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감으로 이불을 만들어 세상을 덮겠다는 화가가 있었다.
조각가 오채현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왜 물감이불로 세상을 덮겠다는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까. 전시장에 모셔진 맑은 미소 가득한 천진불상(像)을 만나고서야 고장 난 시계 같았던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조각가 오채현, 그는 인터넷으로 확인한 사진 보다 훨씬 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반겨주는데 편안한 자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뒤돌아서게 하는 이끌림
오채현이 다듬은 비로자나부처님, 아기동자, 천진불, 나한님은 온갖 이야기를 담고 내게 말을 건네 온다. 경배와 신앙의 대상인 불상이 이렇게도 조성되는구나 싶은 들뜬 마음을 내려놓고 우선 합장부터 하고서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조각가가 종교를 문화로 혹은 예술로 표현하자면 작가 나름의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끝에 그가 대답하기를 “부처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1세기 이 시대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지치고 상처받은 이를 토닥거리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부처님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편안해지고 푸근해지는 형상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의 이상향 같은...”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 속 부처님은 감은 듯 뜬 듯한 눈이며 천진한 웃음이 신라 막새기와의 인물상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태생이 경주인 그이는 남산 삼불사 삼채석불과 장창골에서 발굴된 삼화령 삼존불을 어지간히도 좋아했다. 부처님을 찾아가 사진 찍고 스케치하고 드로잉하는 동안 어릴 적부터 와당파편이며 사금파리에 익숙해있던 그의 내면과 불상은 자연스레 육화肉化되었으리라. 법당에 모셔진 거룩한 부처님모습에 익숙한 불자들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석불을 처음 만나 걸음을 멈추었고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이끌림에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채현의 조각은 이리 사람을 동하게 한다.
욕심보다는 힘을 빼야
오채현은 오전 9시 작업실에서 일과를 시작해서 종일 돌을 만지는 석조조각가다.
돌을 쪼다 보면 돌가루를 마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한 그의 작업실은 돌바닥에 막노동장이란다. 그러다 힘들면 그 돌바닥에 누워 쉬기도 한다는 말에 진폐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덤덤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막을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안 할 수도 못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마지막까지 내 하는 일 즐기면서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흐르는 대로 맡겨두고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입니다.” 이쯤에서 그가 프로임을 실감한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 닿는 그의 손, 그런데 웬걸 그다지 거칠지가 않다. 호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힘을 빼야 그때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수영을 처음 배울 때도 춤을 출 때도 고수들이 하는 말 “힘 빼!” 조각가 오채현도 처음 돌을 만질 때는 단단한 돌을 내가 깨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엄청난 힘으로 때리고 그 반동으로 이곳저곳 터지기도 여러 번이었단다. 힘의 논리로 따져 봐도 그렇다. 사람이 돌보다 약하지 않은가. 이제 그는 아기 얼르듯 여자 다루듯 돌을 달래가면서 토닥인다. 그러다 힘들면 쉬고 친구가 찾아오면 어울리고...그의 작업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라는 선사들의 가르침을 닮았다.
천년이 넘은 돌집, 미켈란젤로가 걷던 길
돌조각을 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꿈꾸는 곳 까라라, 알프스산맥의 끝부분에 자리한 이탈리아대리석 산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로마제국시대부터 돌을 캐내던 곳으로 미켈란젤로 역시 5백여년전 피에타를 구상하며 돌을 구하러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나간 예술가들의 혼이 남아있는 까라라에서 오채현은 5년간 공부를 하며 동서양의 조각이 돌을 매개로 하는 공통점은 있지만 머리카락, 나뭇잎하나까지도 사실적으로 조각하는 서양의 기법에서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우리네 정서와는 다른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오채현이 즐겨 다루는 화강석은 어린시절 안압지와 반월성을 뛰어놀던 그에게 참으로 익숙하고 체질과도 잘 맞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에서 나는 돌만을 재료로 쓴다. 그리고 작업실 앞에 도착한 자연석을 며칠이고 눈길 주고 바라보며 마음을 쓴다. 말하자면 기본도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석에 숨어있는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민화 속에서 나온듯한 호랑이가 웃고 새들이 날아온다. 그리고 관음보살님의 살포시 내리감은 눈매에 혹하여 세간살이 지친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진다. 양쪽 입 꼬리 살짝 올리며 웃고 있는 비로자나불 앞에서면 나도 모르게 합장하고 수인(手印)마저 따라하게 되는 것은 누가 시켜서일까. 갸우뚱한 고개의 아미타불, 약병 들고 반기는 약사여래, 온갖 모습으로 아라한과를 슬쩍 이야기하는 나한님..... 한 분, 한 분 차례로 합장예배 하는 이 가득한 행복함이라니.
멍석만 깔아지면 그 다음 일쯤이야
조각가 오채현의 진지함이 만들어낸 불상이나 천진불 동자상은 한 번 만나본 사람이면 또 보고 싶고 그래서 소장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쩌랴. 원한다고 모두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러니 그의 전시회라도 부지런히 쫒아 다녀야지. 우리들 마음을 십분 이해해서일까. 오채현은 그동안 무던히도 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화랑에서의 전시는 물론이고 특히 지난 2000년 대한민국 불교전법1번지 서울 조계사를 시작으로 해를 바꿔가며 성북동 길상사, 강남 봉은사, 김포의 중앙승가대학교에서의 석불조각전은 불자들에게 환희심으로 구도행을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심어주었다. 어느 해 여름으로 기억된다. 비구니스님 계시는 경주의 사찰을 찾아가던 날, 법당 앞 소나무 그늘아래 여기 저기 앉아있는 천진불, 나한님에 홀리듯이 발걸음을 따라 옮긴 적이 있다. 그래서 법보종찰 해인사를 찾는 불자들도 행복한 홀림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해인사에서 전시회를 한 번 하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멍석만 깔아주면 맘껏 놀 준비는 되어 있다는 시원시원한 대답이 한여름 무더위까지 한 방에 날려주는 것 같다. 이제 꿈꾸어 볼일이다. 해인사 장경각 뜰 앞에, 구광루 돌아가는 길에, 대비로전 앞 배롱나무 붉은 꽃나무 아래에서 수더분한 자세로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줄 오채현의 석불에 빠져들 날을~
21세기의 부처님나라를 장엄하고 싶어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긴다. 더구나 그것이 밥벌이가 된다면야 두말 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정색한 얼굴로“그걸로 살아내야 하는 것, 그래야 치열해지고 창조의 동기가 됩니다. 취미생활이 아닌 프로죠.” 이어지는 그의 아득한 목소리“30대 조각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시절이 있었지요. 6~70cm작품하나 만드는데 돌덩이를 적어도 50번에서 80번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았지만 그 때는 자유로움이 있었어요.” 때로는 결핍이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했던가? 작품에도 힘이 실려 있고 자유롭던 젊은 시절을 관통해온 그는 지금 편안하고 담담하다. 변화에 민감하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물처럼 스민다.
이제 그는 집 채 만큼 큰 돌에 우리시대의 모습과 환경을 담은 21세기 부처님 나라를 조성하는 대작불사를 원력으로 삼았다. 자동차가 넘치는 도로와 컴퓨터가 만능인 이 시대를, 빌딩 숲과 산사, 도심포교당이 공존하는 지금 우리네 삶의 모습을 평생 놀아가며 정을 쪼아대고 싶단다.
문화재와 국보, 보물의 70%이상이 불교예술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다음세기에 그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하는 조각가 오채현, 그가 구상하는 21세기 부처님 나라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작품을 하고 싶다는 열기로 몸이 달궈질 때를 기다리며 컨테이너 박스에 응원의 박수를 가득 담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