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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샤리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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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0년 09월 343호
조선시대때 우리에겐 ‘곤장’이라는 각목으로 볼기를 맞는 형벌, 즉 태형이 있었다. 곤장 30대면 불구의 위험이 있었으며 100대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부패한 중세사회에 그런 법은 이내 변질되기 마련. 돈이 있는 사람이나 양반들은 곤장형을 피하기 위해 돈으로 대리인을 사기도 하고 노비를 시키기도 했다.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도 대신 곤장을 맞는걸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없어진 형벌이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는 아직도 태형으로 범인을 다스리는 곳들이 있다. 태형 뿐이랴. 물건을 훔치는 절도죄는 손목을 절단하고 간통죄는 죽을때까지 돌을 던지는 형벌을 집행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교의 ‘샤리아’ 법인 것이다.
이 샤리아법을 가장 악랄하게 해석, 집행한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일 것이다. 원래 파슈토어로 ‘이슬람의 학생들’이라는 뜻의 극단주의자들로 이루어진 탈레반은, 내전으로 시끄러웠던 아프가니스탄을 1996년 거의 통일하다시피 하면서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10월 미군과 나토군의 대테러 전쟁으로 실각하기까지 5년간 각종 폭정을 일삼던 정치 및 종교 집단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이었느냐 하면 정권을 잡자마자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나지불라 전 대통령의 시신을 카불 시내 가로등에 걸어놓았으며, 여자들의 교육을 전면 금지시켰다. 주류 및 사진, 영화, 음악, 연날리기, 당구, 컴퓨터 등을 모두 ‘이슬람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시켰으며, 여자들은 외출할 때 조선시대 당시 우리네 조상들이 입었던 ‘장옷’과 비슷하게 생긴 ‘부르카’를 반드시 착용토록 했다. 부르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옷으로, 눈 부문은 망으로 처리돼 있다. 여자가 외출할 때는 남자 직계가족이 동행했어야 했으며, 부르카가 짧아 혹여 발목살이라도 보일경우에는 길거리에 배치돼 있는 <덕목 및 풍기문란 단속국> 사복경찰로부터 회초리를 맞기 십상이었다. 남자들도 속살이 나오거나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는 티셔츠 및 청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꿈꿀 수도 없었고, 모두 느슨한 샬와카미즈를 입어야 했다. 또한 얼굴에는 꽉 쥔 주먹만한 길이의 턱수염을 길러야 했다.
탈레반 정권의 폭정 중 가장 악랄한 것은 카불 축구장에서의 공개처형이었다. 이렇게 주민들의 자유를 짓밟으니 주민들도 공개처형말고는 볼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혼식장에서도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추고, 사진도 못찍고 영화도 못보는 주민들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 가? 마치 로마시대 당시 콜롯세움에서 로마시민들이 엄지손가락으로 격투사나 사형수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것 처럼, 카불 시민과 아프간 주민들은 경기장을 꽉 채우면서 탈레반이 집행하는 공개처형을 지켜보거나 돌을 던지는 데 참여했다.
지난 7월말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건 코가 잘린 18세 소녀 ‘아이샤’의 초상이었다. 이 소녀는 탈레반 정권 시대도 아닌 작년인 2009년, 탈레반 병사와 강제로 결혼한 아이샤가 시집의 구박과 폭행을 견디지 못해 달아났다. 그 죄값으로 탈레반 사령관은 남편에게 그녀의 코와 귀를 자를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탈레반 반군은 퇴각한지 거의 9년이 돼가지만 아프간 남부지방에서 꾸준한 게릴라 전술로 국토의 반을 장악하고 있다. 부패한 카르자이 정부와 이교도인 서방세계 군인들이 자신들을 점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성전 (지하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고대 이슬람 율법을 파슈툰 식으로 재해석한 샤리아 법은, 21세기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아프간 여성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