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나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 치아가 좋지 않아 틀이를 하셔야 한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서도 ‘아빠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야’라고 낄낄 대며 놀렸다. 철딱서니 없었던 나는 항상 아빠랑 동격이었다. 난 왜 ‘아빠’라는 존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었을까? 20대 중반 어느 여름날 출가를 했던 나는 이제 벌써 40대 중반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는 출가 수행자이다. 스님이 된지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20년이 흐른, 그리고 수행자인 지금도 나에게는 항상 아버지는 ‘아빠’였다.
화려한 공주가 그려진 분홍색 자석필통 가득 연필을 곱게 깍아 주시던 ‘아빠’.
자전거 뒤에 나를 싣고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면 난 아빠 등 뒤에서 얼마나 신이 났던가. 유달리 깔끔을 떨던 여고시절 운동화를 빨아 놓으면 운동화 끈을 묶는 건 항상 아빠 몫이었다. 어느 날은 운동화 끈을 일자로 묶기도 하고, 또 X로 묶기도 하셨다. 난 신발을 신으면서 너무 쪼여서 발이 아프다고 투정만 부리면 금새 새롭게 변형해 주시던 아빠가 아니었던가.
대학교에 다니면서는 그런 아빠와 난 사상적 이념이 맞지 않아 한 바탕 야단이 나곤 했다. 항상 사회에 대한 엄청난 문제의식으로 심각했던 나 때문에 우리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 난 그 때 80년대의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대학생이라면 그렇게 아버지와 대립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아빠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2010년 가을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나에게는 갑자기 닥친 일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서서히 죽음이 다가온 것이다. 그 놈의 ‘틀이’가 문제였다. 이가 잘 맞지 않아 두 번씩이나 ‘틀이’를 하시느라 공양도 제대로 못하시고 고생을 하셔서 자꾸만 여의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너무도 예쁘고 깨끗하고 곱고 평화롭게 그리고 너무도 쉽게 빨리 서둘러 세상을 떠나셨다. 암이라는 검사결과를 판정 받고 18일 만의 일이었다.
서대구에서 익산 가는 무궁화호 열차 속에서 바라보는 10월의 가을은 그야말로 눈부신 황금벌판이었다. 조금은 가난해 보이지만 여유가 있었던 무궁화호 열차. 난 그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어야 했던가.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설마 돌아가시진 않겠지’ ‘그래 돌아가시진 않을 거야’ 하면서 난 스스로 다짐을 하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 저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내년 봄을 아빠가 보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어찌해야 하는 걸까.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아버지가 암이라니….
‘아빠’라는 두 글자만 떠올리면 어디에 고여 있던 내 몸속의 수분이 그렇게 금새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지 알 수 가 없었다. 하지만 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대단히 이성적이고 씩씩하게 의젓하게 스님답게 처신해야 했다. 임종시에 아버지가 놀라지 않게 크게 울어서도 안 되고, 주위를 어수선하게 해서도 안 되고, 항상 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있으라고 가족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49재 동안 온 집안 식구들은 각자 집에서 기도를 하는 것으로 했고, 나도 49일 동안 기도에 들어갔다. 매일 새벽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 영전 앞에서 ‘아빠’와 긴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제 그만 울어야지 하는데도 매일 그렇게 눈물이 났다. \"‘아빠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정토에 가셔야 해요. 나무아미타불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아빠 원각경 보안장을 읽어 드릴께요. 이 경전 엄청 좋은 내용이에요. 정말’ ‘오늘은 아미타경입니다’ ‘오늘은 서울에 가서 낼 새벽엔 올 수 없을 거에요’ ‘내일은 예쁜 보살님이 영단에 꽃 공양을 한답니다’\" 등등 그날 하루의 일과를 낱낱이 보고하고 아버지의 근황을 여쭈었다. 이젠 아버지와의 다정한 대화 시간이었던 49재도 모두 끝났다. 그리고 다사다난 했던 2010년도 끝나가고 있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을 되새겨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지금 서있다. 불교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다. 노 선사께서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셨던가? 정말 오직 모를 뿐이다. 삶도 죽음도 시작도 끝도.
2011년은 신묘년辛卯年이다. 신묘년에는 현재 우리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예쁘고 귀여운 토끼 같은 자식이 되어 고맙고 고마운 우리의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는 한 해가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