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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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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1년 04월 350호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큰법당인 대적광전 위쪽에 위치하였고, 가파른 계단에서 하늘을 보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쓰인 편액扁額이 보인다. 편액의 의미는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로, 널빤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대부분 가로로 길죽하여 횡액橫額이라고도 하고,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글씨의 경우 대개 대형이므로 대자大字라는 별칭도 있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서원·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여기에 쓰이는 한자는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매우 다양하며, 요즘에는 한글로 된 편액도 많아졌다. 건물의 얼굴이므로 건물 격식에 어울리는 글씨와 장식을 더한다. 글씨의 경우는 당대 명필과 고승·문인의 것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옛 선현의 글씨를 모아 만들기도 하고 활자체나 특별히 만든 글씨로 장식하기도 한다. 글씨는 금니와 은니·먹·분청·호분 등으로 쓰고, 틀은 무늬와 색채를 넣어 주련柱聯과 함께 건물의 중요한 장식 수단이 된다. 이렇게 편액은 건물에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내력, 역사와 인물, 일화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와 같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는 편액을 통하여 우리는 경판의 수가 대략 팔만장이 된다는 것과 건물의 용도는 대장경판을 봉안하기 위함을 알수 있다. 먼저 불교에서 \"팔만 혹은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는 고정된 숫자가 아니고 무수하게 많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그래서 인간의 번뇌가 많음을 들어 \"팔만사천번뇌\"라고 하며, 또한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을 들어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팔만사천 번뇌(병)가 있기에 부처님께서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 팔만사천 법문(약)을 설하셨다고 한다. 편액을 쓴 회산 박기돈(晦山 朴基敦; 1873~1948)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서예가 이다. “대구신택리지”에 의하면 합천 야로의 서당에서 수학을 하였고, 국채보상운동 및 계몽운동에 참여했던 대구지역의 명망가였으며, 경제계에 입문하여 현 대구상공회의소 전신인 대구상업회의소의 초대소장을 1915년에 역임하였고, 한말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고, 대구 최초의 전시회인 ‘대구미술전람회(1923, 교남YMCA)’에서 이쾌대의 동생 이여성, 석재 서병오, 이상화의 형 이상정과 함께 참여한 서화가였다. 통도사의 극락암 삼소굴三笑窟에 석재 서병오가 편액을 썼으며, 박기돈의 글씨로 경봉스님의 오도송이 있다고 한다. 청도 운문사 육화당 정면기둥에는 5글자씩 6폭의 시구가 걸려있다. 이외에 팔공산 파계사의 진동루의 걸려 있는 현판 가운데 초서체로 ‘팔공산파계사八公山把溪寺’라고 씌여있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