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러 법과 관행에 의해 자주성이 침해받고 있다. 자연공원법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찰 토지의 상당 부분이 국립공원 구역에 편입돼 있다. 법주사의 경우는 8부 능선까지 법주사 토지이며, 속리산 국립공원의 80%정도가 법주사 토지이다. 자연공원법에 의해 국립공원에 편입돼 있다 보니 수행과 신행을 위한 토지 활용이 제한된다. 요사채 한 동, 신도들을 위한 숙소 한 동을 지으려 해도 쉽지 않다. 30여 년 동안 토지 사용료 한푼 받지 않고 자연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 토지로 인해 국립공원이 만들어졌고, 자연생태계가 보존됐음에도 기여도에 대해 인정하는 기미도 없다. 사유재산 침해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만하다.
종교편향은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부쩍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성시화운동, 사찰을 무너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버젓이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의 상당수를 소망교회 신도들로 채웠던 적도 있었다. 이른바 고소영내각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조차 이명박 대통령이 편협한 개신교신학에 함몰돼 있어 갈등을 유발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임기 말로 가면서 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기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어 개신교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조찬기도회는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이 지역구를 대변하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인지를 의심케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명박 장로 대통령을 세우셨고, 입법·사법·행정 책임자와 여야 대표들을 모두 믿는 이로 세우심을 주님께 감사드린다.\"(이경재 한나라당 의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을 사탄으로 매도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사탄이 온갖 거짓말과 비방, 훼방, 참설을 일삼았지만 이명박 장로를 압도적으로 세워주시고 국정을 잘 살피게 해주시니 감사한다.\"(김홍도 목사)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조차 부정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는듯하다. 김 목사는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잘 완성되게 해주시고 이 나라의 수도가 분할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며 \"차기 대통령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건전한 사상을 가지는 사람,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을 세워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고 했다. 개신교와 비개신교로 국민들을 편 가르는 악행이다.
지난해 12월 초 예산안 날치기는 4대강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여야 의원들의 폭행만 부각시켜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요구에 굴복해 국회의 기능을 스스로 저버렸으며, 야당에게는 심의할 기회조차 박탈한 반민주적 폭거였다. 이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으며, 언젠가 심판할 것이다.
날치기 와중에 템플스테이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영유아 예방접종, 방학 중 급식비, 전의경 급식비 등의 예산이 심의되지 못해 예산 배정이 되지 못했거나 삭감된 채로 통과됐다. 아랍에미레이트에 우리 군대를 파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또한 심의하지 못해 법으로서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조계종은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와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인 종단을 만드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12월 17일 열린 교구본사주지회의 인사말에서 한 발언은 불교자주화와 관련해 역사에 기록될만한 것이다. 자승스님은 \"오늘 회의에서 예산문제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신도들의 힘으로 자생할 것과 의식 전환할 것을 논의해야한다\"며 \"한목소리로 불교가 새롭게 태어나야한다는 것, 아쉬움과 불이익을 감내하고서라도 변화해야 하며 개인과 특정 본말사의 이익이 아니라 종단 이익을 위해 긴 호흡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본사주지회의는 결의문을 통해 \"‘졸속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예산안 통과를 규탄한 조계종 총무원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민족문화에 대한 외면과,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유린\"에 대해 비판했다.
원로회의도 총무원의 자주화 선언을 지지했다. 원로회의는 같은 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원로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어 유시를 발표했다. “국민의 고통과 전통의 훼손을 가져온 금번 정치권의 행태로 빚어진 현 상황에 대해 원로들은 한 마음으로 경책의 죽비를 높이 들어 종단의 평안함을 이끌지 못함을 자성합니다. 우리 불교계가 사회문제나 정치문제라 하여 무조건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법이며 정견을 가지고 삿됨을 끊고 오로지 정법을 행하라. 스스로 수행을 점검해 불교계의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끊어야 한다. 총무원장 이하 전 종도는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장애를 양약으로 삼고 고통을 수행의 의지처로 삼아 용맹정진하라”고 당부했다.
이 즈음에 다시 지난해를 되돌아본다. 법정스님 입적했고, 조계종은 승가교육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선원수좌회가 <선원청규>를 펴냈다. 봉원사 소유권을 둘러싸고 50년 가까이 끌었던 조계종과 태고종의 갈등이 종식됐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으며, 개신교의 불교폄훼로 골치를 앓았다. 4대강 반대운동이 지속됐으며,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으로써 생명살림의 가치를 재확인했으며, 이 와중에 불교 환경운동을 이끌었던 수경스님이 홀연히 떠났다.
법정스님의 입적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평생 올곧은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준 스님의 가심이 못내 안타까웠다. 법정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도 평소 입던 승복을 수의로 삼아 대나무 평상에 누워 다시 지수화풍으로 돌아갔다. 분향소에 올려진 ‘比丘 法頂’이라고 쓰인 위패가 법정스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아련하다. 수많은 이들이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았다. 서점가에서 법정스님은 여전히 그리운 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법정스님은 중생들에게 회향한 것이다.
법정스님을 떠올리는 것은 불교자주화는 말로써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화의 내적 조건을 갖추지 않고서 자주화는 백년하청이다. 누가 자주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자주화는 오직 자등명 법등명해야 비로소 싹이 트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불교’이어야 하며, 진리에 사무치고 중생들을 위한 자비심이 넘치는 수행자이어야 획득되는 것이다. 지난해 시동을 건 승가교육 개혁과 <선원청규>의 발간은 우리 스스로가 불교이고 수행자이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불사이다. 불교 자주화를 방해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회유하고 협박할 것이다. 이럴 때 ‘比丘 法頂’이 우리의 이정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