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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호랑이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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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 이만주 2009년 05월 327호
한국의 호랑이 미술 한국인은 먼 옛날부터 호랑이와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랑이는 짐승이지만 한민족에게 있어선 시쳇말로 중요 아이콘(Icon) 중 하나였다.
호랑이에 얽힌 수많은 설화와 동화가 전해 내려온다.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어렸을 적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듣던 이야기 중에 많은 수가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들이었다. 호랑이를 빌려 권선징악과 보은報恩을 가르쳤고 돼먹지 못한 지배층을 풍자했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멸종 상태이지만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호랑이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조 시대에는 서울 4대문 안에서 호랑이가 흔히 목격되었고 심지어“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좌우 포도대장에게 명을 내려 수색해 잡도록 했다 (선조 36년, 1603년 2월 13일 )”와 같이 궁궐 안에서조차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기록이 실록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실제의 호랑이뿐만이 아니라 구한말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집이 벽사의 의미로 호랑이 그림을 대문짝이나 벽장에 걸어놓았고 넉넉지 못한 집이나 농가에선 호虎나 용龍 같은 글씨의 방을 붙였으니 우리나라는 온통 호랑이 세상이었다.
호랑이는 생태계 먹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하는 맹수 중의 맹수이다.
하지만 우리 민화나 산신도에 그려진 호랑이는 모습이 모두 다르면서도 구수하고 익살스럽다. 새끼 까치나 토끼에게 골탕먹는 바보인가 하면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 등 장난기가 있다. 술에 취한 듯한 호랑이가 웃음을 선사하고 애완동물처럼 귀엽기까지 하다.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호랑이가 사라진 후대에와선 우리의 호랑이 그림이 사실적으로 사납게 그려지고 있는 반면, 호랑이를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때, 옛 선조들이 그린 호랑이는 추상적이고 희화화되어 있다. 우리 옛 호랑이 그림들은 요즘 현대미술에서 이야기되는 추상, 초현실주의, 데포르마시옹, 미니멀리즘을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현대 회화의 모든 실험과 기법을 알고 있었다는 걸까.
산신탱화를 보면 산신이 호랑이 위에 걸터앉아 있거나 타고 있는가 하면 호랑이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쓰다 듬는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허구적인 판타지 그림이다. 하지만 흥미 있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 원국이인장遠國異人章의 기이한 이야기.“...군자국(한국을 일컬음) 사람들은 참 흥미롭다.
그들은 의복, 모자 같은 것을 단정하게 걸치고, 허리에는 보검을 찬다. 그들은 아름다운 털을 가진 큰 호랑이 두 마리를 길러서 심부름시킨다. 모두 온순하고 말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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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조금도 싸우지 아니 한다. 호랑이를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처럼 길들이고 있다. 군자국의 거리에 나가보면 호랑이들이 제멋대로 왕래하고 있는데 좀처럼 떠들지 아니한다.”그렇다면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우리 조상들이 호랑이를 개나 고양이처럼 길들여 길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커스에서 연기하는 맹수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삶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의 이야기가 유구한 세월 산신탱화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 민화의 위대함을 발견한 후 많은 사람들이 옛 선조들이 그린 호랑이 그림을 이어받고 있다. 요즘 민화를 그리는 화가가 부쩍 늘어 반갑다 생각했더니 드디어 우리 민화나 산신도 속에 나오는 호랑이를 도예로 구워 만드는 40대 초의 고선례高善禮라는 당찬 여인을 발견해 기뻤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현재는 흙을 빚어 가마에서 구워 호랑이를 만들고 있으니 여류 도조가陶彫家라 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구워내는 까치호랑이는 영락없는 민화 까치호랑이의 입체적 재현이다. 다양한 모습의 희화화된 호랑이 도조 작품은 우리 호랑이 민화의 맥과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벽장식용으로 구워낸 큼직한 크기의 부조 쌍 호랑이 작품들도 있다.
고선례는 1992년 성신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이후 2002년 뉴욕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갖고, 같은 해 일본 나고야 첼시 아트 초대전을 연 이래 2009년까지 20여회의 개인전, 30여회의 단체전에 참가한 중견 조각가이자 도조가이다.
놀라운 사실은 평판에 호랑이 그림을 그려 구워낼 땐 까치 호랑이 대신 벗은 여인을 그려 놓는다. 그녀의 주장이 나름대로 색다르다.‘호랑이는 모든 것을 포용해 줄 수 있는 남성상 내지 신성神性, 까치나 벗은 여인은 그에게 기대고픈 약자이며 그 둘의 관계는 동양적 음양사상의 표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