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성 발언 등으로 조계종이 어수선하다. 해결할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소통, 대중공의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종단의 주요인사 말고는 알지 못하는 미묘한 관계들이 현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것은 선거 후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논공행상 과정에서의 마찰일 터인데, 선거기간 중, 선거 후 누가 어느 절의 주지를 맡기로 했느니 하는 말들이 총무원 주변에 떠돌았다. 이런 것들도 이번 사태를 대형화하는데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조계종은 구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성에 매몰되어 있다.
사찰의 특성을 살려 지역사회와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미래를 위해 사찰이 이끌어가는 모습이 요청되는 때이다. 다른 종교의 예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의 사례를 빌려올 것도 없다. 당연한 이치이다. 주지 인사 또한 사찰의 역할에 적합한 스님을 찾아 소임을 맡겨야 한다. 그러나 논공행상이 인사의 제1원칙이 된다면 미래를 기약하는 것은 애초에 기대난망이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싼 과정을 되짚어 살펴보자.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해법도 찾을 수 있다.
3월 3일 종무회의에서 선본사를 직영사찰에서 해지하고 대신 봉은사와 도선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하기로 하는 안을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총무분과위는 이 안건을 논의 끝에 되돌려보냈다.
총무분과위 회의에서 총무부장 영담스님은 “선본사는 94년 개혁 시 직영사찰로 지정됐다. 당시 직영사찰 지정은 재무상태가 우량한 사찰을 종단 목적 사업 등에 활용코자 지정됐으며, 당시 선본사는 여러 문제까지 겹쳐 지정된 이후 10년 넘게 직영으로 운영됐다. 제33대 집행부에서 은해사 말사인데 직영사찰로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에 선본사를 직영사찰에서 해지하고, 봉은사 도선사를 직영사찰로 하자는 입장”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여러 스님들은 논의 부족과 선거 당시 모종의 약속에 의한 조치 아니냐고 따졌다. 한 스님은 “총무원장 선거 시 은해사와 모종의 약속이 있지 않느냐, 총무부원장직도 어느 본사와 내조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들이 있다”며 정면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스님은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은 필요하다. 예전에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유지재단 예산을 따로 해 종단 목적사업 활용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지정사찰 지정 등 재정마련의 문제가 해소됐으리라 본다. 재정문제 때문에 새로이 직영사찰을 지정하는데 선본사 예산을 줄인다니 이해가 안 된다”며 총무원이 설명한 취지의 모순을 지적했다.
총무분과위의 안건 반려로 직영사찰 지정은 추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총무원은 종회의원 20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는 중앙종회법을 활용, 직영사찰 지정을 다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은 수도권 포교벨트를 구축, 포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청담문도들의 반발이 거셌던 도선사의 직영사찰 지정 추진은 슬그머니 취소됐다.
봉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하는 것에 동의한 중앙종회의 결의가 있은 후 맞는 첫 일요법회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하려면 특별분담사찰을 해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무리해서 직영사찰을 지정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명진스님은 그 다음 일요법회에서는 “2009년 11월 13일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만났다 이때, 안 원내대표가 ‘강남 부자사찰에 좌파 스님을 주지로 그대로 나둬야 되겠느냐’ 자승스님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이 발언은 일파만파를 불러왔다.
종단의 자주성과 관련 있는 사안인 만큼 메가톤급의 중대 발언이다. 안 원내대표는 명진스님을 알지도 못하며,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총무원도 대변인인 기획실장 원담스님이 기자들과 만나 “압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자승스님과 안 원내대표가 만나던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인사가 명진스님의 폭로가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외압설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교계단체들은 안 원내대표의 정계은퇴를 촉구했고, 총무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답변을 요청했다.
명진스님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중앙종회의장이던 자승스님이 이상득 의원과 함께 봉은사에 찾아와 이명박 후보의 봉은사 방문을 타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명박 후보의 봉은사 방문은 당시 명진스님이 거절해 이뤄지지 않았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중앙종회의 결의 사항이기 때문에 큰 무게를 지닌다. 종단의 누구도 이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종단의 질서를 뒤흔드는 해종행위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절차적 논리만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한들이 아니다. 먼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한 타당성에 종도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애초 직영사찰 지정 목적이 모호했다. 총무원 재정 확보가 목적이었다가 며칠 사이에 수도권 포교벨트 구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수도권포교활성화를 위한 계획이 제출되지 않은 가운데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이 추진됐다. 포교활성화라는 큰 그림을 놓고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들을 찾아내고, 이런 속에서 사찰의 지위와 역할을 찾아야 했다.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 해당 사찰의 반발이 예상됐던 만큼 설득해 동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대의기구인 중앙종회에서 통과됐으므로 종도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종회의원들이 심사숙고해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치 않고 방안에 대한 논의도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통과시킨 것이므로 문제없다고 강변해서는 곤란하다. 혼란의 단초를 가져올 수 있으며, 종단기구의 권위가 훼손당할 수 있다. 절차의 정당성이 중요한 만큼 내의 타당성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절차라는 형식과 결의한 내용에도 수긍할 때 종도들은 동의하며, 에너지를 모아준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재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중앙종회의 권위와 총무원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니다. 압력성 발언을 한 안 원내대표도 사실무근이라며 피해가려다 거짓말쟁이라는 오명까지 덮어썼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바른 길이다.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불교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과정에서 대화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한다. 앞으로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감정을 누르고 총무원장으로서 더 이상 종단의 혼란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은 겸허하고 용기 있는 행위이다.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본인은 부정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과 동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종단의 자주성을 유린하려 했던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다. 이에 대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교계에서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의 문제가 남았다. 총무원 재정 확보, 수도권 포교 활성화, 이런 주제로 논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