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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에서 아키노로 바뀌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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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통신 - 정문태 1990년 11월 105호
86년의 이른바 필리핀 2월 혁명. 가슴조이며 지켜보았던 그날을 되새기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내린 혁명의 땅 필리핀.
필리핀의 관문인 마닐라 공항은 지난 83년 미국에서 돌아오던 아키노가 총격을 당해 숨졌던 곳으로, 지금은 그의 뜻을 기려 ꡐ아키노 국제공항ꡑ이라 이름붙여져 있다. 흔히 ꡐ민중의 힘ꡑ(People\'s Power)으로 불리워졌던 그날의 벅찬 모습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며, 혹은 혁명의 찌꺼기라도 찾아 볼 양, 혹은 그들의 숨결이라도 느껴 볼 양 두 눈을 부라린 채 시내로 들어온다.
그러나 거룩했던 민중의 힘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마치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 나쁜 착각에 빠져든다. 거리는 온통 미국말로 수 놓여있고, 지나는 사람들의 업거리․먹거리․살림집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미국과 빼닮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렁찼던 필리핀 2월 혁명이 찌그러진 혁명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약 7천 1백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16C 스페인의 황태자 필립 2세 이름을 갖다 불임)은 나라이름이 말해주듯이 오랫동안 제국주의 나라들에게 속속들이 찢기고 할킨 뼈아픈 역사를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1521년 마젤란이 세부섬에 닿은 뒤부터 스페인 사람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고, 1521년 가스피에게 마닐라를 빼앗기면서 결국 300년 동안이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자급자족이라는 생존경제의 틀 속에서 애니미즘 정신이 감싸고 있던 본디 필리핀 사람들의 전통사회는 카톨릭 문화를 앞세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짜맞춰져 버렸고, 더구나 스페인의 중상주의적 식민정책은 필리핀 민족자본의 씨앗마저 삼켜버려 필리핀 민중들은 식민지배자들을 받쳐주는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이 사이에도 지역 단위로 민중들의 저항운동은 끊이지 않았고 19C 말에는 서서히 정치성을 띠면서 전국적 조직운동으로 발전했다. 그 뒤 개혁사상을 퍼뜨린 까닮에 ꡐ리살ꡑ이 죽임을 당하면서 1896년 ꡐ보니 파시오ꡑ가 앞장선 카리푸난이 필리핀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에 불을 당겼다.
마침내 1898년 ꡐ아기날도ꡑ를 중심으로 뭉쳐 독립을 선언하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공화국 헌법을 만들어 세웠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뚫고, 당시 에스파냐 함대를 깨부순 미국은 1898년에 열린 파리조약에 따라 필리핀을 삼키더니 1902년 민중들의 거센 저항을 뿌리치고 식민지배를 굳게 다졌다.
그 뒤 미국은 1907년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자치권을 주었으며, 1934년 필리핀 독립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1943년 일본 점령군에 의해 필리핀 독립이 선언되었고, 다시 1945년 미국의 필리핀 탈환에 따라 결국 1946년 7월 4일 필리핀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필리핀은 이렇듯 뒤틀린 어려움을 겪으면서 독립을 이루어냈으나 여전히 거의 모든 사회구조나 경제적 틀이 미국의 새로운 식민지 정책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군사기지 협정, 상호방위 조약을 비롯한 갖가지 군사적 고리속에 필리핀을 가두어 놓고 이른바 상호특혜통상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아래 오늘날 필리핀 경제의 50% 이상을 지배하게끔 하는 식민지 정책을 펴고 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비단 50%의 경제지배라는 수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독점자본의 전략적 위치일 것이다. 이를테면 필리핀 에너지의 90%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나 거의 모든 금융․보험을 미국 독점자본이 요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필리핀 민중경제의 발목을 묶어 놓고 있는 꼴이다. 한편 미국은 식민지배를 훌륭히 꾸려가기 위해 일찍부터 식민지 관료를 키워왔고 이들은 매판자본가․지주계급과 부둥켜 안고 정치권력을 넓혀 나가면서 자본을 길러 마침내 관료자본가로 굳건히 뿌리를 박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고위 관료자본가들은 제국주의 숫놈과 매판자본가․지주계급 암놈 사이에서 태어난 기생관료자본가인 셈이다. 따라서 자본은 부정․부패라는 더러운 이부자리속에서 권력과 동침하는 반민중적 ․반민족적인 재생산 틀을 갖게된 것이다.
이렇듯 ꡐ반식민지ꡑ상태에서 아직껏 봉건적 지주계급이 거의 모든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ꡐ반봉건적ꡑ사회랄 수 있는 필리핀은 제국주의 자본에 기댄 뿌리없는 농업개발정책과 줄기없는 수출지향 산업화가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눌려만 왔던 민중들의 분노가 마르코스 독재정권의 목줄을 조일 즈음, 83년 아키노 암살을 계기로 마침내 중산층마저 등을 돌린 채 중도파․보수세력 ․교회 ․학생급진좌파․노동조합이 자연스레 무리를 이루며 반독재투쟁에 하나가 되었다. 한편 나라 안팎의 빗발치는 분노에 눌린 미국은 약삭 빠르게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곱게 키운 자식 마르코스로부터 마지 못해 등을 돌리게 되었고, 이 틈을 삐집고 필리핀 군부내의 개혁파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코라손 아키노의 시민불복종운동에 함께 어깨를 걸고 나서 드디어 현대사에 소중히 자리잡을 ꡐ필리핀 혁명ꡑ이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0년 2월 마닐라.
86년 2월 혁명기간 내내 피끓는 민중들의 모임터였던 마닐라 한복판의 피살공원은 이제 연인들의 사랑터, 가족들의 쉼터가 되어버렸고, 당시 혁명본부로 쓰였던 마닐라 호텔 곳곳에는 돈 많은 나으리들이 법썩을 떨고 있다. 그리고 이웃한 항구에는 세계일주에 나선 퀸 엘리자베스 2호가 버티고 있으며 그 바로 앞에 마르코스의 아이들이 밤마다 잔치를 벌였던 호화 유람선이 기죽은 채 떠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2월 혁명의 얘기를 꺼내면 큰 자랑거리로 뽑내지만 오늘의 모습에서 그날의 빛나던 자취를 찾을 길은 없고, 오히려 어려워진 듯한 살림살이 걱정이 진하게 묻어나을 뿐이다. 그토록 질 좋고 맛있는 필리핀의 과일들은 모두 미국에 수출해버리고 과일가게에 쌓여있는 바나나․오렌지․파인애플들이 거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해 온 것이란 사실이 바로 어처구니없는 필리핀 경제의 정직한 모습이다.
한편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살았던 말라카낭 대통령궁은 주인이 아키노로 바뀌었을 뿐 별 다른 변화를 읽을 수는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테타설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대통령궁은 자유스럽고, 평화스럽기만 하다. 말라카낭 궁 곳곳에는 기념품 장사꾼들과 한닢 얻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늘어서 있고, 누구나 탈없이 대통령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정문의 보초병들이 방문자의 신분증조차 확인하지 않는 것이 검문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되레 어색하게 느껴진다. 속속들이 살펴 본 말라카낭 궁은 지하에 있는 이멜다의 옷창고에 걸려 있는 수백벌 밍크코트나 수천 켤레 신발을 빼고 나면 생각했던 것 만큼의 호화․사치는 아닌 듯하다. 아마도 우리의 상류층들이 누리고 있는 생활이 어디 이보다 못하리요? 물론 그렇다고 독재자가 부정하게 끌어 모은 단 한닢의 동전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남의 일같지 않게 마음 조이며 지켜보았던 혁명의 땅 필리핀에서 답답한 기운에 눌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록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기생독재정권보다야 백 배 천 배 귀한 것일 수 있으나, 오늘날 필리핀은 단지 마르코스에서 아키노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신식민지적 성격을 지닌 부르주아 국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아키노 정권이 넘어야 할 산은 아득하기만 해 보인다. 강력한 힘을 가진 군부의 뒤틀림과 보수세력들이 호시탐탐 엿보고 있으며, 회교 모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의 자치요구에다 여러 정파의 끝없는 도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의 깊은 한숨 속에 배고픔이 서려 있다는 사실이 필리핀의 앞날과 아키노정권의 생명에 가장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하루가 멀다 않고 자리를 다투는 마르코스 지지시위와 아키노 지지시위 속에서, 한 택시 운전사는 말을 건네 온다.ꡒ필리핀 혁명과 아키노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고픔을 견디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오히려 마르코스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