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4월의 정대불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효원/동국대학교대학원 2010년 04월 338호
이제 곧 해인사의 4월의 백미 정대불사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이 무르익는 가운데 해인사에서는 많은 불자님들이 경전을 머리에 이고 정대하면 법성게를 외우며 화엄일승법계도를 돌고 온 도량을 부처님의 가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정대불사는 경전신앙을 가장 극진하게 표현하는 의례 행위를 행하는 행사이다. 정대頂戴는 글자 그대로 ‘머리에 이는, 또는 머리에 받드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것을 불교적인 의례로 부연한다면 ‘불상이나 경전 등을 머리에 받드는 행위’로, 가장 지극한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대신앙의 유래는 관세음보살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세음보살이 본사本師인 아미타불을 예경하기 위하여 머리의 보관寶冠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여기서 정대신앙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머리를 중시하는 습속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것이겠지만, 불교에서도 가장 극진한 존경과 예경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정대신앙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정대불사의 역사적 배경, 신앙적 배경, 그리고 미리 체험하는 정대불사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정대불사의 역사적 배경

양무제가 지은 〈금강파야참문金剛波若懺文〉의 일부이다. 광홍명집廣弘明集 권 28에 실려 있는 이 글에서 경판 정대신앙과 관련한 내용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원하옵건대 여러 불보살께서 반야의 인연으로 동시에 모이셨으니, 만품萬品을 불쌍히 여기고 군생群生을 보살피셔서 은혜로운 흐름에 들게 하여 부처님의 바다로 다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금강의 묘한 보배를 얻고 금첩金牒의 깊은 경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머리에 이고 받들어 모시면서 죽을 때까지 떼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양무제는 경전을 머리에 이고 받들어 모시면서 평생토록 떼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다짐하고 있다. 그만큼 경전의 가르침을 중시하면서 그대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자료만 가지고 그 때부터 경판 정대불사가 행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무제의 신앙과 사회의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이 같은 경전 정대신앙이 널리 확산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경전신앙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일연 스님도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를 통해 경전의 전래와 유통 과정을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 특히 고려 현종대의 초조대장경 판각 이후 경전신앙은 더욱 중시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경전이나 경판을 머리에 이는 형태의 직접적인 의례 행위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고려시대에는 많은 수의 국가의 불교행사가 개최되었으며, 이 가운데 경전신앙과 관련한 불사도 적지 않았다. 고려사에 수시로 등장하는 강경講經법회뿐만 아니라 경찬회慶讚會, 장경도량藏經道場, 경행經行, 전경轉經 등은 모두 경전신앙에 근거한 국가의 행사였을 것이다. 다만 현존하는 기록이 모두 단편적인 것들이어서 이들 행사의 의식이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단편을 모아 정리해본다면 성종 10년(991년)에 한언공韓彦恭이 대장경을 송나라에서 가져오자 왕은 대장경을 내전으로 맞아들이고 스님들로 하여금 개독開讀케 하였다. 장경도량이라는 이름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은 현종 20년(1029) 때부터이다. 현종은 일찍이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하여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하고 그 절에 대장경을 만들어 모시고자 하였는데, 현종 20년에 그 때까지 이루어진 대장경의 일부를 받들어 모시고 공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정종 7년(1041)에는 이 장경도량이 연중행사가 되어 해마다 봄과 가을에 두차례 성대하게 열리었는데 국왕이 직접 그 장소에 나아가 행향行香하였으며, 더러는 삼보를 찬탄하는 경찬시慶讚詩를 지어 불교에 귀의하는 국왕의 뜻을 내보이기도 하였고, 공덕을 바라는 마음에서 승려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반승飯僧도 아울러 행해졌다. 정종 이후로 장경도량은 더욱 성대히 베풀어져 충선왕 3년(1311)부터는 행사하는 날을 늘려 봄 가을에 모두 열흘씩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대장경판의 조성으로 몽고군에게서 국난을 극복하자 대장경에 대한 국가적, 신앙적 의의가 증대되었다.
해인사 정대불사를 처음으로 일으키신 분은 1961년 당시 해인사 주지이던 영암 큰스님으로 알려진다. 율장에 따라 살며, 좌선하면서도, 행정에 밝으신 스님은 해인사의 주지 소임을 맡아 비구 대처의 분쟁으로 어수선한 해인사 도량과 망실 재산을 일거에 찾고 정리시켰으며 그리고 현몽을 받아 판전에 모셔진 대장경의 가르침과 가피력을 중생들에게 회향하고, 자손 만대 영원히 보존할 것을 서원하는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수호 정대불사를 시작했다.

정대불사의 신앙적 배경

정대불사의 신앙적 배경은 경전신앙과 호국신앙이다.
경전신앙은 불교신앙은 흔히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으로 설명되며 이 가운데 법보신앙은 곧 경전신앙과 연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불보신앙이 탑과 불상의 조성 등으로 전개되어 왔다면, 법보신앙은 경전의 성립과 유통에 의해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장경의 성립은 이 같은 법보신앙의 최대 결정체라고 하겠다.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것은 불자들의 의무적인 수행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경전의 수지 독송을 통한 공덕은 불자들에게 불보신앙 못지 않게 중시된 바 있다. 현대 이후 해인사에서 봉행해 오고 있는 경판 정대불사는 이러한 경전신앙의 대표적인 의례에 해당할 것이다.
호국신앙은 우리나라가 주변국의 침략에 의해 특히 몽고군의 침략에 의해 대장경을 조성하고 부처님의 가피로 국가재난을 타개하려는 선조들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성이며, 고려 팔만대장경은 이 같은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부산물이다. 일부에서 팔만대장경의 조성 배경에 대한 다소간의 이설을 내세운 적도 있지만 팔만대장경과 호국신앙의 관계를 부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 대작불사에 동참했던 승려와 수많은 민중의 호국신앙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미리 체험하는 정대불사
괘불봉안
강원스님과 거사님들이 해인사 큰법당 뒤편에 모셔진 괘불을 모셔 나오고 있다. 거대한 괘불을 영차 하는 구령과 함께 법당에서 법당마당의 괘불대로 모셔지고 있다. 벌써 괘불대 앞에는 불단에 만들어지고 많은 공양물이 차려져 있다. 주지스님을 비롯한 많은 해인사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모여 정대행사의 시작을 준비한다. 상단불공이 이루어지고 불사가 다시 시작된다.
정대불사를 하기위해 법당 밖에 야단법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괘불봉안을 해야 한다. 법당의 부처님을 모실수가 없어 대신하여 탱화를 모셔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괘불이다. 괘불을 모시고 상단불공이 끝나면 정대불사의 마지막 순서인 경전 정대의식이 곧 시작됨을 의미한다.

시련
사부대중의 스님들과 많은 불자님들은 구광루 앞에 서서히 모이면서 가득 채운다. 각종 번과 위패부처님을 모시는 가마, 향로를 앞에 세우고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모여 비석거리로 향한다. 이리 준비한 갖은 과일과 공양물이 있는 제단 앞에서 대중들이 모여서서 가마모양의 연輦에 부처님을 모시고 번들은 역대 해인사 공헌했던 분들을 모신 비석 사이에 서고 불사의 시작을 알리며 시련의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된다.
이 의식은 불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도량의 불보살, 옹호신중, 영가를 봉청해 모시는 의식으로, 대중이 연輦을 들고 해탈문 밖의 시련터로 나아가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의 인도로 재 도량으로 모셔오는 것이 시련이다.

법문
시련이 끝난 후 정대불사에 참가한 불자님들이 보경당에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한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툼도 일어나지만 스님들에 의해 정리되고 차례차례로 자리를 잡고 법문을 듣기를 기다린다. 이번에도 해인사의 큰스님들의 정대불사를 하는 이유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를 재미난 부처님의 말로 이야기 해 주실 것이다. 염불하는 스님들의 목탁소리 맞추어 청법의식이 시작되고 큰스님들의 법문이 시작된다. 스님들의 말 한마디에 불자님들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박수도 치고 우러러 스님께 절하는 분도 있다.
법문은 보통 2-3분의 초청내지 해인사 대덕스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주로 정대불사의 의미와 공덕에 대해 불사에 참가한 불차님들에게 알리는 의식이다.

천도재
법문이 끝나고 영가들을 모시는 대령과 관욕이 거행된다.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강원스님들과 노전스님, 부전스님들이 보인다. 목탁과 요령, 태징과 소북이 일제히 내려지고 의식이 시작된다. 대령 때 쓸 영가들을 위한 국수도 보이고 한쪽에는 병풍에 향탕수와 영가들의 옷가지가 보인다. 재대령과 관욕이 끝나고 영가들의 천도의식이 시작된다. 관음시식에 의해 영가들이 부처님의 법음을 나침반 삼아서 극락세계로 여정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 노전 부전스님의 목청이 드높아 진다. 또한 법당사물의 운율에 맞추어 화청이 시작되면 시식에 참가한 불자님의 눈물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이 모든 의식이 다 끝나고 영가들을 반야용선에 모시고 스님들의 앞장에 대중들이 따라서 준비된 소대로 움직인다. 반야용선에 태워진 영가들과 다라니들을 태우며 영가 천도와 참가한 불자님들의 업장소멸이 이루어진다.
대령은 영혼에게 간단한 음식을 대접함을 말하며 관욕은 영가가 불단에 나가 불법을 듣기 전에 사바세계의 삼독三毒에 의해 더럽혀진 몸과 마음의 업을 부처님의 감로법으로 깨끗이 닦아내는 의식이다. 천도재의 시식은 관음시식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앞서 대령에서 국수를 공양했지만 이제 영가에게 부처님의 법을 듣고 돌아가심에 있어서도 편안한 영식으로 배불리 공양하시어 돌아가시라는 의미로 현세와 같이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봉송과 소대의식은 도량에 모신 불보살님과 영가들을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경전정대행사
정대행사는 대적광전 큰 법당에서 부처님께 의식을 고하고 주지스님과 노전스님을 비롯한 의전스님들의 선두로 법당을 세 번 오른쪽으로 돌고 온 도량을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한바퀴를 크게 도는데 마지막은 보경당 앞마당의 화엄일승법계도를 도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법당을 세 번 도는 의미는 부처님께 지극히 예를 올리고 찬하는 의미이고 도량을 도는 의미는 팔만대장경의 부처님 음성이 도량을 청정히 하는 것이며 화엄일승법계도를 도는 의미는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부처님의 일음一音이 법法에서 시작하여 불佛로 끝나는 모습을 구현하며 부처님의 법을 수지하여 법계도의 구불어진 각자의 근기를 헤쳐 나와 성불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정대불사를 간접 체험했다. 해인사는 법보 종찰로 해마다 정대불사에 의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자신의 본래면목을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체험에 소개된 이야기는 시절에 따라 더해지는 행사가 있을 수도 있고 빠지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봉행할 때를 기준으로 소개한 것이다. 많은 불자님들이 불사에 참가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으면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소중히 하고 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고 또한 스스로가 성불하는 보리심이 샘솟기를 바라면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