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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력福力과 복덕福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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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09년 05월 327호
복력福力과 복덕福德 불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복된 사람, 복인福人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선근善根이 없고, 박복한 사람이라면 부처님과의 인연이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신난득人身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법이란 만고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이며, 이런 최상의 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과거 전생에서부터 지중한 인연과 함께 닦아놓은 복의 결과이며 과보인 것이다.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모두 구족하신 존귀하신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것은 복덕이며, 불자인 우리는 복덕이 아닌 복을 갖추고 누리고 있으면서, 우리의 선근과 복력이 부처님의 복덕이 되도록 정진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불자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즉사학기고登山則思學其高, 산에 올라가면 그 산의 높은 기상을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해야 하며, 임수즉사학기청臨水則思學其淸, 물을 가까이할 때에는 그 물의 맑고 시원한 기운을 배워야겠노라고 다짐해야 하며, 좌석즉사학기견坐石則思學其堅 돌에 앉아서는 그 돌의 견고하고 굳센 의지와 각오를 배우리라 생각해야 하며, 간송즉사학기정看松則思學其貞, 소나무를 바라볼 때에는 그 소나무의 풍파와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의연함과 꼿꼿함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야 하며, 대월즉사학기명對月則思學其明, 달을 마주 바라보면서는 그 달이 어둠을 밝혀주는 것을 배워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예불즉사학기덕禮佛則思學其德,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면서는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과 공덕을 배우리라고 생각해야만 불구소생자佛口所生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이를 계기로 다시 깨어 있는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불자의 도리이자 소임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다.
주역의 첫머리에서도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선행과 선업을 쌓아 축적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있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금 하다가 그만두거나, 혹은 이 정도했으면 됐다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선근을 닦는 일에서 물러난다면 복덕을 이루는 일은 영원히 이룰 수 없고 말 것이다. 선행과 보시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요익유정饒益有情의 수행이 산처럼 높이 쌓여진다면 바로 복에서 복덕으로 나아가는 기틀이 될 것이다. 덕德이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복이나 공로가 태산만큼 크고 높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태산만큼의 복을 지어야만 복덕이라고 하고, 태산만큼의 공로를 이루어야만 공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세상의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모두 게송으로 설하신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악업을 짓지 말고 모든 선행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신 가르침 역시 중생의 복력과 선근이 부처님의 복덕과 공덕으로 성취될 때까지 선행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교설敎說하신 것이다.
복력으로 복덕을 성취하는 방편이 바로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나누고 베푸는 것이 바로 보시바라밀이며, 모든 번뇌의 어지러움을 가라앉히는 것이 지계바라밀이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내가 먼저 화해하고 화합하는 것이 인욕바라밀이며, 불법佛法과 진리를 궁구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 정진바라밀이며,마음이 요란하게 움직이며 요동치거나 혹은 고독과 쓸쓸함에 가라앉지 않게 하는 것이 선정바라밀이며, 모든 법의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와 상대와 내가 곧 일체라는 연기를 깨닫는 것이 지혜바라밀인 것이다.
진정한 보시로 욕망에서 벗어나게 되고, 지계로 번뇌를 없애고, 인욕으로는 일체의 모든 경계가 무상無常하다는 마음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정진으로 집착하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고, 선정으로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게 되고, 이런 절차에 수순한다면 바로 지혜를 증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의 정법과 진리를 만난 소중한 복력을 바탕으로, 복덕과 공덕을 수미산의 높이로 쌓을 때까지 견고한 신심으로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노라는 각오로 정진한다면, 복된 불자라는 인연을 소중하게 하는 동시에 금생까지의 선근과 복력을 헛되게 하지 않고 나아가 복덕과 공덕의 구족을 성취하는 의지이자 자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