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중국의 지진 피해대책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1년 01월 347호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는 군사도발을 일으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순식간에 난민이 된 1,300여 연평도 주민들 중 500여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인천에 있는 인스파월드 찜질방에 25일간 피란생활을 했었다. 그것도 그나마 찜질방 주인이 자신의 사업체 전체를 흔쾌히 개방하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었을 지 생각만해도 안타깝다. 그 많은 사람들과 친척, 방문객들이 시설물을 쓰면 ‘일주일에 1억 정도 손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위기대처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서해 5도와 군사경계선, 비무장지대 등 전쟁이나 북한붕괴가 발생하면 수천에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텐데, 이렇게 난민대책이 허술하나 싶다. 500명의 연평도 난민들은 찜질방에서 지내다가 지난 12월18일과 19일 드디어 김포의 한 임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지만 제대로 된 난민캠프가 조속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나라 재해현장을 가 본 나를 비롯, 전쟁 배테랑 외신 기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과연 지자체에 인력과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최근 재해현장 중 가장 인상깊었던 현장은 2008년 5월 중국 쓰촨 대지진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뒤 중국정부는 5만명의 군경을 동원, 사건현장을 복구하고 헬리콥터와 임시 보트를 이용, 난민들을 대피시켰다. 사건 직후 뚜장옌, 떠양, 미얀양, 미얀주 등에는 임시 텐트가 제공됐으며, 군경은 난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했다. 지진 발생 4개월 후 다시 현장으로 가니 미얀양, 베이촨 등지에는 최신식 난민촌이 건설됐으며,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초중고 학교, 그리고 병원과 경찰서도 설치돼 있었다.
화장실은 물론 쭈구리 화장실이지만 공동 화장실, 공동 부엌과 세면장도 모두 설치됐다. 난민들은 난민촌에서 하나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이 복구될 때까지 항구적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베이촨의 난민촌에서 여러 가족을 만나 취재를 했지만, 그 중 한 가족이 인상에 남는다.
왕 시 (12) 와 왕 하이이 (5) 남매는 쓰촨 대지진으로 인해 졸지에 고아가 되어 지금은 홀할아버지 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진 당시 왕 시 남매의 부모는 베이촨시 병원에 있었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버스와 충돌,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어머니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엎친데 덥친 격으로 지진이 발생, 병원 건물이 붕괴하는 바람에 부모는 건물에 묻혀버렸다.
이 남매의 할아버지인 왕 페이종 (62)씨는 15년전 할머니를 심장병으로 잃은 뒤 두 아들 중 한 아들과 아들 며느리 등 도합 8명의 가족을 지병 및 지진으로 잃게 되는 불운을 안게됐다. 왕 페이종 씨의 집은 완전히 무너져 초토화 됐지만 지진 후 깨끗한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왕 페이종 씨는 ‘새로운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도 중국에선 크고 작은 지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달라요.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못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최신식 난민촌을 이렇게 빨리 건설하고 총리도 이곳을 다녀갔어요. 이제 중국은 다릅니다.”
물론 중앙 정부에서는 민심을 잡기위해 지진이라는 나름대로의 ‘특수’를 노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기야 어찌됐던 자국민을 위한 신속한 난민촌 건립 하나만은 높이 사주고 싶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제대로 터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도 찜질방 주인을 의존할 것인가. 우리 모두 피난민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번처럼 우왕좌왕한다면 우리는 60년 전 피난민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