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어느 사찰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시골 사찰이 그러하듯 주로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보살님들께서 법당의 대부분을 자리하셨는데, 그날도 평소처럼 사시 불공 뒤에 그날 동참하신 분들의 축원문을 낭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어느 분이 내 장삼자락을 가만히 잡아당기신다. 하지만 축원 중이라 짐짓 모른 체 하고 계속 축원을 하고 있는데 자꾸 잡아당기신다.
두 번 세 번 반복되니 이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돌아보고 응대해 드리자니 기도가 중간에 끊어지는 낭패요.
모른 척하자니 잡아당기시는 손길에 갈수록 힘이 들어가시는 까닭이요.
게다가 시님! 시님! 하고 부르시는 목소리가 갈수록 애달파지시는데 마냥 모른 척 하기가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축원을 쉬고 돌아보며 여쭈었다.
“보살님 왜 그러세요?”
보살님께서 아주 진지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시님! 왜 자꾸 아까 부터 보체만 부르능교. 우리 아들 이름은 무채라 안카요. 근데 무채는 언제 나오능교?”
기도하시던 보살님들이 모두 즐거워하셨다.
나도 기도하다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웃음을- 웃었다.
세월이 지나 이젠 연고 없어진 그 인근을 지나다 문득 젊고 인물 좋은 시님이 왜 아직 혼자냐고 당신 마을에 이쁜 처자 중매하시겠다고 부득부득 우기시던 그래서 날 아주 많이 곤혹스럽게 하시던 그 노 보살님이 생각이 난다.
당신 주름만큼이나 질곡의 세월을 사셨던 옛 기억에, 왜정시절 스님들이 다들 장가가던 경험을 떠올리셨나보다.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은 자꾸만 흐르는데 순박하신 노 보살님들 하나 둘 별세하셨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보살님 생각나고 지금도 사대 강건하시고 육근 청정하실까?
가끔씩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