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이지요. 산 속에서 수행하는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요즘 현대인들은 미처 거기까지 바라보지 못 해요. 그러니 스님들이 사회에 나가 더불어 살아야지요.”
현대를 살아가는 스님이라면 아침엔 정진하고 낮엔 포교하고 밤엔 책을 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종회 의원으로 일해야 하는 스님인 만큼 발걸음이 더 바빠지실 것 같다. 그러니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님들의 인적 구성을 빠른 시일 내에 제도화시켜야 할 것인데, 스님은 그것이 개인적인 원력이라고 되짚어 말씀하신다. 계속해서 종단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제도화, 체계화시키고 싶은 마음이란다.
스님은 또 어딘가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신다. 봄이 오니 새들도 부산하고 봄볕도 부산하고 사람들도 부산하다. 그런데 그 부스럭거림이 날개를 단 씨앗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니 그것을 품은 풍경이 참 평화롭다. 때론 부산하게 움직여야 고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봄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