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의 설법이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설법한다) 또는
응병여약(應病與藥:병에 따라 약을 준다)이라고 한다.
이것은‘법法’곧 진실이 갖는 보편성과‘기機’곧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상관관계를 나
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말로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법은 기에 따라서 그 형태를 바꾸는것일까. 그렇게 형태를 바꾸는 일을 법의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유마경》의 내용은 이와 같은‘기’를 앞세우는‘ 법’의 파악把握에 대해서 각성을 촉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이 설하시는‘법’은 지금까지 한번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또는 듣는 상대에 따라서 달라진 일이 없었다. 늘 한결같고 변화가 없다. 즉‘일음一音’
이다.
그런데 그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이나 상태, 열의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열의 집중력과 이해력을 보
이지만 어떤 이는 다섯의, 또 어떤 이는 셋의 능력밖에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리하여 한결같은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열의 내용으로도, 다섯의 내용으로도, 혹은 셋의 내용으로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은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말도 있고,“게는 자기의 몸크기에 맞추어서 구멍을 판다”는 말도 있
다. 천지에 두루 미치는‘법’은 일정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의 크고 작음, 많고 적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받아들인
다는 해석은‘법’과‘기’의 기본적인 관계를 갈파한 말로서 재평가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이 정사精舍 밖으로 나왔을 때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목을 놓고 우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것
은 반특이가 여러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반특이 영리한 편이 아닌 줄은 부처님도 알고 있었으나 악
기 없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었다. 부처님은 반특을 보고“왜 울고 있느냐?”하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바보입니다. 형이 가르쳐준 게偈를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은 희
망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 하며 쫓아버립니다.”
“그래. 그러면 나한테 와 있으면 된다. 스스로가 자기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는 지자智者요, 우자愚者는 자기를 지
자智者로 알고 뽐내는 것이 일쑤이다. 그런 자가 진실로 어리석은 자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반특을 지도하도록 했다. 그러나 며칠을 돌보고 있던 아난도 도저히 가르쳐 낼 수 없다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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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에게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자기가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부처님은 반특에게 두 가지 글귀를 가르쳤다.
“불진拂塵하며 제구除垢하라.”
이 간단한 글귀마저 반특은 외우지를 못했다. 그것을 본 부처님의 측근들은 모두가 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
처님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하루는 반특을 불렀다.
“너는 정사精舍의 마당을 쓸 수 있겠느냐?”
“예. 그런 것쯤은 할 수 있나이다.”
“그러면 한번 해봐라.”
거기서 반특은 정사의 마당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비구들은 마당을 쓸고 다니는 반특을 대하기만 하면“불
진하며 제구하라”고 게송偈頌을 읊었다.
되풀이되고 되풀이되는 동안에 드디어 반특도 글귀를 외우게 되었다. 반특은“불진하며 제구하라”고 소리를 내
어 읽기도 하고 속으로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반특의 일념은 결국 그 글귀의 뜻도 스스로 깨쳐졌다.
진구塵垢의 두 글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진塵은 안(內)이요, 구垢는 바깥(外)이다. 외계外界의 때(垢)라는 것은 직
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쓰레기를 말한다. 이것을 말끔히 쓸면 청정한 환경을 이루게 되고 내계內界의 티끌은 결박結
縛이다. 이 결박을 지혜의 힘으로 끊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내계의 자유를 얻어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야 한다. 이
것을 알게 된 반특은 모든 의문이 스스로 풀리기 시작했다.
티끌은 욕慾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것을 버린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모르고 모든 죄악을 범하
고 만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 진애塵埃도 역시 티끌이다. 이것도 지혜로운 자는 버린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나 남들에게까지 불행을 미친다. 치우癡愚도 티끌이다. 지혜로운 자는 이것도 버려야 한다. 그렇지 못할진
대 모든 티끌 속에서 방일放逸할 뿐 정지할 것을 모른다. 이래서 반특은 삼독三毒을 물리칠 것을 다짐했다. 반특은
본래 소박하고 단순하였던 까닭에 삼독을 제거하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한층 용이한 점이 있었다. 그는 애증愛憎을
넘어 무명無明의 껍질을 뚫어 마음이 활연히 열리었다. 반특은 부처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겨우 알았나이다.”
“어떻게 알았느냐?”
“버릴 것을 알았습니다. 버림이 곧 깨달음이옵니다. 때(垢)는 집착입니다.”
여러 비구들은 반특이가 오도悟道했다는 것에 놀라며 기뻐들 했다.
부처님은 말했다.
“많은 경經을 읽고 진리를 해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의 법구法句로 그것을 참되게 알아서 실천하면
열반涅槃에 든다.”
반특은 기원정사에서 특이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비구들은 반특을 존경하였으나 반특은 여전히 정사 마당을 쓸
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을 쓸 때마다 작은 소리로“불진하며 제구하라”고 암송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