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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문외한의 해인사 후원 자봉(자원봉사)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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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유성동/시인, 대구거주 2010년 04월 338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모제약회사의 치아건강 약 광고카피.
이가 튼튼하면 먹는 즐거움이 두배란 뜻일 터. 그렇다면
‘씻고, 닦고, 말리고, 나르고’ 는? 후원 자원봉사자의 소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본 카피. 얼핏 보기엔 무척 고된 자봉의 여정인 듯하나, 천만에 말씀~그 속에서 느끼는 자봉의 희열을 어찌 보리를 이루고자 받는 공양도 아닌 통속한 먹는 즐거움에 비길 것인가.

지난 2월 짧은 설 연휴 끝자락에 들어온 한통의 휴대폰 문자 메세지.
무료한 낮 시간을 보내던 싱글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터 즉각 확인해보니 새해기념으로 설거지 자원봉사를 하자는 여친(여자친구)의 제안. 게다가 하트 세 개에 ‘응 응~’이라는 낮선 애교 추임세 까지 섞인 거절하기 힘든 명 카피가 아닌가. 그리고 해인사와 여친은 이미 20년 전에 인연이 되었다며 가끔씩 자랑스럽게 추억담을 얘기하곤 했던지라 망설임 없이 제안을 받아들임. 그렇게 사찰문외한과 해인사 후원과의 자봉인연은 지어진다.

그 날(2월15일) 늦은 오후 해인사 도착, 이미 와 있던 친구와 반갑게 만나 맛있는 저녁공양을 마쳤다. 자봉은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함으로 먼저 자봉반장님을 만나 업무 지시를 받음. 주로 설거지 같은 단순한 일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별 부담 없이 행자실에 들러, 털신과 바지를 수령했는데 설거지할 모습이 떠오르기는커녕 설빔 받아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과 군대軍隊에서 보급품 받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숙소로 들어감. 산사의 맑은 밤하늘 기운으로 자봉에 필요한 심신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분 좋은 잠자리에 듦.

다음 날 새벽 4시30분까지 공양간으로 오면 된다는 반장의 지시에 따라 비교적 여유부리며 잠을 깨움. 그러나 아차! 알고 보니 자봉 생활수칙에 새벽예불 필참 이라 함. 내일은 꼭 참석하리라. 암튼 본격적인 일과 시작. 어디든 그렇듯 공양간도 신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순 노동뿐. 처음 주어진 일은 전날 저녁에 세척해둔 식기정리, 스님용과 신도용, 숟가락과 젓가락, 접시와 그릇 등을 공양하기에 편리하게 정리, 식당 배식대에 세팅, 그 사이사이에 고참 자봉들의 잔심부름 병행. 공양시간이 다가오면 별좌스님의 지시에 따라 자봉들이 먼저 공양, 눈치를 보자 하니 되도록 신속히 마쳐야 할 듯. 식당 정면 벽에 걸린 공양게송이 여느 때보다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바로 이어서 설거지 투입. 밀려드는 식기들…가장 치열한 과정인 듯. 일을 너무 잘해서 ‘똑순이보살’이라 불린다는 자봉반장의 현란한 설거지 퍼포먼스에 필을 받아 본능적으로 적응해감. 친구의 설거지실력도 급성장. 세 번의 공양이 지나고 나니 익숙해져 여유가 생김, 웃는 얼굴로 너무 일을 잘한다는 동료 자봉들의 칭찬에 고무 되어 TV프로<생활의 달인>에서 본 설거지의 달인과 자신을 동급으로 착각하기도 함. 이런 이유로 이튼 날(17일) 자운대종사추모제라는 큰 행사도 있고 해서 아침까지 계획했던 자봉일정을 점심까지로 연장했다. 엄청 많은 스님과 신도님들이 오신다고해서 독하게 강도 높은 노동을 경험 해보겠다는 오기도 발동한 듯. 예측대로 점심공양 끝나고 추정집계해보니 약1500여명이상이 다녀가신 듯. 공양을 마친 신도님들의 격려의 인사와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도와주실 때에는 참으로 흐뭇했다. 이렇듯 설거지삼매경에 빠질 만하니 아쉽게도 이번 자봉은 여기까지. 또 오고 싶냐? 고 묻는다면 물론 대답은 예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공양간도 수행공간이란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후원은 신도들이 출입할 수 없는 성역시 된 공간이었다고 들었다. 스님과 행자와 공양주보살의 자리에 이제 신도들이 자원봉사란 이름으로 함께한다.

사전적의미의 자원봉사(자)란 사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을 자기의 의지로 행하는(사람) 것이라 정의하고 그 동기를 애타심, 삶의 질, 의무감, 그리고 신앙심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신앙심은 한층 더 높은 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위한 수단으로서 종교적의무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원 자원봉사는 앞의 4가지 동기와 괘를 같이 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비우는 수행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천배 삼천 배를 하듯 천개 삼천 개의 접시를 닦으며 몰입하다 보면 ‘설거지한다는 생각도 없이 설거지 했다’ 즉 머리가 비워지는 무심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입칙진언 중에 “버리고 또 버리면 큰 기쁨이 있네/ 탐진치 삼독도 이 같이 버려…” 와 마찬가지로 씻고, 닦고, 말리고, 나르며, 비우는 ‘자봉게송’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비우면 고요해지고(허즉정虛卽靜) 고요해지면 맑아지고(정즉명靜卽明)’

해인사 후원 자원봉사는 작년12월부터 시행했다고 한다. 연령과 성별로 보면 20대~60대중 30~40대 보살님들이 가장 많고(남1:여4), 직업별로 보면 대학생, 회사원, 교사, 주부, 학원강사, 기타 자유직으로 나타나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다. 다만 후원자원봉사제가 법보종찰 해인사의 위상에 맞게 행자부족이나 자체인원부족을 해소하는 차원의 단순한 취지를 넘어 수행의 일환으로 진일보해 자리 잡아 나갔으면 하는 바램 이다. 이를 위해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홍보와 효율적인 운용에 필요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궁금한 점! 스님 식탁에 휴지 일정방향으로 접기와 청수, 숭늉주전자 일정방향으로 놓기, 그리고 왜 휴지와 고추장은 항상 꽉 채워야 하는지? 나중에 원주스님께 질문 드렸더니 특별한 이유는 없는 듯. 밑에 있는 휴지도 빛을 볼 수 있게 하시겠다고. 그럼 고추장은? 다음 자봉 때 시원한 답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별좌스님과 공양주보살님들, 그리고 똑순이반장님, 군대 다녀와 자봉하다 출가를 생각한다는 법대생, 부산서 사업하신다는 젊은 처사님, 다들 몇 일 만 한다는 것이 한 달을 넘어 두 달 가까이 하고 있다니 참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 뒤에 남해에서 온 대학진학 앞둔 여학생 참 기특하더군요. 꾸준한 인연을 지어주는 자봉이 되길 바라며, 이글을 보신 불자 분들 자봉에서 만나요. 일상의 무거운 잡념 살포시 내려놓고 설거지로 마음 닦기. 세상 밖에서 묻어 온 흔적을 씻어내기. 더 나아가 자봉하는 맘으로 일상을 살면 어떨까 싶어요.~
내가 만난 자봉은 모두 아름다웠다. 자봉을 함께한 그들 모두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