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시대春秋時代, 송나라에 사는 한 사람이 귀중한 옥玉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에 청렴하기로 이름난 제후 자한子罕에게 그 옥을 헌납하면서 \"세상의 사람들이 귀한 보물로 여기는 옥을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자한은 물리치고 받지 않으면서 \"나는 탐하지 않는 것을 가장 귀중한 보물로 삼고 당신은 옥을 보물로 삼고 있으니, 만약 당신이 그것을 내게 주고 내가 그것을 받는다면 두 사람 모두 보물을 잃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하니 그 보배는 나보다는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두 사람 모두가 보물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 저술한 사서史書〈춘추春秋〉를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다시 해석한 주석서〈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故事로,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노자老子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재앙이다(화막대어불지족禍莫大於不知足)\'라고 강조하였다.
부처님께서도 탐욕을 집착과 함께 고통과 괴로움을 야기하는 가장 근본적이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이며, 깨달음과 수행을 장애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삼악도三惡道로 타락墮落하는 과보果報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열거하여,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불교수행의 두타행頭陀行은 의식주의 전반적인 생활상에서 탐욕을 털어버리기 위한 지침으로, 음식과 의복과 처소에 탐착貪着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설施設한 것이다.
범어 두타頭陀 dhūta는 ‘흔들어 털어낸다’는 뜻을 가진 동사 어근 dhū에서 파생한 것으로 탐욕과 번뇌를 털어버린다는 의미이며, 음역(音譯)하여 두타라고 하며 의역意譯하면 두수抖擻·기제棄除·제견除遣 등이라고 한다. 두수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옷을 흔드는 것처럼, 마음속의 탐욕과 번뇌를 흔들어 털어버린 다는 뜻이며, 그런 의미에서 의식주의 일상생활 속에서 탐욕과 번뇌를 털어내기 위한 지침과 덕목을 두타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타행은 12두타, 혹은 13두타로 설명하는데 걸식乞食과 일발식一鉢食과 일좌식一坐食과 식후불식食後不食 등의 음식에 관련된 것과 분소의糞掃衣와 삼의三衣 등의 의복에 관한 두타와 아란야阿蘭若와 수하주樹下住와 노지주露地住와 총간주塚間住와 수처좌隨處坐와 장좌불와長坐不臥 등의 처소와 선정에 관한 두타 등을 말한다. 음식두타 가운데에 차제걸식次第乞食 조항의 포함 여부에 따라 12두타와 13두타로 분류되는데, 가장 검소하고 조촐하고 소박한 생활을 실천하는 것으로 탐욕과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방침을 말한다.
이러한 두타행은 부처님 당시의 상황과 여건에서 실천이 가능한 생활일 것이므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의 실정에서는 이미 호소력을 잃어버린 명문名文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현실적으로 주목되는 두타행을 설명하고 있어,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예지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제일 먼저 음식에 관한 탐욕을 미식탐美食貪과 다식탐多食貪으로 요약하여, 미각을 뽐내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입맛에 당긴다는 이유로 과도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으로 음식두타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 의복에 관련된 탐욕을 상묘탐上妙貪과 연촉탐軟觸貪과 다의탐多衣貪으로 정리하여 값비싸고 귀한 옷이나 부드러운 촉감의 옷이나 다량의 옷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의복두타의 정의라고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처소에 관한 탐욕을 옥우탐屋宇貪과 부구탐敷具貪 등으로 나누어 웅장하고 좋은 집에서 지내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거나 혹은 푹신하고 안락한 침구와 가구 등에 대한 지나친 미련을 버리는 것이 처소두타의 수행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을 확장하여 재해석하자면, 친환경적인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과 자연염색의 조촐하고 편리한 의복과 자연을 해치지 않는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추구하는 자연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이자 well-being의 선두주자가 바로 두타행자의 진솔한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과 설명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이며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연주의자, 환경운동가, 웰빙의 실천으로 탐욕을 털어버리는 두타행자가 된다는 것은 천상으로 올라가는 내생의 보장은 물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리와 경계를 그대로 정토화淨土化하는 첩경인 것이다.
탐욕이 무서운 것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중하고 커다란 보물을 가졌더라도 그것보다 더 값비싼 것을 탐내는 욕망이 가라앉거나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탐욕을 그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진정한 보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은 자한의 말과 같이 탐하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만족할 줄 아는 지족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로지 만족할 줄 알겠노라고, 우리 모두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으뜸으로 여길 것을 몸소 실현하고 교훈으로 전해주시기를 온 생애를 걸쳐 매진하고 진력盡力하셨던 큰스님의 유촉遺囑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