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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물리치고 불법을 지키는 법구, 금강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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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김태형┃학예연구원 2010년 04월 338호
석가모니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 동안 고행에 전념하였으나, 몸을 혹사하는 고행이 성도成道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마을로 내려와 유미죽乳味粥 한 그릇을 공양 받고 기운을 되찾는다. 그 후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위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이를 바탕으로 육신을 보전하고 정신을 길러나가는 데에서 비롯되어 갔다. 공양의 대상은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와 부모 또는 죽은자의 영혼으로까지 확대되며, 각종 공양행위가 의례 절차에 따라 정리되면서 불교의식과 연계되어 나아갔다.
이와 같은 공양행위가 의례화되면서 공양의 목적을 아뢰고 효과를 발원하는 의식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의식이 더해졌으며 이때 필요한 불교용구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특히 각종의례 의식이 중요시되었던 밀교密敎에서는 심오한 교리를 형상화하기 위해 불교의 상징적 도구를 이용하여 단壇을 만들거나 또는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때 사용되는 의식 용구를 밀교 법구法具라고 부른다. 일본의 경우 밀교가 매우 성행하여 다양한 밀교 법구가 남아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단을 만드는 법식法式 등이 상세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단지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등이 대표적인 밀교 법구로 알려져있다.
금강저는 범어로 바즈라vajra(발절라跋折羅)라고 불리는 도구로, 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사용되던 무기가 차츰 상징화되어 번뇌煩惱를 깨뜨린다는 의미의 불교 의식 법구로 활용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강저는 통일신라의 석탑 기단부에 조각된 팔부중상八部衆像이나 사천왕, 인왕상의 지물로 표현된 예를 볼 수 있어 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8~9세기부터 이미 등장하기 시작하였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금강저는 금강령 등과 한 조를 이루며 밀교 의식 법구의 가장 중요한 도구 또는 지물이 되었다. 남아있는 유물도 고려 13~14세기의 것이 가장 많은 편이며, 이 시기에 제작된 사경변상도의 가장자리에는 불법을 지킨다는 의미로 그려진 장식 문양으로써 널리 활용되었다.
금강저의 기본 형태는 가운데 부분을 잘룩하게 좁혀 손잡이로 만들고 양 끝단에는 창끝처럼 길게 돌출된 고부로 구성되었는데, 이 고의 개수에 따라 독고저와 삼고저, 오고저 등으로 부르며, 우리나라에는 삼고저와 오고저가 가장 널리 제작되었다. 잘룩한 손잡이 부분은 중앙부가 볼록한 주판알 모양이며 몇 개의 마디로 나누어 각 마디마다 위아래로 붙은 연꽃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번개 형태로 처리한 고의 부분은 굴곡을 이룬 마디마다 발톱이나 동물의 이빨 형태로 날카롭게 처리한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금강저는 보살심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이를 수행할 때 쥐고 있으면 손에 무게를 주어 묵중하고 엄정한 기분이 감돌아 온갖 잡념과 방해물을 굴복시켜 깨끗한 불성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하니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하는 법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