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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언니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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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정인경┃철학박사 2010년 09월 343호
“가사적인 인간에게는 아는 것은 적게, 그러나 기쁨은 많이 주어져 있다.” (훨더린)


20대 후반을 넘기면서 나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생겼다.
젊은 날의 고향은 나에게 안식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의혹’이었다. 나는 의혹을 풀기 위해 미래를 약속하는 먼 나라의 낯선 도시로 나갔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매혹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더욱 매력적인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자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와 다시 만났을 때, 기쁨은 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내가 찾던 그 무엇이 가까이 있었고 이미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근원에 가까이 가는 것이었다. 그 장소, 그 시간에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잊거나 잃을 수 없는 원천을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살면서 아무것도 충실하게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움이 없는 삶은 최선의 삶이 아니었다. 그리운 삶에 돌아가기 위해 나는 또 고향을 떠났다. 떠난 자만이 돌아온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도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이가 있었다.
그 시절은 시계도 천천히 정오를 치는 시절이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던 때는 동네마다 한 명의 못난이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 못난이는 우리 또래 중에서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자였다.
못난이는 거절의 아이였다. 좋은 집안의 7번째 막내딸이라는 행복의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조건을 거부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보다 3살 많은 언니였지만 키도 작고, 몸도 가냘프고, 머리도 아주 나빴다. 못난이는 자신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 무엇에 저항했던 것 같다. 아이가 바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지는 않는다. 당시 못난이는 12살 쯤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부모가 모두 선생님이었지만 학교를 목숨 걸고 뛰쳐나오는 못난이를 어쩔 수가 없었다. 집은 잠잘 때만 마지못해 부모나 언니, 오빠한테 이끌려서 들어갔다.
못난이는 매일 놀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휴식은 우리의 노동보다 귀한 것이었다. 못난이는 마치 삶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사람처럼 근사한 옷을 차려 입고, 고독하게 사는 것을 업신여기듯이 누구라도 가족처럼 굴었다. 번영의 행복을 집집마다 베푼다는 듯이 온 동네 이집 저집을 순회했다. 못난이는 특히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가 어린 집일수록 축복을 길게 주었다. 못난이가 축복을 내리는 방식은 옛날 성인들처럼 그 집에서 밥을 나누고, 생생하게 꽃봉오리처럼 피어오르는 어린아이와 함께 시름없이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못난이는 아는 것이 적었지만 기쁨은 많은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진실이란 자신이 사는 세상의 기쁨과 그 기쁨을 나누어주는 즐거움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 건너편 집에 ‘상희’가 태어났을 때, 못난이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가정의 제일 어린 아이에게 그동안 동네에 나누어 주었던 축복을 한데 모아 영원히 내려주려는 듯했다. 못난이는 단칸 셋방에서, 2명의 어른과 2명의 아이 틈새에서 먹고 자고 했다. 못난이의 부모가 와서 달래고, 야단치고, 심지어 때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상희네 살았다. 그 후 못난이의 부모가 그 아이 몫의 생활비를 준 것 같았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희네가 밤중에 몰래 이사를 갔는데 못난이도 같이 떠난 것이다. 내 기억에 상희 엄마는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못난이를 자기 아이와 같이 키울 수 있는 착한 아주머니였다. 하지만 삶은 아주머니네가 연 걸리듯이 걸린 외상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를 하게 했다. 그리고 못난이도 덩달아 도망을 친 것이다. 이것은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이후 못난이를 둘러싼 꿈과 같은 아름다운 소문도 들리고, 지옥과도 같은 흉흉한 유언비어도 돌았다.

1년 후 어느 날 아침, 못난이가 기적처럼 자기 집에서 걸어 나와, 예전처럼 동네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돌아온 못난이를 보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못난이는 쏟아지는 질문 한가운데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돌아온 못난이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윗잇몸을 들어내며 바보스럽게 웃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못난이가 눈칫밥을 먹어서 슬픔을 알게 되었나 보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셨지만, 정말 못난이는 슬픔이후의 기쁨을 안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못난이가 어디서 그런 미소를 갖게 된 것인지 그 때 나는 궁금했다. 그 아이는 아마도 그날 아침 그 미소를 가졌을 것 같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자가 되어 아이는 고향 바깥의 낯선 것을 고향에 주고 있었다. 그 아이의 묘연한 행적은 우리 동네가 비밀을 간직한 마을이 되게 했다. 그 때부터 못난이는 마음의 고향의 한가운데를 지키는 전설이 되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바보였지만 우리가 놀리거나 무시할 수 있는 바보가 아니었다. 못난이는 시인처럼 이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못난이’언니의 미소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고향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무례한 마음을 버리고 근원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이 지상에서 바보언니처럼 살아야하는 가장 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