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다양함을 인정하는 출발 - 정견正見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09년 08월 330호
정견正見 보살도菩薩道를 실천하는 삶의 이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제일 먼저 거론되는 정견正見은 올바른 견해와 의견, 나아가 이론과 사상의 정립定立을 가리키는 것이다. 올바르고 진실한 견해와 사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듬고 바로 잡는 수정의 단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正에 담겨 있는 뜻이다. 시대와 환경에 부응하지 않는 절대적인 지고至高의 선善과 가치란 부처님의 정법正法, 불법佛法만이 존재할 뿐이며, 세상의 모든 이념과 가치관과 사상에는 절대선絶對善이나 절대악絶對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간 세기에 쓰라린 고통과 혼란을 치러내며 체득한 귀중한 이론이다. 물론 고통이나 아픔이나 혼란을 겪지 않고서 올바른 견해와 사상을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고통과 아픔의 크기만큼 견해와 이론의 실천 또한 보다 용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주지(周知)의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과 상황을 살피자면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개념마저 뭉개져버린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견과 사상만이 올바르고 진정한 최상의 선택일 것이라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의 처신이나, 이제까지의 자신의 주장이나 공력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무턱대고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함성을 높이는 맹목적인 행동 또한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소행이 개개인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리와 집단의 이해관계로 까지 확산되어서 결국에는 사회의 분열과 위기를 조장하고 마는 가슴 아픈 우리의 현실이 그저 안타깝다.
마麻를 심어 정성으로 농사를 지어 수확하여 길쌈으로 삼베를 장만한 두 사람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함께 길을 떠났다. 고개를 넘어가는데 땅바닥에 구리가 가득 놓여 있었다. 이것을 목격한 한 사람은 짊어지고 가던 삼베를 내던지고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구리를 등에 졌고, 다른 한사람은 농사와 길쌈과 거기다가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이제까지의 모든 공력과 노력이 아깝다는 전공가석前功可惜의 입장을 견지하여 삼베를 버리지 못하고 그냥 짊어지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또 다른 고개를 넘어가자 이번에는 은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구리를 짊어졌던 친구는 이번에도 은으로 바꿔서 등에 졌고, 삼베를 졌던 사람은 지금까지 들어간 공력이 아깝다는 생각에서 역시 그대로 삼베를 지고서 계속해서 걸어갔다. 다음 고개에서는 금덩어리를 만났고, 은을 짊어졌던 친구는 다시 금으로 바꿔서 들었고 삼베를 짊어진 사람은 그대로 삼베를 짊어지고 시장으로 갔다. 그 결과 금으로 바꿔서 지고 간 친구는 삼베를 팔아서 받은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 담마기금擔麻棄金, 삼베를 짊어지려고 금을 포기한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설명이다.
나의 의견이나 생각과 상반되는 상대방의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인식하는데서 하나의 사물을 관찰하거나 동일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도 다방면의 시선과 입장이 있다는 다양성과 느슨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완고한 의지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문화와 화합의 흐름에 걸림돌이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수승한 가치의 금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성과 공력이 들어간 아까운 삼베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깝기는 하지만, 보다 고귀한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완고한 의지보다는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다양함과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사상四相(아상 我相·인상 人相·중생상 衆生相·수자상 壽者相)을 벗어난 인욕행자忍辱行者이며, 인욕보살忍辱菩薩의 정견正見일 것이다.
초楚나라의 한 사람이 하루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얼른 뱃전에 자국을 내어 칼이 떨어진 지점을 표시해두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에 배를 세우게 하고서 표시해 둔 뱃전 근처의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았다. 칼이 떨어진 지점을 이미 지나쳐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새겨둔 표시를 기준으로 헛되게 찾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여씨춘추呂氏春秋》의〈찰금편察今篇〉에 나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설명으로 이 또한 옛것에 대한 집착으로 시대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헛된 집착과 망상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찰금察今이란 지금, 즉 오늘을 살핀다는 뜻으로 여씨呂氏, 진시황의 아버지 여불위呂不韋 당시에도 그런 시대착오적인 인물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각주구검하기 보다는 기마담금棄麻擔金의 적극적이고 관용적인 자세로 자신의 계발과 도약을 이루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