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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 호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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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0년 09월 343호
스님은 내내 웃으신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누구라도 짜증이 나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다니는 여름 오후, 도심의 아스팔트도 흐느적거리고 가로수 나뭇잎도 축축 늘어지고 귀도 눈도 먹먹해진다. 그런데도 스님은 웃으신다. 인사를 하면서도 웃으시고 이야기 나누면서도 웃으시고 헤어지고 돌아서는데도 웃으신다. 하마터면 너무 더워서 그러한가 싶을 정도로 스님은 따끈한 차를 건네면서도 웃으신다. 그런데 스님과 마주앉아 가만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웃고 있다. 스님처럼 실실 웃느라 찌푸렸던 미간도 펴져 있고 할 일이 태산이라 오늘 갈 곳이 많다며 보채던 발도 느슨하게 방바닥에 달라붙어 있고 혹여 실수라도 할까봐 스스로 죄고 있던 심장도 느슨해져 제 박동을 찾아가고 있다. ‘덥다 덥다’ 하느라 기온보다도 더 더웠던 모양이다. 스님의 시원하고도 자연스러운 더위 해소법 덕분에 가장 무덥던 여름 오후가 훌쩍 가벼워진다.
스님은 고운사 주지로 재임되어 서울에 임명장을 받으러 온 걸음이었다. 그런데도 또 서둘러 의성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만남을 재촉하셨다. 역시나 집 지키는 주지 소임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평생 선방에서 참선만 한 수좌가 주지로 앉았으니 어이 아니 힘들까.
“난 머리를 안 쓰니까 안 힘들어요. 지식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보니까 힘들 게 없어요. 그리고 난 무얼 이루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할 뿐입니다.”
머리를 안 쓰니까 재임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스님은 또 씩 웃으신다. 그러고 보니 스님 어깨에는 전혀 무거운 것이 올라앉아 있지 않다.
“나는 아예 처음부터 가진 게 없어서 없다는 게 불편한 줄도 몰라요. 가진 것 없으니 수행자의 본모습을 지킨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가진 게 없으니 좋다고 말하는 거예요.”
단지 찾아 즐기는 것 하나 있다면 차茶. 조주 스님의 ‘끽다거喫茶去’를 말씀하시며 누구든 찾아오는 이에게 차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좋은 차를 준비해 두신다 한다. 그러니 차를 마시며 맺은 인연들도 많다. 그렇게 끊임없이 인연의 씨앗을 심는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인연이 닿으면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스님은 늘 백팔 배를 하며 그런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했잖아요.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진 않아요. 신도 관리도 특별히 안 해요.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지를 하고 있어도 내 모습은 선방에서와 같아요. 생활도 마음가짐도 다를 바 없어요. 30년 전에 절에 들어섰을 때와 변함없이 똑같아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走坐臥 語默動精’ 행하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항시 화두가 여여하다는 말씀이다.
“나는 말을 할 때도 나를 보고 나를 느끼니, 본사 주지라고 해도 주지란 생각보다 수행자란 생각으로 살아요.”
혹시라도 그 마음이 바뀔까봐, 행여 ‘나’를 잊을까봐, 잊으면 그건 타락이니까, 두렵단다. 그래서 스님은 늘 가슴에 은사 스님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두고 산다. 육조 스님의 ‘무념위종無念爲宗’,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고 분별심을 초월해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무념을 으뜸으로 삼고 살라는 말씀에 의지해 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하신다.
“난 내가 참 어벙하다고 생각해요. ‘무념’이니 꾀가 없잖아요.”
스님은 고운사의 모습, 불교의 본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이 있는 사람은 꿈이 있어요. 꿈이 있는 사람은 모방이 없어요. 모방이 없다는 것은 창의가 있다는 것, 즉 지혜가 있다는 것이지요.”
고운사의 본 모습은 원래 유서 깊은 수행도량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고운사의 찬란했던 시절을 복원하려고 한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 모습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 선원이 있고 내년에는 전통 강원이 복원될 것이니 종합수행도량의 면모를 점점 갖추어나갈 생각이다. 그러면서 경북의 대표 사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신다.
그리고 화엄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고운사를 비롯한 경북 인근의 사찰들이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는 화엄사찰인 만큼 의성, 안동, 영주 지역 화엄사찰들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경북 북부지역 16교구의 교구장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은 화엄 사상의 교구를 만들고 싶다 하신다.
“현대는 성인보다 과학에 의존하다 보니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사용했어요. 그러니 무분별한 개발로 금수강산이 오염되고 인간은 쾌락주의에 빠졌죠. 그러다보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어요. 자기를 되돌아보는 것이 바로 화엄사상이에요.”
스님은 지역사회를 위해 장학사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 모든 게 화엄사상의 측면이라고 말씀하신다.
“화엄사상은 더불어 사는 사상이에요. 의상조사법성게義相祖師法性偈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이 있잖아요.”
인간과 자연은 같이 건강하게 공존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며 고운사의 개방이 되지 않은 산은 생태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어 고운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신다. 그리고 스님은 절 입구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系圖 모양으로 나무를 심어 명상코스를 만들어 자연을 보존해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량을 정비하기도 했단다.
“창건과 중창을 했던 의상스님과 고운 최치원 선생의 사상을 이어 분들의 이상이 현실이 되게 맞춰가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곧 완공되는 역사문화관이 의상대사와 최지춴 선생의 사상을 현대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상을 잇고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세계 석학을 초청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 화엄 사상을 우리나라 불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이 힘들다고만 말하고 있을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해요. ‘도’는 어려운 게 아니에요. ‘과거’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오늘’만 못하고 ‘오늘’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일’이 없으면 아름다울 수 없어요. 문화를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선 체험관’도 건립했고 곧 ‘청소년문화센터’도 완공될 예정이다. 이 많은 일들을 스님은 소리 소문 없이 해왔다.
“난 건물 짓는 것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활용을 보는 것입니다. 바둑의 한 수를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보는 것과 같지요.”
스님은 한철도 빠지지 않고 선방에만 20년을 넘게 다닌 수좌다. 심지어 강원도 다니지 않았다. 그런 스님이 처음에 고운사 주지를 맡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놀라워하고, 외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가한 절에서 주지 소임을 맡아 사는 깊은 인연이 있다.
출가한 지 올해로 꼭 30년째다. 고운사에 놀러왔다가 은사 스님과의 인연으로 눌러앉았다. 극락전에서 천일기도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지 않았나 싶단다. 20년 동안 선방에 다니면서도 아무런 장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신다.
“부처님 법은 참 묘할 뿐이지요.”
봉암사에서 첫 철을 나던 시절을 말씀하신다. 군불을 때던 그 시절, 선방의 상판 스님은 하판스님을 위해 참고 하판 스님은 상판 스님을 위해 참으면서, 그런 가운데 공부하니 부족해도 부족한 줄 몰랐단다. 정진 시간이랑 상관없이 잠도 안 자고 정진을 했단다. 스님은 지금 고운사에서도 예불이 끝나면 30분씩 전 대중과 함께 정진을 한다. 스님은 정진을 한다는 생각도 없을 정도로 그것이 자연스럽단다.
“도가 얼마나 광활한 것인데 머리를 써서 되는 것이겠어요. 참선은 보이는 공부가 아니에요. 거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선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뛰어넘는 스케일이에요.”
스님은 ‘어디서 왔는고?’라는 화두를 들고, ‘나’에 대한 물음을 끝없이 던지며 모든 것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 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화두선 수행은 신심(내가 본래 부처라는 믿음), 분심(그런데도 자신의 불성을 보지 못한 데에 대한 분함), 의심(이토록 명백한데도 왜 나는 알지 못하는가 하는 의심)이 생명이지요. 배우지 않아도 대신심이 저절로 들어와요. 참 신기하지요.”
이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도를 닦겠다는 마음 이전에 ‘나’를 보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는 것, 듣는 것만 믿는다.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정진을 통해 선정의 맛을 봐야 삶이 고달프지 않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우리에게 ‘조건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거창한 꿈을 꾸면서 가지려고만 하니 불만만 쌓고 결국은 다 방전되어 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조건 없는 날’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비우는 것이고 지혜라 하신다. 스님은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선방에서 절을 많이 했단다. 항상 부족하니 채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고 말씀하신다.
“꽉 찬 잔은 채울 수가 없잖아요.”
스님은 수행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기를 기도한다. 모든 사람이 잠시라도 비우는 시간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불교와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
“칼 든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리 어려워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사람이 무서운 법이지요. 수행자는 아무리 짓밟아도 끄떡 안 해요.”
스님은 변함없이 비우고 비워서 세상을 보는 법을 보여 주겠다 하신다.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정진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시다.
“달마스님은 9년을 기다리고 육조스님은 15년을 기다렸잖아요.”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스님이 줄곧 쓰시는 말 중에 ‘자연自然,스럽다’는 말이 화엄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자연自然,스러운’ 말로 들려왔다. 스님은 웃는 줄도 모르게 씩 웃으시더니 걸음을 옮기는 줄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셨다. 그토록 덥기만 하던 여름이 간 줄도 모르고 가면 금세 가을이 온 줄도 모르게 와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