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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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성전
2009년 05월 327호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맑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눈을 감으면 그 맑은 하늘이 지닌 빛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반짝이며 명멸하는 꽃들은 내 마음에 미소를 남긴다. 그 순간 나는 세상 속에서 이름 불리어지는 내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이름 불리어지는 나는 엄숙하고 경건하고 언제나 단정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가볍게 웃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대지 위에서 마치 무용하듯 아름답게 한 바퀴를 돈다. 이 숲속에서는 그런 나를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숲이 햇살을 반기듯 그런 나의 모습을 숲은 햇살의 하나의 몸짓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 숲길 위에서 나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이 길위에서 출가사문 성전의 이름을 지운다. 그리고 지금이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 하나를 생각해본다.
이름마저 지운 나는 이 숲에서 마치 숲의 연인처럼 숲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다.
가끔씩 나는 나의 이름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이름이 내 삶을 너무 정형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똑같은 생각이라면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 것이겠는가. 이름도 좀 자주 바꾸며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바꿀 수 있다면 좀 바꾸어 가며 살면 인생이 좀더 신나지 않겠는가. 만날 그 일터 그 사람들이 아니라 가끔은 다른 일터 다른 사람들이라면 우리 인생도 좀 신선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누구나 한번쯤 꿈꿀 수는 있지만 그것은 또한 실현될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숲길을 걸으면 나는 그런 나를 아주 잠시나마 잊는다. 무거움을 의무처럼 뒤집어쓴 나를 잊고 햇살처럼 가벼운 나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내 안에 이렇게 투명한 내가 있었다는 것을 숲길을 걸으며 나는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물소리에 맞춰 왈츠를 추기도 하고 숲의 향기에 코를 킁킁거려 보기도 한다. 그 순간의 나는 가벼움이고 온통 기쁨이다. 울렁이는 가슴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그 순간 나는 보석을 발견한 행운아가 된다.
무작정 떠난 길에서 나는 그간 내 삶이 얼마나 무겁고 단조로운 것이었는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삶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를 새삼 알게 된다. 이 울창한 전나무 숲길에서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선다. 내가 구하고 추구하던 그 모든 것들이 이 안에서는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숲의 향기와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존재일 수 있다는 행복의 소식을 만나게 된다. 소유가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존재의 비밀을 숲은 조용히 들려준다.
그 순간 숲은 마치 현자와도 같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부처의 마음과도 같다.
숲길을 걷다 이제는 죽어버린 가장 오래된 전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전나무는 속을 말끔히 비우고 있었다. 그 전나무 앞에 사람들은 이렇게 써놓았다.“가장 오래된 전나무입니다. 오래 전 생명을 다했습니다. 함부로 범하지 마십시오.”누가 이 오래된 전나무의 역사를 함부로 범할 수가 있겠는가. 바람도 별빛도 그 텅빈 자리에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엿보았을 것이다. 나도 그 텅 빈 자리에 마치 바람이나 별처럼 깃들어 비움의 오랜 향기에 머리 숙일 뿐이다.
나무는 이렇게 온통 자신을 비우며 떠난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나무의 한 생애가 비움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무의 푸름도 나무의 향기로움도 모두 비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비우면 향기롭고 비우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나무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도 비우면 향기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가 향기롭지 못한 것은 비우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명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탐욕 그리고 재물에 대한 탐욕. 그것은 모두 헛된 이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내 안에 있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다 비우면 저 숲의 향기처럼 스스로 향기로워지는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숲은 말해주고 있다.
숲길을 걷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 길 위에는 배움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이 있다. 나는 그길 위에서 학생이 되기도 하고 깨달은 수행자가 되기도 한다.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고루함은 사라지고 산소처럼 푸르게 깨어나는 자신을 만날 수가 있다. 주머니가 비었어도 우리는 숲길을 찾아가 걸을 수가 있다. 걸으며 맑아지고 향긋해질 수가 있다.
숲은 이렇게 즐거움으로 나를 바꾸어준다. 숲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고루하지 않고 더 이상 무겁지도 않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날마다 향기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