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끔한 오후, 이제 찬 바람은 멀리 갔는가 싶었는데 금몽암 가는 산자락에서 코끝을 쨍하게 만들고는 달아난다. 그래도 볕은 고우니 그 바람이 밉지만은 않고 절 앞의 산수유나무엔 꽃망울이 돋았으니 바람도 마음 몰라주진 않는구나 싶어 움츠러들었던 몸이 한결 풀린다.
몸이 아파 만날 날을 잡기가 어렵다던 동은스님은 전갈을 받고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고 처음 만난 금몽암은 소박하고 단아하기 이를 데 없으니 올해 첫 봄나들이가 황송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방에 들자 오래된 고택의 냄새가 확 끼쳐온다. 이런 세월의 냄새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데 둘러보니 모양새 또한 보통이 아니다. 이 여염집처럼 정갈하고 어여쁜 암자에 혼자 사시는 동은스님은 오랜만에 찾아든 객에게 말없이 차를 내어주시는데 스님 머리 위 벽에 쓰인 글귀가 먼저 객의 마음을 쿵 하고 친다.
‘소똥불 헤치며/감자 구워 먹는 맛/왕사니 국사니/내 알 바 없소/게을러 콧물도/못 닦는 주제/도를 어이/알 턱 있소/묻지마소/묻지마소’
중국의 어느 큰 스님에게 왕의 신하들이 가서 국사를 청했으나 스님은 물리쳤단다. 여러 번 가서 청하여도 내치자 왕명을 거역하면 죽음뿐이라 전했는데도 그 큰 스님은 이 게송을 읊었단다.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에 홀로 사는 동은스님의 삶이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그 어떤 자리와 소임을 청해도 마다하고 간절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니 차마 소똥불 헤치며 감자 구워 먹는 맛이 어떤지는 묻지 못한다. 감히 범인이 그 맛을 어찌 상상할까. 그러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 뒤 법보전 주련에 이런 글귀가 있어요.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깨달음이나 이상향이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고 죽는 저잣거리에 있다는 말이지요. 저는 나태해질 때면 재래시장이나 새벽시장 그리고 병원 응급실에 갑니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간절해지지요.”
수행의 자리가 선방의 좌복만은 아닐 것이며 깨달음의 순간이 깊은 산중의 암자에 홀로 있을 때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모든 순간이 간절하다는 말씀이다. 그러고 보니 스님 책상 앞엔 ‘그대 지금 간절한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중국의 원오 극근 선사는 생야전기현 사야전기현 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어라 했어요. 살 때는 삶에 철저하게 그 전부를 살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죽음에 당해서는 생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되지요. 저는 이 글귀를 마음속에 담고 삽니다. 그래서 늘 묻지요, ‘그대 지금 간절한가’하고. 다른 말은 필요 없이 오직 이 한마디면 돼요. 그런 것들이 내 삶의 화두가 되었고 매순간 간절하고 치열하게 살게 만들지요.”
스님은 86년에 월정사에서 계를 받은 후 보름만에 걸망을 지고 강원이나 선방이 아닌 만행을 나갔다. 어느 날 하동의 지리산 자락을 지나다가 양명한 터를 보고 그곳에 열매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어, 불도 물도 없는 그곳에서 토굴 생활을 시작했단다. 흙바닥에 풀을 베어 깔아 잠자리를 만들고 석유 화로와 냄비 하나, 그리고 별이 보이는 천정의 구멍이 토굴 생활의 전부였단다.
“처음에 토굴에 앉았는데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어요. 사흘만 용맹정진하면 도를 깨칠 것 같았지. 그 정도로 행복하고 기뻤어요. 잠도 거의 안 자고 밥도 죽지 않을 만큼 먹었지요. 그땐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공부가 안 되면 밤중에 산을 헤매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간첩으로 오인도 받았어요. 그때는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 세상에 내던져졌나하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강했어요. 그걸 풀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지요. 스승이 필요했던 거예요.”
점차 회의가 들고 공부는 안 되고 건강은 나빠져 일 년만에 그곳을 떠났다. 그러고는 해인사 강원, 송광사 율원에서 공부를 하고 전국의 선방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만행을 많이 다녔다. 시골 할머니들이 시장 귀퉁이에 앉아 채소를 파는 모습, 새벽시장의 전쟁 같은 삶을 보며 수행자로써 무얼 해야 할지 고민했다.
“부처님 경전을 보고 선방에 앉아 화두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속에서도 공부를 챙겨야지요. 시장에 서서 내가 수행자로써 뭘 해야 할 지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어느 장소에서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앉은 자리가 바로 법당이고 선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어떤 소임이 주어지든 그 일을 부처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요.”
스님은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를 만든 장본인이다. 스님이 선방에 다니던 시절, 정념스님이 월정사 주지를 맡으면서 교무국장 소임을 맡기셨다.
“내가 이렇게 수행을 해서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싶더라고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깨달음을 얻고 그 다음에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까, 깨달음이 올 때까지 시주 은혜만 받고 회향은 못 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어느 큰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좌구보리 우화중생左求菩提 右化衆生, 왼쪽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오른쪽으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 개념으로, 깨달음과 회향이 다른 것이 아니고 스님이 서 있는 자리에서 수행이 회향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늘 화두를 챙기고 마음을 챙기는 것은 기본, 스님은 자신이 공부한 것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했다. 그러는 중에 월정사에서 소임을 살며 단기출가학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삭발염의를 하고 한 달간 절에 머물며 행자생활을 해야 하는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는 스님들의 행자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 입학 경쟁률이 높다.
“의사든 박사든 거지든 상관없이 입산해서 삭발염의를 하는 순간부터 행자입니다. 행자에겐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오직 하심과 인욕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수행이지요.”
사회생활에서 지친 이들이 찾아와 단기 출가학교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가벼워져서 돌아간단다. 들어오려는 사연도 여러가지란다. 술이나 담배를 끊으려는 이들, 배우자가 보기 싫어 들어온 이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 정식으로 출가하고 싶은데 왠지 두려워서 체험 차 오는 이들, 젊었을 때 출가하지 못한 미련에 찾아오는 이들…. 이토록 다양한데다가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함께 생활을 하려니 처음엔 힘들어 하지만 하심과 인욕으로 마음을 다잡아간단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의 ‘서로 부처되기’는 서로에게 백팔 배를 하는 것인데 스스로 자기 안의 불성을 자각하게 된단다.
“앞에 앉은 사람이 부처예요. 사람들이 껍데기에 속아 잘났다 못났다 하는 것이지, 그 속을 보면 똑같은 부처입니다. 그러나 서로 절을 하고 받으려면 처음엔 어색하지요. 그런데 절을 하다보면 나중엔 다 울어요. 절을 받는 사람은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사람한테 절을 받나 싶어 울고, 절을 하는 사람은 하다보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부처로 보여서 울고.”
그렇게 깨끗해진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들을 보면 스님은 회향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소임을 살았구나 싶단다. 그리고 스님이 단기출가학교를 만들면서 의도한 바가 또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가라고 하면 아직도 도피로 보는 경향이 짙어요. 유교적인 사상이 있어 출가를 불효로 여기기도 하지요.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고 출가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하자는 의도도 있었어요.”
올해 1월에 23기가 졸업을 하면서 총 천이백 여명이 졸업을 했는데 그 중에 정식으로 발심 출가한 사람이 백여 명이란다. 단기출가학교는 출가의 개념을 새롭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출가자를 배출하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번 왔던 이들이 또 오기도 하고 그들의 가족들이 오기도 한단다. 그래서 스님은 월정사 전나무 숲에 삭발탑을 세웠다.
“우리야 늘 깎는 머리지만 단기출가자들은 평생 한번 깎은 머리잖아요.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머리 깎을 때의 마음을 잊어요. 그런데 월정사에 와서 탑을 보게 되면 삭발할 때의 첫 마음이 되살아나지 않겠어요.”
자신의 머리를 한지에 싸서 묻은 삭발탑, 단기출가자들은 그곳을 마치 성지처럼 여기고 경건하게 생각한단다. 그 앞에서 다시 하심과 인욕의 마음을 갖고 사회로 돌아간단다. 그런데 사실은 단기출가학교를 진행하면서 스님 스스로 공부가 많이 되었단다. 그들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도 힘들 때면, 버스를 타고 출가했던 그 길을 다시 가봅니다. 속가에서 나와 새벽에 부산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월정사로 가는 7번 국도를 달리며 생각하지요. 출가할 땐 오로지 도를 이루겠다는 간절한 한 생각만 있었지, 그뿐인데 뭐가 더 필요하겠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이 생에서 수행자로써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고. 단기출가학교를 만들어서 많은 이들에게 인연을 심어준 것이라고. 단기 출가자들이 그 한달의 경험을 삶의 전환점으로 삼아 사회에서 힘든 마음들을 떨쳐낸 것이라고.
그러나 스님은 현재 몸이 아파서 이 년간 꾸려오던 단기출가학교를 후임 소임자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금몽암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스님은 고택처럼 편안한 금몽암에서 간절히 첫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문 쪽엔 수연제, 인연을 따르는 집이라고 붙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주어진 인연을 따르고 환경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픈 몸 때문에 하지 못 하는 것이 많아 안타깝지 않으신지 여쭈니 스님은 말씀하신다. 어느 곳에 머물든 모든 것에 간절하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화두를 들더라도 온몸을 내던져서 간절하게 드는 것이 수행이고 기도를 하더라도 혼을 다 바쳐서 해야 참된 기도인 것이지요. 어느 처소에 있든 내 자신에게 늘 묻죠. 그대 지금 간절한가, 그렇게 물으면 머릿속이 깨끗해져요. 나는 이렇게 온몸을 던져서 사는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때 방문 밖에서 풍경 소리가 어여쁘게 들려온다. 스님은 풍경 소리에 말을 멈추셨다가 이내 바람인 듯 말씀하신다.
“바람이 참 좋아요,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이렇게 풍경 소리가 들려오면 마음에 파문이 일어요. 어느 날 내게 깨달음이 온다면 바람 속을 달리는 버스 위에서가 아닐까 싶어요.”
스님과 방 안에 앉아 오래도록 차를 마시며 바람 소리를 듣는 오후엔 모든 것이 간절하고도 간절하였다. 산길을 내려오며 만난 바람도 간절한지 저 높은 나뭇가지 위로 간절히 솟구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