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이면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나눔의 집은 지난 92년 뜻있는 불교계 인사들이 모여 설립한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쉼터이다.
2004년 6월. 여든셋의 나이로 그 한많은 생을 마친 김순덕 할머니. 열일곱에 끌려가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도망을 나와 고향을 찾았건만 할머니 역시 고향사람들의 외면과 식구들의 절망을 마주대할 수없어 결국 다시 타향살이 한평생을 살다가셨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할머니 나이 칠십 중반 무렵. 그 해 8.15특집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취재를 위해서 머문 나눔의 집에서의 일주일.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심각한 정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종군위안부 시절, 여린 처녀의 몸으로 많게는 하루 300명도 넘는 일본군에게 당해야만했기에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저마다 머리맡에는 한 웅큼의 약봉지들을 놓고 사셨다. 김순덕 할머니도 역시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달고 사셨다. 할머니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밤시간이다. 자려고 누우면 아직도 당시 기
억이 떠올라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늦은 밤 행여 남들의 곤한 잠을 깰까봐 방문 밖을 나설 수도 없고 결국 밤새 작은 방 안을 뱅글뱅글 돌며 일거리를 찾아내신다고 했다. 나 역시도 잠결에 옆방에서 들리는 바지락소리에 잠을 깨 나가보니 할머니는 방문을 반쯤 열어놓고 텔레비젼 화면을 전등 삼아 콩깍지를 까고 계셨다. 새벽 두시.
내가 들여다보는 것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열심히 일 손을 놀리고 계셨다. 아직도 갇혀진 방 안에서 당해야만 했던 당시의 끔찍한 기억이 생생하니 그 공포심에 방문조차 닫지 못한다. 한 순간이라도 빈 틈이 나면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 견딜 수없기에 날이 선 신경을 다른데로 돌리느라 뭔가 몰입할 일거리를 끊임없이 찾는다고 하셨다. 동이 트면 할머니는 재빠르게 마당으로 나가신다. 맘껏 일을 할 수있으니 낮은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했다.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청소를 하고 근처 텃밭까지 가꾸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아침 식사시간을 맞는다. 오가는 사람들은 한시도 쉬지않고 움직이는 할머니 덕에 늘 깨끗한 마당을 본다고 즐거워하지만 끔찍던 지난 기억들을 지우려고 바쁜 일 손을 이어간다는 할머니의 숨은 사연을 들은 나로서는 정돈된 마당이 그저 곱지만은 않았다. 아픈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은 탓에 힘들어도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김순덕 할머니. 손끝은 아픈 마음을 대변하는 듯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꼭 다문 입술은 이젠 절망을 딛고 현실을 살아내보고자하는 핏빛 몸부림인듯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눔의 집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서울로 데모를 가신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성인권단체 사람들과 만나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김순덕 할머니도 거동을 못하는 날을 빼곤 돌아가시는 날까지 거의 한번도 시위에 빠진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숨기고 싶은 수치스런 과거이지만 그래도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 것은 오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에 대한 진실과 국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9년.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5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 역사는 광복 65주년과 6.25 60주년을 맞았다. 할머니의 유훈은 강한 한국. 잘사는 한국 그래서 다시는 힘 쎈 나라들이 넘보지 못하는 한국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런 교훈을 남기기 위해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치욕스런 당신의 과거를 증언하며 약소국민으로 당해야만했던 아픈 역사를 들려주셨다. 올곧은 국가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할머니에 대한 보답은 무엇일까.
21세기를 지식에 기반을 둔 경제제국주의라 부른다. 자원을 얻기위해 총과 칼로 남의 나라를 점령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기술과 지식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기로 세계를 지배한다. 지구촌에는 경제를 축으로 하는 강대국, 약소국이 다시 생겨나고 경제강국은 자본잠식을 통해 후진국을 경제식민지화하여 간다. 눈만 뜨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요즘같이 빠른 세상에서는 잠시의 방심도 금물이다. 이제는 힘없는 나라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길들여지고 기술개발에 게으른 나라가 약소국이다. 무력침략을 이유로 반인권적이라고 항의할 명분도 사라지고 오직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성실한 노력만이 국력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2004년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세계 경제규모(GDP기준) 10위였던 우리나라가 IT를 기반으로한 인도의 경제시장 진입으로 11위로 떨어지더니 2006년에는 브라질. 러시아의 추월로 12위로 밀려났고 급기야 2008년 세계 13위, 그리고 올해16위로 크게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예전같으면 10년 주기로 변하는 경제 상황이 이제 1년 단위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자원을 힘으로 국가주도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주변국들의 추격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회는 분열되고 도덕불감증으로 애써 만든 기술은 해외로 유출되기 일쑤이며 서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기술투자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다. 무엇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가. 바로 구성원들간의 불신이다. 국민들은 국가발전을 위해 나를 희생하기보다는 나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 정치는 사분오열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잃어가고 오직 당리당략으로 시끄럽기만하다. 국가를 구성하는 정부와 국민, 그리고 기업까지 누구하나 국제사회 속에서 한해한해 뒤쳐지는 우리의 현실을 진지하게 챙겨보질 못한다. 모두가 눈 앞에 벌어지는 갈등의 늪에 빠져 전체를 볼 능력을 상실해가고있는 듯하다.
이제는 남의 탓을 하기 이전에 나의 모자람을 반성할 때이다. 깊은 참회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낳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씨앗이 된다. 국가가 힘이 없으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다시 한번 생각해자. 강한 나라, 부유한 나라, 힘 쎈나라의 국민이고 싶다면 나부터 돌아보며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과연 국가발전을 위해 어떻게 작용하고 기여하는가 생각해보는 8월이 되었으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