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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화림회 이영희(상락화)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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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피플 - 최현태 2010년 04월 338호
어지간한 복덕을 쌓지 않고서는 부처님 도량을 자유롭게 참배하고, 큰스님을 뵙고, 감로수 같은 법문을 듣고, 곳곳에서 빛이 되어 사는 도반들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상락화불자는 그 모두를 누리고 있으니 그간 복을 많이 지은 모양이다. 해인사신도모임 화림회 이영희 불자~~常樂和(한문이 틀리면 고쳐주셔요)라는 법명 때문일까? 그이를 만나는 자리에 즐거움이 넘친다.
해인사 표지판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울렁..
매주 월요일마다 봉행되는 해인사 천도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은 상락화불자의 남다른 정성으로 영단에 차 한 잔 올리는 마음 또한 지극해진다. 상락화불자는 2001년 제 1차 1029일 천도법회를 시작으로 지중한 인연을 맺은 이래 금요일오후만 되면 벌써 마음이 해인사로 내달린다. 3일간 몸과 마음을 정하게 하여 근신한 후 해인사로 가는 월요일 새벽이면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듯 혹은 연인을 만나러 가듯 마음이 설렌다. 88고속도로를 달려 해인사 9km표지판이 보이면 가슴이 뛴단다. 표지판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는 그이의 말을 듣고 필자는 해인사9km표지판이 있는 지점을 지나치면서 내 가슴은 어떤가를 살펴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음에 나의 해인사 사랑은 그이의 것에 못 미치는구나 싶으면서도 상락화불자의 해인사로 향하는 향심은 인정하기로 했다. 새벽녘의 홍류동은 안개가 장관이다. 안개를 헤치고 산문에 들어서는 동안 그이는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 부처님 법을 구하러 안개 숲을 따라 가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환희로웠으리라. 대적광전에 당도하면 부처님께 차 한 잔 올리고 3배를 한다. 이마에 닿는 마루바닥 그 서늘한 기운과 함께 가슴으로 이어지는 벅찬 울림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하며 3배에 3천배의 정성을 모은다. 일주일에 한번이라고는 하지만 대구에서 해인사까지가 그리 수월한 길은 아니기에 게으름이 난 적은 없었냐고 물었다. “아이고, 그런 소리 마세요. 연애를 한들 이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언제 게으름이 나고 어떻게 가기 싫은 생각이 날 틈이 있겠어요. 천도법회 자원봉사를 하면서 얻어지는 행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그저 천도법회에 동참한 우리 불자님들 행복하시고 영가님들 극락왕생만을 발원할 따름이지요.” 대답 끝에 내손을 가만히 잡은 그이의 손은 겨울나무에게 봄꽃을 선물할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내가 나의 보호자 되어,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곱고 여리던 젊은 어느 날, 그이의 양쪽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200여 종업원과 그에 딸린 식솔들을 이끌어야 하는 기업체를 맡아 운영하면서 오직 믿는 것은 부처님 빽! 그거 한가지였다. 아침나절에 일이 급하면 저녁에, 저녁에 일정이 있으면 새벽에 가까운 사찰의 부처님을 찾아 엎드렸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동안 물질도 마음도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20년 가까이 그녀가 자신의 보호자 되어 살아오는 동안 나름의 철학도 있었으리라. “ 신행생활이나 사업에서나 딱 한 가지 정직이었어요. 100퍼센트 자료 노출하니 세무조사 한 번 받은 적 없고 정직하게 하니 일부러 영업하지 않아도 일거리가 저절로 들어 왔지요. 그러다보니 수출역군이라고 정부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주겠다고 했지만 굳이 받을 일도 없더군요. 그래 사양했지요. 그리고 젊은 시절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지만 부처님을 찾아 경배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만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환갑이 멀지 않은 그이에게서 삶의 주인 되어 살아온 당당함이 읽혀진다. 보기 좋다. 여자든 남자든, 속인이든 수행자든 한 사람의 품격은 치열하게 삶을 대면하되 여유와 절제 인내를 잃지 않는데서 나오지 않을까?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들로 이어지는
그이의 고향은 하동하고도 쌍계사 아랫마을이다. 그 시절 학교 소풍은 내내 쌍계사로만 다녔고 봄 소풍을 가면 쌍계사스님들께서 첫 물차 잎을 따다가 손질하고 계셨는데 소풍가방 팽개치고 스님 옆자리에서 같이 차를 비비기 일쑤였다. 어릴 적부터 차 잎 따는 것은 일상이었고 겨울철 집안 화로에는 늘 차 주전자가 올려져있었다. 고뿔이라도 걸리면 사카린 넣은 찻물 한 사발 마시고 아랫목에서 한숨 자고나면 거뜬한 몸이 되었다. 차茶가 요즘처럼 여유와 멋으로 마시는 가 아니라 약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니 이즈음 천도법회에서 차茶올리는 일은 그이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시로써 국밥 한 그릇처럼 사람들 가슴을 덥혀주고 싶다했는데 상락화불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준비한 차 한 잔으로 천도법회 동참불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이는 얼마 전에 아름다운 치매를 앓던 친정모친을 여의었다. 엄마치마꼬리 붙들고 절집을 오르내리던 그이는 저 세상으로 소풍 떠날 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위해 내내 나무아미타불을 들려드리며 모든 어르신들의 소망인 자는 잠에 이승을 하직하시길 기도드렸다. 그 발원 또한 성취되었다. “너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편히 가신 어머니 잘 보내드렸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엄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부처님 인연은 이토록 귀하고 또 귀한 것입니다. 가끔 이보다 더 행복하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조심스러워하는 그이의 말에서 몸짓에서 삶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닮고 싶은 부분이다.
관세음보살을 念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고
상락화불자에게는 30년지기 도반이 있다. 반듯하기 그지없고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함께 했지만 다툼한 번 없었던 그들로 하여 자원봉사도 신행생활도 기쁨이 더하다. 몇 년 전 대구 서문시장 대형화재로 시장상인들이 넋 놓고 끼니조차 챙기지 못할 때 화림회 회원이기도 한 도반들이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타 종교나 다른 사찰에서는 라면이나 차 종류의 지원을 했지만 화림회는 해인사와 주축이 되어 상인들에게 국과 반찬 등이 있는 식사를 제공하며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했다. “자원봉사 그거요. 상대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내가 느끼는 행복은 굉장하답니다. 그들의 행복이 모두 내게로 돌아오는 것 같애요.” 그렇다. 무언가를 나누는 기쁨, 그것은 실천해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같은 거 아닌가. 이제 남은 생은 회향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상락화불자, 기쁨으로 가득한 그이에게 혹 개인적 원력이나 소망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해인사 천도법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노 보살님들처럼 곱고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어요. 저 보다 몇 걸음 먼저 걸어가시는 분들인데요. 어디 매이지 않고 웬만한 거 다 놓고 기도하며 사시는 자유로운 보살님들이 너무 멋지세요. 저도 그 분들처럼 살고 싶습니다.”그 소망이라면 별 문제없을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이 궁금하거나 내생이 궁금하면 이생을 보라 하셨거늘 내생도 전생도 아닌 몇 걸음 후의 일이니 지금 그이의 삶을 보면 될지니… 상락화 불자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108염주를 쥐고 관세음보살을 念하며 잠을 청한단다. 다음 날 아침 행여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더라도 염주를 손에 감고 다음 생으로 건너가고 싶어서라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서 오늘 밤 염주를 챙길 여러분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아무려나.
봄꽃 흐드러진 아름다운 시절에 뭐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 “부처님 뵈러 가는 일이 가장 큰일이고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이의 뻔한 답변을 한 번쯤 날려버리고 벚꽃 잎 난분분한 홍류동 계곡 따라 봄을 탐하고 싶다. 4월 훈풍에 댓잎 사운대고 우리는 봄꽃들의 헌화공양 받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