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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선은 세간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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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앞의 잣나무 - 동봉 1990년 11월 105호
태 안의 열 달 은혜는 무엇으로 갚사오며
무릎 밑 세 해 양육용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한다 하더라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미흡하기만 한데
백년 안에서 백 년을 다 못채우시니
어머님 수명이 어이 그리도 짧으십니까?

외짝 표주박 들고 길에서 행걸(行乞)하는
외로운 산승, 이 자식은 이미 그렇거니와
비낀 비녀로 안방에서
혼인 못한 저 누이동생이 가엾지 않나이까?

상단(上壇)을 마치고 하단(下壇)마저 파하여
스님네 각지 제 방으로 돌아가고 나면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중중한데
영혼은 어디로 돌아가시렵니까.
아아, 슬프고 슬픈 일이옵니다. 어머님이시여.

이조 인조 때의 기승(奇俗)이던 진묵조사(震黙祖師)가 자기 어머니를 제사지내며 지은 장송시다. 초의(草衣)선사의 논문에 의하면 법휘가 ꡐ일옥(-玉)ꡑ이며 ꡐ진묵ꡑ이란 그의 자호(自號)다. 그리고 생멸연대나 전기는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불교사전에서는 1562년부터 1633까지 72세를 살다간 고승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과연 그 연대가 정확한지는 아직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진묵은 효심이 대단한 선사다. 알량한 출가자라는 의식의 테두리에 갇혀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근래의 일부 스님네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모님이 찾아와도 자기는 속세와 인연을 끊은 사람이므로 만날 수 없다는 그 알량한 출가의식으로 인하여 부모를 멀리하고 형제를 배척하는 스님네를 대할 때는 마음이 아프다. 그런 스님네일수록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곧잘 얘기한다. 자기의 부모형제를 멀리하는 대신 인연 있는 인도를 더욱 가까이한다. 염일방일(拈一放一)이다. 하나를 놓으라니까 다른 하나를 잡는 격이다.
필자가사미로 있을 당시다. 어느 절에 갔더니 한 중견 스님이 어린 상좌를 꾸짖고 있었다. 내용인즉, 그 상좌가 자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가 문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 절의 어느 큰 신도의 심부름을 재대로 이행하지 못한 데서 문제는 발단된 것이었다.
ꡒ중이 출가를 했으면 속가를 엎어야지, 어머님이 아프다고 쭈르르 달려가? 그래서 사중의 중대사를 그르쳐 ? 우리 절 불사가 얼마나 중대한데, 만약 그 신도님이 그 일로 해서 시주를 그만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ꡓ
ꡒ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ꡓ
ꡒ앞으로 다시 속가붕이 때문에 절집안의 일을 소홀히 한다면 용서치 않겠다. 알겠느냐?ꡓ
ꡒ잘 알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ꡓ
그렇게 해서 그 상좌는 용서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고 무슨 용서를 구하는가. 무엇이 그토록 중대한 불사인가. 부처님은 불살생(不殺生)의 가르침을 통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말씀하신다. 몸져 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님 문병이 절 짓고 불상 만드는 일보다 과연 작은 일인가 신도의 문병은 곧잘 하면서 부모의 문병은 소홀히 해도 괜찮은가 만약 평등한 마음가짐을 위해서라면 상좌의 부모도 신도가 분명하지 않은가.
진묵조사는 자기 어머님의 상을 당해서만 슬퍼한 것이 아니다. 상좌가 속가의 제사를 참례하는 것도 중요한 얼로 생각한 분이다. 한 때 진묵큰스님이 변산의 월명암(月明庵)에 계셨다. 가을이 되어 스님네는 모두 탁발을 떠나고 적적한 산내암자를 시자와 둘이 지키고 있었다. 하루는 시자가 속가의 제사를 위해 떠나겠다고 하니 큰스님은 흔쾌히 승락하셨다. 시자는 공양물을 준비하여 탁자 위에 놓아 두고 시장하시면 드시라 말씀드리고 외출하였다. 때마침 큰스님은 방장실에서 창을 열어놓고 「능엄경(楞嚴經)」을 읽고 계셨다. 문지방에 손을 얹어놓은 채로.
이튿날 시자가 암자로 돌아와보니 큰스님은 전날의 그 모습 그대로 앉아 경만 보고 계셨다. 공양도 드시지 않고 바람이 불어 문이 닫히는 바람에 손이 으깨져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계신 것이다. 시자가 절을 올리고 밤새의 안부를 여쭙자, 큰스님께서는,
ꡒ너는 왜 제사에 참례도 않고 돌아왔느냐? 사람이 도리를 모르면 안되느니라.ꡓ 하셨다. 즉 큰스님은 수능엄삼매(首楞嚴三味)에 들어 이미 밤이 지난줄 모르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는가. 그렇다. 진묵조사의 높은 경지도 경지려니와 그분의 진솔한 인간미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있다. 도리를 저버리면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상실된다.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아버지 49재를 절에서 모신다 하여 참석치 않는 아들 딸들이 많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것에 걸려 일부 기독교인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종교란 인간을 위해서 있을 따름이다. 인간이란 종교의 예속물이 아니다. 인간관계를 구속하는 종교는 무의미하다. 종교란 인간을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종교란 종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이 종교의 도구가 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지난 한글날 임진각 주변에 위치한 평화통일사에서 그 절의 주지인 윤일선스님의 모친 사십구재가 있어 내가 손수 집전해준 적이 있었다. 일선스님은 고암대종사를 스승으로 한, 나의 사형이다. 그래서 몇몇 사형들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하자고 했더니 한결같이 ꡒ중이 무슨 어머니를 찾는가?ꡓ였다. 참석한 사람은 사문으로서는 나 혼자였다. 서글폈다. 출가인은 정말 그래야 하는가. 출가인은 부모를 무시해도 좋은가. 출가시킨 것이 무슨 죄인가. 자식을 출가시킨 부모는 대접받을 수 없단말인가. 80여 명이나 되는 사형사제가 단 한 사람도 참석치 않다니.
돌아오는 길에 나는 부처님을 생각해봤다. 그분은 아버지 정반왕이 붕어하자 손수 상여를 메셨다지 않는가. 그리고 무한한 슬픔을 억누른 채, 세상의 무상한 이치를 설법하셨다지 않는가. 글쎄, 모를 일이다.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을 본받으려 하지 않고 일부 궤각승들의 행적이나 더듬어 ꡒ중은 부모에게 몸만 빌렸을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ꡓ라고만 뇌까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가. 입만 열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라 한다. 진(眞)과 망(妄)이 교철(交徹)한다 하고, 용사(龍蛇)가 혼잡하고 범성(凡聖)이 동참(同參) 하는 것이 법계라 한다. 벅하면 ꡐ불이(不二)ꡑ를 얘기한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출가인의 부모가 어떻고 자시고 할 게 있겠는가. 어차피 불이를 논한다면 출가인에게도 부모는 긍정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위대한 고승들은 초연하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논리조차도 초월하였다. 초월하였기에 출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에 자재하다. 선(禪)이란 세간에 존재한다. 참됨 선은 세간을 떠나지 않는다. 세간 속에서 깨달음이 온다. 왜냐, 세간은 출세간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은 세간과 출세간 어디서나 가능하다. 삭발염의를 한 출가인이라 하여 선을 잘하고 장발소의(長髮素衣)라 하여 선을 잘 못한다는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진흙으로 불상을 조성한다고 치자. 진흙이 많아야 당연히 불상도 큰 법이다. 적은 진흙으로 큰 불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피땀을 얼마나 흘렸느냐에 비례하여 수확의 양도 많아지고 기쁨도 증가한다. 노력하지 않고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식을 낳는 고통을 아는 어미만이 그 자식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그 사랑이 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무슨 논리가. 그렇다. 세간의 사랑을 아는 자가 출세간의 자비를 펼칠 수 있다. 세간의 고통을 아는 자가 출세간의 대비를 실천할 수 있다. 번뇌에 찌들어 신음해 본 자가 발심하여 정진할 수 있다. 출세간은 세간을 등에 업고 존재한다. 부모님의 효(孝)를 모르는 사문은 진정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위의 진묵큰스님의 장송시를 대하면서 우리는 한 권의「부모은중경」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효는 세간의 기본적인 윤리인 동시에 출가인들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세간의 효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말자. 출세간의 효의 다른 모습임을 분명히 알 일이다.