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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 좀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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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 양 2010년 09월 343호
“유마의 방” 원고청탁을 받으면서 ‘유마’라는 이름 탓인지 10여 년 전에 타계하신 야석也石 박희선朴喜宣 선생님이 불현듯 떠오른다. 야석 선생님은 내 마음 속에 깊게 새겨진 거사居士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의 어느 무덥던 여름, 나는 이틀 동안 야석 선생을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오십여 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천이두, 조두현, 홍석영, 이동주, 장순하 등 학교 선생님들 술심부름을 하면서 나는 야석 선생을 처음 만났고 난생 처음 지은이로부터 직접 시집을 받기도 했다.
혜산兮山은 본래 둔재고 지훈芝薰은 턱없이 오만하고 목월木月은 속되고 석정夕汀은 야코가 팍 죽었고 미당未堂은 쓸개 빠진 무당 아니냐면서,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시를 써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시며 선생은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길다란 낯수건을 끌어당겨 연신 땀을 닦았다. 선풍기도 아주 귀하던 시절이었다.
자리에 끼지도 못하고 곁자리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시키기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야석 선생 말씀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혜산은 누구고 미당은 누구냐고 내가 어렵사리 끼어들어 물었다. 선생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짓더니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조오치 조아, 조찮아?” 술기운 섞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숨넘어갈 듯 시를 암송하시기도 했다.
지은이로부터 직접 시집을 받게 된 감동 때문이었는지 멀지 않은 곳에 친구네 집이 있었음에도 통금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턱대고 선생을 숙소까지 따라갔다. 선생께서도 술 탓인지 나를 꺼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시 창녀촌으로 악명 높던 이리시 철인동, 선생이 찾아간 숙소라는 데가 바로 그 철인동이었는데도 그때 나는 알고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았다.
깨끗한 방 있다고 쉬어가시라고 붙잡는 아주머니를 따라간 판잣집은 전혀 깨끗하지 않았고 쪽방은 둘이 자기엔 너무 좁았다. 옆방 하나를 더 잡았다. 불도 켜지지 않은 수돗가에는 거의 벗다시피 한 아가씨가 뒷물을 하는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나는 선생의 양말과 낯수건을 빨았다. 윗통을 벗은 채 선생은 때묻은 얇은 이불을 베게삼아 벌써 잠에 드셨다.
방과 방 사이 천장 쪽 벽 구석에 매달려 양쪽 방을 힘겹게 비추는 빨간색 전구 밑에서 나는 선생의 첫시집《새앙쥐와 우표》를 밤새워 읽었다. 장편서사시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데가 많았다. 난해한 대목에 이를 때마다 선생 주무시는 옆방의 코고는 소리와 또 다른 방의 거친 숨소리, 키득이는 소리, 야릇한 신음소리 들이 더 크게 들려서 책읽기를 더 어렵게 했다.
《새앙쥐와 우표》는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하여 중국땅을 떠도는 나그네의 이야기였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아름다운 풍광에 뒤섞이는 주인공의 슬픔도 인상 깊었고, 특히 주인집 소녀가 “아저씨는 시인이라며?” 하고 느닷없이 묻는 바람에 작약 뿌리를 들추던 주인공의 손이 파르르 떨리면서 손가락 사이로 흙부스러기가 못 견디게 흘러내리는 장면을 나는 영 잊지 못한다. ‘시인’이란 도대체 얼마나 아픈 이름인가를 나는 지금껏 가늠하기가 어렵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쪽방에는 이미 선생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선생님들이 즐겨 다니시는 시공관 네거리 이층 가로수다방에서 선생을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았다. 딱히 볼 일도 없이 선생을 기다리는 게 좀 염치없기는 했지만, 내가 염치없거나 말거나 선생님들은 다방에 오셨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두현 홍석영 선생님이 선생을 마주보며 건너편 창가에 앉았다. 혹시 선생님들이 나에게 담배심부름이라도 시키시려나 기다리면서 《새앙쥐와 우표》를 한참 뒤적거리고 있는 참에 다방 안에 갑자기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찼다.
흐느끼는 소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선생이었다. 마주앉은 두 분 선생님들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흐느낌은 점점 격렬해져 통곡에 가까웠다. “박형, 왜 이려? 무슨 일 있었어?” 홍석영 선생님의 걱정하는 소리를 깔아뭉개며 흐느낌 소리가 더 커졌다. 조두현 선생님이 나를 손가락으로 부르시더니 같은 손가락으로 선생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거였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여러 번 저어 보였다.
그렇게 족히 이십 분쯤은 지났다. 선생이 손바닥으로 커튼 너머 창밖을 가리키면서 “저것들 좀 보아, 저것들......” 울먹이는 소리로 흐느낌을 삼켰다. 창 아래 시공관 네거리에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다닐 뿐이었고 선생의 흐느낌은 두어 차례 더 격렬해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조두현 선생님이 곁에 다가온 레지에게 눈을 꿈적거렸고 레지도 알겠다는 듯이 눈을 마주 깜작거리며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옆구리의 낯수건을 당기어 눈물과 땀과 침과 콧물을 한꺼번에 닦으며 선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엽차를 마셨다. 네거리에 무심코 지나다니는 이들도 눈을 깜작거리는 레지도 무춤해진 우리 선생님들도, 그리고 울먹이며 선생을 건너다보는 나도 사실은 다 ‘저것들’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알았다.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저것들’이 되어 선생의 흐느낌 속에 섞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