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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화劫火가 대천세계를 태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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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9년 08월 330호
조계종정·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겁화통연무일물(劫火洞然無一物)하니
야래한월소사바(夜來寒月炤娑婆)로다
겁화로 훨훨 타버려 한 물건도 없더니
밤이 되자 싸늘한 달 사바세계 비춘다

어떤 납자가 익주(益州) 땅의 대수법진(大隨法眞)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겁화(劫火)가 활활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지니라.”
그 납자는 다시 용제소수(龍濟紹修)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겁화(劫火)가 활활 타서 온 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지지 않느니라.”

익주의 대수산 법진 선사는 백장선사의 문하에서 공부한 대안(大安)선사의 제자입니다.
그는 일찍이 60여명의 존숙에게 참문한 적이 있는데 위산(潙山)의 회상에서 아궁이에 불 때는 소임을 오랫동안 맡았습니다. 그 인연이 ‘대수겁화(大隨劫火)’ 공안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집어넣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늘 화두를 참구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달리 물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위산선사가 오히려 물어오는 것이였습니다.
“그대는 여기 온지 몇 해나 되는데 아직도 청해 묻는 법을 모르는가?”
그러자 대수는 이렇게 응대하는 것이였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되겠습니까?”
그러자 위산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을 줄도 모르는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대수는 위산선사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공부인에게는 묻고 말고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뒤 출신지인 동천(東川)으로 돌아가 붕구산(堋口山)으로 가는 길목에서 차를 달여 오가는 길손을 3년동안 대접하였으며, 그 뒤에 대수산에 주석하면서 법을 폈던 것입니다.
그 때 겁화를 물었던 그 납자는 대수스님을 떠나 투자선사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일렀습니다. 그러자 투자선사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서촉 땅에 고불이 출세하였구나. 그대는 속히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납자가 다시 대수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대수선사는 열반한 뒤였습니다. 눈이 어두우면 언제나 이런 수치를 당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4겁중 괴겁의 끝에서 세계를 태워버리는 큰 화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를 겁화(劫火)라고 불렀습니다. 천 성인의 신령한 근기과 중생들의 생명이 이 ‘무너질 괴(壞)’라는 글자 하나에 막혀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 만일 말을 따라 견해를 낸다면 망정과 망식의 구덩이에 들어가서 끝내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무너질 괴(壞)’라는 이 한 글자는 바다를 먹으로 삼아 쓰더라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말을 따라 견해를 내면 ‘그것’과는 천만리 멀어질 것입니다. 물고기가 헤엄치면 흙탕물이 일어나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안목이 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너진다고 해도 장애가 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장애가 됩니다.

이에 대하여 양기(楊岐)선사는 “이 두 선지식 가운데 한 사람은 사라진다고 말했고 또 한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사라진다는 말이 옳은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옳은가? 대중들은 알겠는가? 사라짐과 사라지지 않음은 둘은 안팎의 구분이 없는 것이니 두 가지 사이에 조금의 간격도 없다. 평상시에 이것을 참구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백당아(栢堂雅) 화상은 “피차의 구분이 없고 또한 생사조차 없다면 필경 어떻게 해야할까? 겁화에 모두 소진되어 한 터럭도 없이 다하면 수미산 꼭대기에서 마음대로 거닐 것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대수가 무너진다고 해도 몸 빠져나갈 곳이 있고 용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몸빠져나갈 곳이 있으니 한결같이 무감각해서도 안되고 한결같이 정식(情識)으로 알려고 해도 안되는 일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산승에게 ‘겁화(劫火)가 활활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하고 물어 온다면 그런 납자에게 이렇게 되물을 것입니다.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음은 그만두고 ‘그것’을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인가?”

어쨋거나 두 노숙 중에 한 사람은 ‘그것’도 무너졌다고 하고 한사람은 ‘그것’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무너졌다고 해도 틀렸고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도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것인지 해제 만행길에 대천세계를 다니며 항상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학에게는 구고(九皐)에 날기 어려운 날개가 있고
말은 천리에 공연히 바람을 쫒는 일이 없느니라
학유구고난저익(鶴有九皐難翥翼)이요
마무천리만추풍(馬無千里謾秋風)이로다

2553(2009) 하안거 해제일에

조계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2553(2009) 하안거 해제 법어

제목: 겁화(劫火)가 대천세계를 태우니

어떤 납자가 익주(益州) 땅의 대수법진(大隨法眞)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겁화(劫火)가 활활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지니라.”
그 납자는 다시 용제소수(龍濟紹修)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겁화(劫火)가 활활타서 온 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지지 않느니라.”

‘무너질 괴(壞)’라는 이 한 글자는 바다를 먹으로 삼아 쓰더라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말을 따라 견해를 내면 ‘그것’과는 천만리 멀어질 것입니다. 물고기가 헤엄치면 흙탕물이 일어나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안목이 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너진다고 해도 장애가 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장애가 됩니다. 대수가 무너진다고 해도 몸 빠져나갈 곳이 있고 용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몸빠져나갈 곳이 있으니 한결같이 무감각해서도 안되고 한결같이 정식(情識)으로 알려고 해도 안되는 일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산승에게 ‘겁화(劫火)가 활활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진다고 했는데, 그 때 ‘그것’도 무너집니까?”하고 물어 온다면 그런 납자에게 이렇게 되물을 것입니다.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음은 그만두고 ‘그것’을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인가?”

어쨋거나 두 노숙 중에 한 사람은 ‘그것’도 무너졌다고 하고 한사람은 ‘그것’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무너졌다고 해도 틀렸고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도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것인지 해제 만행길에 대천세계를 다니며 항상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학에게는 구고(九皐)에 날기 어려운 날개가 있고
말은 천리에 공연히 바람을 쫒는 일이 없느니라
학유구고난저익(鶴有九皐難翥翼)이요
마무천리만추풍(馬無千里謾秋風)이로다


2553(2009) 하안거 해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