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새벽에 눈을 뜨고 머리를 만져보면서, 지금 이 순간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있음을 감사해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남자 몸 받기 어려우며, 불법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천만다행으로 사람 몸을 받았고, 남자 몸을 받았으며, 불법을 만났고, 그 불법佛法을 따라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내 자신에 스스로 뿌듯해하기고 합니다.소한所恨은 동생상계同生像季하야 거성시요去聖時遙라
불법佛法은 생소生疎하고 인다해태人多懈怠할새
략신관견略伸管見하야 이효후래以曉後來하노니
약불견긍若不蠲矜이면 성난윤환誠難輪逭이니라.
한스러운 바는, 상법이 끝난 시기에 함께 태어나 성인이 가신지 오래되어,
불법은 드물게 드러나고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구나.
간략하게 좁은 소견을 펼쳐 뒤에 오는 이들을 깨우치려 하니
만일 자만심을 버리지 않으면 윤회를 벗어나기 참으로 어려우리라.
지금의 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과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승복의 무게만큼 나는 내 자신의 마음가짐을 여법如法하게 하고 있는가?
괜히 승복만 입고 시주물만 편히 앉아 받아쓰면서 단월의 은혜를, 되갚아야 할 업의 창고에다가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월의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괜히 겉모습만 승려의 모습일 뿐 내부는 썩은 배와 같지 않은가?
물론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법답게 수행하며 단월에게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당당하게 얘기하지도 못합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윤회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출가를 한 것은 결코 이번 생이 처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전 생에도 출가를 했었고, 그 전 생에도 출가를 했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출가를 해서 승복을 입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믿기 때문에 지금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전 생에 출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이하여 아직도 나는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결국 이전 생에 스스로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되어 불법은 생소하기만 하다’고 불평하면서, 단월의 시주를 편히 받아쓰면서 해태심만 갖고 지내기만 했기에, 아직도 이렇게 윤회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는 반성에 지금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부처님 가신지 오래되었다’느니, ‘출가자는 단월의 시주물을 받아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느니 하면서, 해태심으로 이번 생도 허망하게 마무리하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합니다.
위의 글처럼, 거성시요去聖時遙하며 인다해태人多懈怠한 것은, 저 글을 쓰던 시대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에도 바르게 깨친 분들이 있었듯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바르게 깨칠 수도 있다는 믿음은, 그나마 부끄러운 제 자신에게 큰 용기와 신심을 불어 넣어 줍니다.
위대원선사 경책에 있는 또 다른 문구인,
부모를 불공감지不共甘旨하고 육친六親을 고이기리固以棄離하며 불능안국치방不能安國治邦하고 가업家業을 돈연계사頓捐繼嗣하며 면리향당緬離鄕黨하고 체발품사剃髮稟師하였으니,
썩어 무너질 이 몸을 아까워하지 말고, 죽음을 각오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수행해 나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비록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소한 지금이지만, 초발심자경문에서 옛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뇌이면서 글을 마칩니다.
“비록 부처님 살아계실 때 살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이며, 비록 부처님 법이 약한 말세에 살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면 어찌 해로움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