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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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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영 1990년 11월 105호
서울에서 수년을 살다보니 지금은 직접 차를 운전하며 다니게 되었다. 복잡한 시내의 곳곳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멈춰 섰노라면 곁의 차에 탄 어린애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유리창으로 보인다. 아마 차를 운전하는 스님의 모습이 신기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신기할 것이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이 비좁은 길에서 운전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때가 자주 있으니 말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버스를 타고 서 있으면 간혹 자리를 내주는 젊은이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스님도 버스비를 내느냐고 진지하게 묻는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그런 것을 묻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승차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러던 어느날 스스로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그때 맨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ꡒ이 차를 사 준 사람은 이 공덕으로 틀림없이 좋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차를 타는 스님은 극락에 갈지 지옥에 갈지 가 봐야 안다.ꡓ 다행히도 아직은 큰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니며 남의 차가 가고 서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을 배운 얼마 후 출근시간에 한강의 강변도로를 달랄 때였다. 내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차에는 한사람씩만 타고 있었다. 차 하나에 한 사람씩 타고 출근하다니! 출근길의 교통이 자꾸 복잡해지는 것은 차가 없어서가 아니고 차가 너무 많아서이다. 우리는 이 많은 차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누구 없을까? 이것을 해결해 줄 사람이.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 욕설이 많아진다고 한다. 스스로 운전이 서툴다고 여기는 동안에는 욕설이 나오지 않는다. 항상 남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생긴다. 차츰차츰 운전이 익숙해져서 남에 대해 시비심이 생기면서부터 욕설이 나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불쑥불쑥 혼자서 욕을 한다. 아마 앞차의 운전자가 듣는다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가끔 차를 길 가에 세워두고 두 젊은이가 삿대질을 하며 시비를 하고, 또 여인네들이 밀치며 말리는 장면을 볼 때면 혼자서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속으로 응원한다. ꡒ싸워라, 싸워.ꡓ 저것은 살아 있다는 외침이 아닌가! 만약 사고로 크게 다쳤거나 죽어버렸다면 저렇게 싸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안들리게 욕하는 것쯤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운전이 차츰 익숙해지자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앞차가 시속 100㎞로 달리면 뒤차도 그렇게 달려야 하는데 80㎞로 달리는 차들은 거의 여자 운전자의 차다. 남들만큼 달려야 한다. 그리고 남들 따라 서야한다. 현대의 채플린은 차 속에서 거리의 파란불과 빨간불에 맞추어 손과 발을 춤추어야 한다. 그리고 앞뒤 차의 틈새에서 서로의 춤에 맞춰 함께 달려야 한다. 죽지 않을만큼 말이다.
여자가 탄 차는 또 하나 두드러진 특색이 있다. 운전석 옆자리에 여자가 앉는 경우도 참 말썽이다. 이 경우에는 너무 잘 달려서 좋을 때도 있지만 비좁은 곳에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양보한 것을 본적이 없다. 피서길의 그 심한 교통체증, 아마 여자를 태우지 않으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버스를 타보면 참 마음이 편하다. 그토록 죽도록 달리는 차들을 눈으로 보며 또 몸으로 부딪히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버스 속에서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중간쯤에 앉아서 하늘도 보고 거리도 보고 또 사람들의 손에 든 것도 보며 구름 같은 망상을 피우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것은 아무리 졸아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졸다가 종점까지 실려간다 해도 되돌아오면 되지 않는가. 만약 내가 운전하다 졸면 어찌 되겠는가. 순간적인 졸음은 나를 영원한 잠 속으로 데리고 갈 지 모른다. 그런 경우는 지금도 주변에서 자꾸자꾸 생기지만 역시 차는 달리고 있다. ꡒ서부전선 이상없다ꡓ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깊은 잠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조는 중에도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는 깨어 있음이 필요하다. 나는 졸아도 버스는 달린다. 그리하여 예정된 곳에 잘 내리면 나는 다시 차의 주인이 되고 버스는 여전히 함께 달린다. 모두는 도시 속의 채플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