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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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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0년 09월 343호
수류화락지하처水流花落知何處오
산중능소별시하山中凌霄別是夏로다
물은 흘러 어디로 가고 꽃은 져서 어디에 떨어지는가
산중에 핀 능소화는 또다른 여름일세

남양혜충 국사가 시자인 응진탐원應眞耽源 스님을 불렀습니다.
“시자야!”하고 세 번 이나 시자를 불렀습니다.
시자는 당연히 세 번 모두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혜충국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등지고 있구나.”

선가에서는 시자를 ‘세 번 응답한다’는 뜻으로 삼응三應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영리한 시자의 대명사는 선타바 입니다. 말(馬)과 물(水), 그리고 소금과 그릇의 네 가지 의미를 주인의 부를 때 마다 각각 필요한 것을 제대로 알아서 응해주는 영리한 시자입니다. 주인이 현관에서 시자를 부르면 말을 대기하고, 세면장에서 부르면 물을 , 식당에서 부르면 소금을, 또는 그릇을 대기하여 가져올 줄 아는 시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자야!’하고 부르는데 ‘예!’하고 대답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건 ‘멍청한 시자’라고 불려도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안목있는 시자라면 스승이 무슨 일로 부르고 있는지 즉시에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국사가 세 차례 불렀는데 시자가 세 차례 모두 대답했다고 한 것은 시자가 방에서 대답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국사가 부르면 시자는 마땅히 달려와서 문앞에 섰고, 국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시자는 물러갔습니다. 국사가 다시 부르면 시자가 오고, 국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돌아가기를 이렇게 세 번 거듭한 것입니다 .

그런데 한 번만 부르고 한 번만 대꾸해도 좋을 것인데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꾸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 번은 같은 소리이겠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세 번은 각기 다른 소리인 까닭입니다.
국사가 세 번 부른 뜻은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감히 더듬어서는 그 뜻을 찾을 길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국사가 건성으로 불렀는지 시자가 건성으로 대답했는지는 범부들의 눈으로는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국사가 시자를 부른 의도는 본래면목을 불러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세 번을 불러 세 번을 대답하게 한 것은 언뜻 보면 소의 머리를 억지로 눌러 여물을 먹이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여물은 그냥 여물이 아니라 그것은 본분초료本分草料였던 것입니다. 이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배부른 사람의 식사거리로는 맞지 않는 법입니다. 이미 배가 부른 탐원스님에게는 노파심이 되어버린 격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인들은 계교사량計較思量으로 이렇게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말하길 첫 번째 부른 것은 신훈新熏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 부른 것은 본유(本有 즉 本分)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세 번째 부른 것은 결국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앉는 경지를 보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문호를 지키고자 한다면 맨발로 칼산지옥을 달려야 하는 법입니다. 모든 속박과 의지처를 벗어던지고 맨발과 맨몸만 남겨서 분별과 통하지 않는 이 공안과 대결해야만 합니다.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모두 못알아 듣는다면 이런 경우는 서로 본래 알기는 알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보다도 더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운봉문열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뜻”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성스러움을 좋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건 공허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범속함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허망하게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성聖과 범凡을 분별하는 생각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서 즉시 체로진상體露眞常이 나타난다.”

뒤통수에 대놓고 부르는 방법은 선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후학들의 제접방법이기도 합니다.
마조선사가 시자인 업業대덕이 나가려고 하자 등 뒤에서 “업이여!”하고 불렀습니다.
대덕이 머리를 돌리자 마조가 다시 말했습니다.
“시십마是什麽 이뭣고?”
그리고 백장선사 역시 대중의 뒤를 향해 부르자 모두가 머리를 돌리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시십마是什麽 이뭣고?”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공안에 대하여 대혜종고선사는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부른 것은 노파선으로서 진창에 뛰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다시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국사께서 어느날 시자를 불렀는데 시자가 대답했습니다.
이와같이 세 번 불렀고 시자는 이와 같이 세 번 대꾸했습니다.
그렇다면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불렀는데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시자가 세 번 대꾸했는데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국사와 시자가 모두 잘못된 것입니까?

하안거 해제 대중은 누가 잘못되었는가를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두고서 살펴보기만 하십시오.
그 대신 천하사람들로 하여금 제멋대로 답을 다투도록 내버려 두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답에 아랑곳 하지 말고 해제 후 길거리에서도 그저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부른 뜻’을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개유수오고여花開流水吾辜汝요
명월청풍여부오明月淸風汝負吾로다
꽃피고 물 흐르니 내가 그대를 저버리고
달밝고 바람 맑으니 그대가 나를 저버린다.

2554(2010) 하안거 해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