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비장한 아름다움을 품은 <석양추색도>는 남송 말 화가인 마린(馬麟;13세기 초~중엽)이 그렸다. 이 그림은 바닷 속 만큼 고요하다. 그림 속 시의 표현에서처럼 산이 머금고 있다는 가을 산 빛은 그 빛을 알 수 없거니와, 석양을 따라 날아가는 제비들도 사연을 단단히 함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림 속 구성과 내용이 단순하여 대부분의 산수화가 보여주는 작가의 다양한 시선과 동선을 여기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산수화란 모름지기 작가의 발걸음과 함께 감상자의 시선도 움직여서 한 화면 안에서는 소요(逍遙, 산책)하듯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시선을 빌린 우리의 시선과 발걸음은 주문에 걸린 듯 단단히 한 곳에 묶여있어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고즈넉하기는 하나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그 광경에서 눈길을 돌려 보려하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 시선은 적잖이 담담하고 무겁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 화면 속에는 사라져가는 것의 고요함이 깃들어 있다. 산은 가을빛을 가까이 머금었고, (산함추색근 山含秋色近)
제비는 석양으로 더디게 날아가네. (연도석양지燕渡夕陽遲)
이 그림의 막막함에 쐬기를 밖은 날카롭지만 우아한 필체의 그림 속에 적혀있는 시는 이종(理宗; 재위 1225~1264)의 글씨이다. 이 시는 왕유(王維, 701~761 당나라 때 시인)의 시인데, 남송 말년의 황제는 왕유의 말을 빌고, 마린의 붓을 빌려 한편의 슬픈 곡조를 완성하였다. 마린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는 송왕조가 석양에 서 있었던 때였다. 황실의 거의 마지막 화가였던 마린은 늦가을의 황실 정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가였던 것이다. 황실 화원으로 제각각 화려한 시절을 보내며 그보다 더 화려한 황실의 찬란함을 화폭에 담아냈던 그의 부친 마원과는 대조적으로, 송 황실이 몽고에 망한 이후에까지 생존해 있었던 그가 그린 석양의 풍경은 한 왕조의 명멸만큼이나 쓸쓸했다.
바다 속에 떠 있는 섬과 같이 구름 위로 보이는 몇몇 봉우리의 실루엣만으로는 그것이 가을인지 조차 불분명한데, 봉긋이 솟은 산봉우리 주변의 붉은 붓질로 저녁시간 인 것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구름 아래로 갈 길을 몰라 서성대는 제비 몇 마리의 모습이 참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으나 마린은 이러한 불분명함과 어설픔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순간을 가을 속 석양이라는 허무한 시간 속에 정지시킴으로서 강렬하게 잡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저물어가는 황실이었지만, 송대는 불교에서는 화두를 통한 선수행이, 도학자들에게는 수행의 가치와 도덕적 수양을 강조되는 시대였다. 말과 글을 최소화한 불교의 수행이나 혹은 문장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한 학문적 태도는 당시 과거시험만이 출세를 보장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환원하기 위한 당시 도학자들의 공통적인 인식의 방향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마원과 마린 같은 남송의 화가들이 여백을 활용하여 화폭 속에 시간을 잡아 두고, 유장한 당시의 정서를 담고자했던 시도는 그들이 비록 선가나 도학에 몸을 담고 있지 않았어도 당시 충만해 있던 남송의 학문적 분위기를 반영하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빈 공간은 그만큼 더 채우고 담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