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이 지고 꽃이 핀다. 개화에도 눈이 가고 낙화에도 마음이 기운다.
엷은 바람에도 아무런 저항 없이 가볍게 몸을 부리는 꽃잎이 나비 날갯짓을 닮았다. 바람타고 오색등이 나부끼는 팔공산 동화사는 그렇게 봄날이 무르익고 있었다. 동별당에 한 걸음 들여놓으니 담장 너머로 오동나무 한 그루가 의연하고 찻물 끓는 소리가 고요를 삼킨다. 적막을 깨고 동화사 주지와 대구불교방송 사장소임을 맡고 계신 허운 스님의 일상에 잠시 끼어들었다.
허운 스님은 지난해(2008. 11) 대구불교방송 사장으로 취임하고부터 바라보던 방송에서 함께하는 방송으로 마음자리를 바꾸었다. 1600여년 한국불교사에 포교의 전환점이 된 불교방송은 1990년 서울 개국에 이어 중생의 보살화, 사회의 정토화를 구현하기 위해 1996년 11월 11일 대구에서도 첫 방송을 시작했다.
종교방송은 공동선善을 추구하는 역할이어야 신심과 열정으로 늘 지역사회 불자들과 함께하는 대구불교방송은 그동안 FM방송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기도 하며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왔는데요. 불교방송의 사회적 역할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집단이기주의와 물질만능의 이 시대에 종교방송은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선善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이가 마음이 괴롭고 불안하고 소외받아 그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악으로 등장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엄청납니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도 그중 하나일 수 있죠. 하지만 누군가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정화하고 바꿔나간다면 이것이 종교방송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 아닐까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불교방송은 어쩌면 거대한 생명체인 우리 사회의 예방백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건강척도를 진단하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기능이기도 하니까. 덧붙이는 경계의 말씀은 자비를 전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구원을 이야기하며 소외집단을 낳아서는 안 될 것이란다.
직접 방송에 출연하셔서 불교방송 후원에 수희 동참하라고 권선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ARS 포교후원전화 060-701-0408이나 포교후원회원으로 가입하라는 방송을 매일 하는데 방송전파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얼마 전 동대구역에서 노보살님 한 분을 만났는데 방송을 들었다고 직접 후원금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해인지 독자 여러분도 불교방송 후원에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참된 말씀을 바로 펴는 방송, 온 겨레를 하나로 묶어주는 방송, 치우침 없는 생각을 이끌어 가는 방송, 우리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방송, 나누는 것을 함께하는 방송... 이것이 불교방송의 지표다.
꽃바람 부는 봄날이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적이 있었다. 만개한 봄꽃 앞에 남루해진 내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루나 초라함이 스러지는 자리, 약사여래 12대원 12만배拜 120일 기도가 이루어지는 동화사 통일대불전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이들이 1배 1배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많은 인연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또 한편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앞서간 수행자로 저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떨까 궁금합니다.
“기도는 소녀의 기도가 가장 순수하고 나이 든 사람의 기도는 비애가 있다는 말이 있지요. 기도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위대한 비밀입니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는 경계해야겠지요. 성급한 마음을 멀리하고 기도를 하다보면 뜸이 들고 맛이 나는 가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것이 3가지 있는데 음식을 삼가고, 수면을 조절하고, 사람 만나는 약속을 줄이면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다보면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가고, 상대방은 나를 신뢰하며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따라옵니다. 특별한 생각을 말아야 해요.”
특별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만만치는 않다. 그래서 힘을 얻고자 다시 여쭈었다. 기도하다 중간에 그만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수행하고 기도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수행은 넓은 의미로 보면 본래 우리 마음은 청정하고 깨끗한데 살면서 탐,진,치가 혹처럼 더덕더덕 붙어있는 것을 제거하고 닦아가는 거예요. 기도는 조성보리造成菩提, 즉 깨달음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며 업장소멸의 공덕이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고 주인 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필요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재물, 명예, 풍류 등 행복의 척도와 바라는 입장이 다 다르죠.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인연의 소중함에 눈떠야 행복합니다. 우리는 인연의 귀함을 깨닫기 전에 삶의 현장에 내던져지고 삶의 무게에 눌려 짜증이 나고 불행을 경험하는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늘 살펴야해요. 부모, 아내, 남편, 자식과의 인연은 과학의 힘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죠. 이런 지혜를 밝혀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행복하자고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는데 그것이 괴로움의 대상이 될 줄이야. 우리의 만남을 있게 한 그 신비로움에 소유를 끌어들이지 말자.
지금 우리의 삶은 존재가치, 존재의 에너지를 너무 소유에 탕진하고 있다고 강조하시는 스님, 물질의 많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소유가 개인의 노동력을 상실하게 하거나 다른 이에게 폭력으로 등장하면 그 소유는 경계해야 하리라.
산문은 빗장이 없으니 봄바람 한 번 지나가면 그 자리 자리에 분홍 꽃 노란 꽃이 피어나니 동화사의 봄날은 어둠조차 환할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절마당 음악회가 있어 더욱 그러하다.
동화사가 아시아 10대 명소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자가 아니어도 등산객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도량인데요. 절마당 음악회를 통해 부처님을 만나는 기쁨과 함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일종의 회향인가요?
“목탁소리 들으러 왔는데 세상보다 더 시끄럽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건 찬반 양론이 있기 마련이고 비판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2시간 공연으로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구요. 광장문화를 잃어버린 세대의 다양한 사람이 만나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자리, 승가와 재가, 세간과 출세간 구분 없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거지요. 동화사의 산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살아서 삶의 전부를 다하라 봄날 그림자가 길어질 때쯤 소풍 나온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있기에 도량을 한 바퀴 돌아보자 청을 드렸다. 법당 앞을 지나는 불자들에게 일일이 답례하시는 스님께 수행자로 살아오시면서 행복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을 텐데 그 간극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질문을 드렸다. 답변하시기를 통방通方학인시절 탄허 스님 모시고 폭설 내린 월정사 화엄학림에서 공부하던 그때가 참 행복했었노라고, 그리고 세속의 나이가 가져다주는 무상함을 승랍僧臘으로 삶을 잘 관찰하고 규명해서 조화를 이뤄갈 뿐이란다.
그리고‘저승 돈 갖다가 이승자식들 키우고 산 것이 내 삶이다’라고 한 제주 마지막해녀의 말을 전해주시면서 살아 있을 때 삶의 전부를 다하라는‘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을 일러주셨다. 은사스님과 법사스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누구보다 행복한 수행자라는 허운스님과 함께 산책하는 경내에 초파일을 준비하는 스님들의 분주함이 그림 같았다. 혼자이면서 동시에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혼자인 수행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