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생각은 자꾸만 과거로 흘러만 갔다. 몸과 마음이 관성에 법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동차와 같이 앞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산내암자 순례를 가면서 한 보살님이 나에게 하는 말 “스님 다른 것은 몰라도 발우공양시 퇴수 마시는 것은 없었으면 좋겠어요”하며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시는 거였다. 그것은 위생상으로도 안 좋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발우공양에서 나온 퇴수(여기서 퇴수란 발우공양을 하면서 공양을 다하고 자신의 발우를 닦고 남은 물이다. 더러운 찌꺼기는 자신이 마시고 깨끗한 물만 퇴수통에 붓게 되어있다.)의 수질을 보고 가장 더럽게 나온 조가 그 퇴수를 다시 나누어 먹는데 안 마셔본 조 없이 골고루 마신 것 같다. 마치 누가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하루 하루 서로 번갈아 가면서 사이좋게 수련생 전원 모두 퇴수를 마시는 경험을 했다. 왜 불가佛家에서는 퇴수를 깨끗이 받아내라는 것일까? 물론 친환경적인 식사방법인 발우공양이 오염물의 발생을 극소화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이유는 스님들이 발우공양 후 나온 퇴수는 바로 아귀들을 위해 공양하는데, 퇴수가 더럽거나 그 안에 건더기가 있으면 아귀가 그 물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귀는 불교에서 말하는 굶주림 귀신 또는 괴물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윤회輪回전생을 이야기하는데, 생전에 탐욕에 쌓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은 후 환생을 할 때 인간계나 축생계가 아닌 아귀계에서 태어나게 되고, 이 중 아귀는 항상 굶주림을 느끼는 귀신(또는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원래는 흰두교 사상에서 나온 말로, 고대 인도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프레타(preta)라고 하는데, 이 영혼은 자손들이 바치는 제물(음식 공양)을 원한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불교에 도입이 되어, 죽은 후 육도(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계) 중 아귀계로 환생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는 귀신(보다는 인간이 아닌 것의 의미가 더 가깝다)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아귀계는 염마왕이 다스리는 세계로, 아귀들은 먹을 것을 찾으나 음식을 입에 넣으면 돌이나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하기 때문에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다른 기록을 보면 아귀는 입은 크나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굶주림에 비해 먹을 수 있는 양이 적어 항상 굶주림을 느낀다고도 한다. 불쌍한 아귀들을 위해 퇴수를 깨끗이 받도록 하자.
발우공양 중에 처음에 깨끗한 물을 4개의 발우 중 한 그릇에 받게 된다. 이 물은 공양을 다하고 밥을 담는 발우, 국을 담는 발우, 반찬을 담는 발우를 설거지 하는데 사용된다. 발우에 약간의 물을 따르고 거기에다가 반찬으로 나온 단무지를 수세미 삼아 젓가락으로 발우를 닦는다. 다 닦은 물을 국발우로 옮겨 다시 닦고, 찬발우로 옮겨 다시 닦고, 모두 다 닦은 뒤에는 그 물을 마신다. 거기서 설거지가 끝나느냐? 아니다. 다시 깨끗한 물이 담긴 발우에서 물을 따라서 이번에는 손을 발우에 넣어서 직접 발우를 닦는다. 그 설거지 한 물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마신다. 물론 발우공양하기 전에 손을 닦아야 함은 필수이다. 손이 더럽다면 더러운 손으로 자신의 발우를 닦고 그 물을 마시는 샘이 되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발우공양 시 일부러 손을 닦고 공양에 임했던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절 집안 생활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위생관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 절 집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렇게 깔끔을 떨고 난리법석을 쳤지만 지금은 그에 반해 깨끗함과 더러움에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사실 깨끗함과 더러움 차이는 종이의 앞뒷면 차이인 것과 같다. 우리가 먹는 김치와 된장, 쌈장, 등의 발효음식은 균으로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닌가? 그리고 모든 음식과 식기에 묻은 세균수치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세균치가 5000까지는 깨끗한 것이고 5001부터는 더러운 것인가? 어디서부터가 더러운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깨끗한 것인가? 모두 눈의 속임수, 관념의 속임수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왕 깨끗함과 더러움이 나왔으니 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하자. 불가에서는 혹자가 비위생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발우공양에 반해 위생적인 관습이 하나 있다. 아니 이것 또한 비위생적으로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뒷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현대 사회의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다. 대사大事를 치르고 항문을 향해 분사되는 물로 항문을 청결히 청소해주는 아주 편리한 기계이다. 물로 분사해서 청소해주고 엉덩이에 묻은 물기는 다시 자체 드라이기로 말려준다. 훌륭한 세상이다. 이와 같이 절집 안에도 자체 비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손’이다. 인도에서도 왼쪽손은 비데용으로 오른쪽 손은 공양용으로 쓴다고 한다. 대사를 치르고 1차로 휴지로 처리하고 2차로 물을 이용해 손으로 처리한다. 본인도 ‘뒷물’을 치르는 첫 경험이 유쾌한 기억만은 아니였다. 대사를 치르고 수각장으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조그마한 뒷물용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뒷물’이라는 신비한 첫의식을 치르는데 영 불편한게 아니였다. 출가 이전에는 대사를 치르고 휴지로 뒤를 닦다가 간혹 실수로 손에 묻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때마다 매우 기분 나빠했는데, 이 뒷물은 휴지도 없이 직접 물 묻은 손으로 큰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불편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더 곤란했던 것은 혼자 수각장에서 뒷물을 하고 있을 때 동료 행자님이 들어올 때이다. 공동으로 대중생활을 하는 우리로서는 수각장을 다 같이 쓴다. 거의 모든 건물 출입문에 잠금장치가 안 되있는 경우가 많다. 뒷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료행자님이 들어오면 영~ 자세가 말이 아니다. 영 체통이 안선다고나 할까? 내가 뒷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대로 도망가 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사(大事)를 치르고 ‘뒷물’을 안하면 영 찝집한게 생활을 못한다. 얼마나 개운하고 상쾌한지 ‘뒷물’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다. “수행자가 뒷물을 안하면 엉덩이에서 냄새나서 호법신장들이 싫어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수행자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호법신장들이 혹여나 달아날까봐 더 열심히 뒷물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수련회 4일째 저녁에는 만남의 시간이 있다. 그때는 서로 묵언을 풀고 수련회 습의사 스님들과 수련생들과 자원봉사자들과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대로 서로 소감을 이야기 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소감이 하나 있어 이야기를 꺼내본다. 내용인 즉슨 본인은 여러 수련회에 다녀보았는데 이번 해인사 수련회 또한 여타의 수련회와 달리 내용이 크게 다른 게 없어서 안타까웠고, 습의사 스님들의 자질 또한 예전에 비해 그리 많이 향상된 것 같지 않아 안타까웠고 그리하여 이번 수련회를 통해 별로 얻어가는 것이 없다라는 말씀이었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 자신이 성공했던 사례를 들면서 성공하는 생각의 방식을 수련생들에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당신께서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그 일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니 그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앞의 해인사 수련회의 내용과 수련회 습의사 스님들의 자질이 나아진 게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각설하고 후자 성공하는 생각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론다 번의 \'The Secret\' 등 많은 성공서적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네가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절대로 실패할거라 생각하지 말고 이미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본인들의 꿈을 그리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그대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Mind control 방법들은 성공하는 몇 몇 서양명문가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왔는데 현대에 이르러 이 방법들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 방법에 대해 성공사례가 굉장히 많아 나도 처음에 굉장히 흥분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과 같이 매우 기뻤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이루어 졌다고 확신하고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감사해라.’ 마법과 같은 문구이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福, 공덕功德, 업業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꿈꾸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된다고 확신하는 몇 몇 이들에게는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복을 가진 자 들은 허황된 꿈은 꾸지 않는다. 현생에서 또는 전생에서 복을 얼마나 닦았는가 여부가 이 비밀의 Mind control 으로 원하는 꿈의 실현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전생에 또는 현생에 공덕과 복을 많이 쌓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루고 얻겠지만 전생 또는 현생에서 남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리 비밀의 생각방식을 통해 꿈을 이루려 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은 불교의 윤회輪回사상, 업業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세간에 나와 있는 성공서적들이 개인적인 성공과 물질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 면이 있다. 본인은 근래에 유행하는 이 성공 관련 서적들이 다루는 비밀의 성공생각방식을 응용하길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인 성공과 이기, 물질적 부富를 위한 Mind control 도 좋지만 우리 모두의 행복과 풍요를 위한 Mind control 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 아픔 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 굶고 헐벗는 사람이 없는 세상, 슬퍼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을 두루 권하고 싶다. 물론 현생에서 개인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성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도 풍요롭게 살고 남도 풍요롭게 살면 더 좋지 않은가?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 남을 해하지 않고,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자신과 타인이 같이 성공한다면 그야 말로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 이웃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게 어떠한가?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자비로운 그 손길이 참다운 불심이요
너그러운 말 한마디 그윽한 향이로다
속들이 곱고 고운 성실한 그 마음이
영원히 변함없는 부처님 마음일세
문수동자게文殊童子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