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올해 초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불교계는 법정 스님이라는 거목을 잃어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있다.
3월23일 현재, 보도 사진계에서는 떠오르는 한 젊은 사진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작은 충격에 빠져있다. 지난 18일경, 30대 초반의 일본인 사진기자 AK (에이케이) 키모토가 호주의 퍼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AK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살던 2007년 봄이었다. 카불에 살면 여러 사진가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온다. 호텔에 대한 정보부터 통역에 대한 것까지, 초행길인 사진가들은 내가 현지에 살고 있으니까 여러가지를 물어본다. 그 중 한 명이 AK 였다. 방콕에 현재 살고 있으며, 패트릭 브라운 등 다른 방콕 주재 프리랜서 사진기자들로부터 나에게 대한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 카불에 도착한 그는 UN 거주지에 머물게 됐으며, 아프간 국군의 날 퍼레이드 때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 때가 4 월경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퍼레이드 당일, 사진 동영상 기자석에는 삼십여명의 현지 및 외국 기자들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 동양인으로 보이지만 조금은 범상치 않은, 거의 20 센티미터나 되는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한 남자가 보였다. ‘설마 저 사람이 AK?’
나는 그에게 다가가 “혹시 제게 연락 온 AK 인가요?” 라고 물었고, 그는 “아, 그러지 않아도 진 (필자의 영어 이름) 일 거라고 생각했는 데 맞군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간의 카르자이 대통령의 의장행렬을 끝으로 그 행사장을 함께 떠났다. 그것이 나와 AK의 첫 만남이었다.
AK는 그 때 아프간에서 거의 석달을 머물렀다. 그가 카불에 있을 때 나는 산모 사망률을 취재하러 타지키스탄 국경에 있는 ‘바닥샨’이라는 주로 가 있었다. 마침 바닥샨으로 떠나자마자 카불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외국인들의 웨딩 촬영 요청이 있었지만, 다시 카불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일. 그래서 나는 그 때 그 웨딩 건수를 AK에게 주었다.
그 후 나는 바닥샨에서 카불로 다시 돌아왔고, AK와 나, 그리고 나의 전 남자친구였던 또다른 사진기자 모이세스 등은 거의 매일 만나 카불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같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하자라 족의 밀집지역으로, 또 어느날은 옛 국왕의 성 근처에 사는 난민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힘든 날은 AK가 머물던 UN 거주지에서 탁구를 치며 소일하기도 했다. 카불을 방문한 다른 사진기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그날의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카불을 떠났고, 몇 달 후 나도 우리정부의 교민 강제철수조치에 따라 아프간을 떠나게 됐다.
나는 아프간에 다시 들어가기 힘들지만, AK는 일본계 미국인이므로 언제고 아프간을 갈 수 있었다. 아프간의 북부동맹 (Northern Alliance) 의 수장 마쑤드 장군이 써서 유명해진 ‘파콜’ 모자를 섭씨 30도가 넘는 방콕에서도 항상 쓰고 다니던 AK. 나는 AK가 동양인이라 아프간에서 몽골 민족의 후예인 하자라 족을 닮았다고 놀리기도 했다. 그 시절이 소록소록 기억에 떠오른다.
살을 에는 추위로 제대로 지내기도 어려운 아프간의 겨울. AK는 바닥샨 주의 이슈카심이라는, 온 동네 주민이 마약 중독자인 곳에 뛰어들어가 아프간 아이들의 마약중독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인에게 아프간의 현실을 고발했다. 카불과 바닥샨 사이 항공편이 끊겨 차편으로 언제 산사태가 날 지 모르는 힌두 쿠시 산맥을 지나던 AK가 평화로운 호주로 오던 길에 변을 당할 줄 그 누가 알았던가. 지난 18일 밤 호주에 도착, 다음날 그를 만나기로 했던 나는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이제 AK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이 세상에 남아있다.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된 바닥샨의 민둥산들, 아편을 피우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 아편 없이는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어린이의 고된 얼굴을 담은 의미있고도 깊이 있는 사진들. 그 사진들은 그의 유산이 되어 전세계인을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담긴다는 옛말이 있다. 사진가는 사진을 남긴다. 그의 사진들은 때로운 매서운, 때로는 아련한 향기가 되어 이 세상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